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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랴 Nov 25. 2020

허리가 아파서

처음에는 가위에 눌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이불의 촉감이 여느 때보다 보드랍게 느껴지는 휴일 아침이었다. 베개 옆 어딘가에서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 있지만 늦잠의 즐거움을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재빠르게 저 녀석을 해치우고 이 시간을 즐겨보리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반듯하게 천장을 보며 누워있었다. 딱 5도, 10도만 몸을 왼쪽으로 틀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간단한 동작이 되질 않았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보고 그다음엔 발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묵직한 통증이 몸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픔이 무서워서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이불 위에서 퍼덕이고 있던 것이다. 목에서부터 엉덩이까지가 부목을 댄 것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다리를 들어보려고 하면 몸의 중심부터 커다란 바윗돌로 누르는 듯한 통증이 퍼져왔다. 아주 조금만, 꾸물럭 댈 수만 있었다. 몸의 반동을 사용하려 해도 묵진 하고도 날카로운 통증이 머리 끝까지 뻗쳐왔다. 눈물이 터져왔다. 알람도 울고 나도 울었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이 이 황당한 이중창을 듣고 달려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이 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내 몸은 기능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고, 자유로이 움직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져 왔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눈물범벅이 되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등산을 갔다가 산 꼭대기에서 거대한 바위에 깔리면 이런 기분일까. 그래도 산 위는 핸드폰도 잘 터지고 구조요청도 할 수 있잖아. 잘 자고 일어나서 불안에 떠는 내가 사실은 다 자란 어른이라니, 우스웠다. 혹시 내가 자고 있던 사이 누군가가 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침대에 못 박아 버린 것은 아닌가. 아무도 모르게 내가 자는 사이에, 내 몸통만 죽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절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때의 내 감정이 절망에 가까웠다는 걸 나중에서야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허리의 통증이었지만,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디스크 있어요 할 때의 그 디스크. 추간판 탈출로 인한 신경성 통증의 일종이라는 것도 오랜 진료와 여러 번의 진단 끝에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유난히 잘 넘어지던 나는, 예상 못한 순간에 퍽하고 넘어졌다고 크게 우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심한 위경련을 겪어도 묵묵히 그 시간을 버텨나가는 씩씩한 성격으로 자라났다. 그런 나도, 이토록 예고 없이 찾아온 증상 앞에서는 평소처럼 덤덤할 수 없었다. 절망과 공포의 감정도 매우 낯설었다. 무슨 일이든 일단은 내가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사실이, 허리가 불편해지고 나선 정반대로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너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어. 같은 메시지가 바닥에서 피어나 공기를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통증이 내 희망을 갉아먹고 공포가 자라났다. 그 짧은 찰나의 일이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뜬금없어했다.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목소리가 히끅거릴만큼 감정이 격해져 왔다. 마음을 겨우 가다듬은 건,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고 내 쉰 뒤의 일이다. 나는 알람부터 꺼달라고 부탁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어렵다고도 이야기했다. 가족들이 내 등을 받쳐 침대에 기댈 수 있도록 한 후에도 나는 지잉하고 어딘가 눌리는 아픔이 느껴졌다.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 서보니 등허리가 불에 데인 것 같이 아팠다. 등을 똑바로 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내가 아픈 곳이 허리 어딘가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부터 나는 재채기라도 나올 것 같으면 덜컥 겁이 났다. 기침만 해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아팠다. 통증이 머리 끝까지 바짝 올라왔다. 세수를 하거나, 양치질을 할 때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티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났다. 앉아있다가 일어설 때, 굽혔던 허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자세를 취하면 날카로운 통증이 찌릿하고 스쳤다. 나도 모르게 일상의 움직임에 쉽게 지쳤다. 집에 있으면 자연스레 벌러덩 누워서 자주 숨을 고르게 되었다. 어떤 하중도 편안하지가 않은 것이다. 중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앉아있으면 내 몸의 무게를 온전히 허리 위에만 얹은 것 같았다. 신발을 신을 때도 난감했다. 팔을 뻗어 신발을 집고 발만 어떻게라도, 말 그대로 대충 신발 안으로 집어넣으면 될 줄 알았는데, 내 손발이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짜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일어서 봐도, 슬며시 앉아봐도 고통 없는 움직임은 없었다. 각도마다 다채롭게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결국 신으려던 신발을 던지고 엉엉 울곤 했다.


꾸준한 진료와 치료로 상태는 점차 나아졌지만, 의학은 좌절감과 공포감에 휩싸인 나까지 단번에 구제하진 못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다양한 경험과 성향의 변화를 겪고 나서야 나는 이 모든 일이 계기가 되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겨우 느낄 수 있었달까. 삶에는 여러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허리의 통증은 내가 지금까지 알던 나를 여러모로 변화시켰다. 일상을 대하는 태도부터 병에 관한 생각, 나의 성격까지도.


작고 큰 여러 감정들을 나의 언어로 뱉어보고 싶었던 것은, 내가 나를 한없는 절망과 공포에서 끌어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위로 혹은 작은 도움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그건 통증을 덜어주는 의학의 힘이나 휴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면 괜찮아진다는데 그놈의 괜찮아진다는 게 대체 언젠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던 것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억울했다. 게다가 모두의 시간은 똑같이 흘렀다.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모든 일상이 포함되었다. 결국 다스려야 하는 것은 허리의 통증만이 아니었다. 질병은 그런 것이다. 내 마음과 무관하게 선택지가 제한되고, 나는 거기에 맞추어 살며,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이것은 내가 나를 구원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나는 경험은 어디든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허리가 아파서 겪었던 네모낳고 세모난 나의 감정들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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