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난민소녀의 미소, 안녕! 당신은 평화야
2013년 3월18일, 태국의 메솟 난민촌에 갔다. 왜 갔을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래, 그 무렵이었지.… 시가 날 찾아왔어. 난 잘 몰라. 어디서 왔는지” 그 시처럼 난민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미얀마 동쪽 미야와다와 이웃한 메솟은 태국 북서쪽에 있는 유배의 땅이다. 40만명의 미얀마 난민이 박해의 벼랑 끝에서 희미하게 희망을 노래하는 곳이다. 1분이면 건널 수 있는 모에이 강을 경계로 건너편은 가난을 창문에 걸어 둔 낡은 집들이 즐비하고 이쪽은 태국경찰의 텃세에 눈치 보며 그나마 자유의 숨을 나직이 쉴 수 있는 곳이다.
모에이 강은 눈물의 강이다. 1948년 버마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버마민족과 소수민족은 내전을 벌였다. 남방의 피는 유난히 붉었고 버마 군부의 총칼은 잔인했다. 소수민족의 원한이 산과 강에 질펀하다. 공포에 떠밀려 혈육과 땅을 빼앗기고 온 난민의 울음이 강을 적신다. 국경선을 따라 유엔난민기구에서 관리하는 Mae La, Nu Po, Umplem, Mae La Oon, Mae Ra Ma Laung, Tham Hin 등 9개의 캠프가 눈물방울처럼 흩뿌려져 있다.
난민은 존재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이다. 뿌리 뽑힌 존재의 불안이 삶의 불안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난민캠프 안에서 국제구호로 식량을 해결한다. 아니면, 캠프 밖 메솟 안에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 구걸하거나 장사하거나, 운이 좋으면 식당 종업원이 된다. 소수의 사람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메솟을 벗어나 불법체류자가 되기를 감행한다. 태국 전역의 미얀마 불법체류자는 1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곳은 국제 NGO들이 넘친다.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과학을 가르친다. 난민의 처참한 생활 위로 서양의 실패한 교육이 덮친다. 타인의 희생 위에 자신의 성공을 쌓는 슬픈 이념을 반복한다. 제국주의가 자본주로 얼굴을 바꾼 채 슬픈 역사를 반복한다. 수십년 동안 유엔과 NGO들의 경제지원과 교육에도 난민공동체가 그대로 비참한 이유이다.
이 실패를 바꾸기 위한 희망의 씨앗은 무엇일까? 음악만이 존재의 불안을 삶의 희망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예술만이 아이들을 정신을 높은 인간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생의 환희와 약동으로 가득한 한 순간을 전할 수 있다면, 그래서 한 아이라도 영혼이 바뀐다면, 난민공동체가 바뀌지 않을까? 이 생각의 씨앗이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가 되었다.
10년 만 하자. 그래 딱 10년이다. 적어도 10년은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반복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발끝을 움직이면 세상은 그 만큼 나아지겠지.
매년1월 중순,
같은 시기,
같은 학교에 갔다.
New Blood School도 그 중 하나다. 미얀마 8888 민주화 투쟁은 실패했다. 수많은 민주인사가 메솟으로 왔고 이곳 교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미얀마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피가 필요했던 것일까? 학교이름이 미얀마의 새로운 피다.
우리는 새로운 피들과 매년 음악축제를 연다. 축제는 짧다. 1년 중 2~3일. 찰나이자 금단의 과일 같은 단맛이다. 축제가 끝나고 어둠이 내리면 환희는 사라지고 기숙사 전체에 웅얼거리는 화음이 낮게 깔린다. 교실 이곳 저곳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험과목을 버마僧의 독경처럼 외운다. 대학자격시험(Matriculation exam)은 이곳을 벗어나는 유일한 희망티켓이다. 독경소리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 젖히고 싶은 아이들의 간절한 노래이다. 삶을 짓누르는 현실의 바위를 뚫는 새벽 물방울 소리이다.
물방울 소리가 잦아지고 별들이 재잘거리던 하늘도 잠잠 해지면 우리는 산타클로스처럼 배낭에 선물을 가득 담고 지친 천사들의 둥지로 숨어든다. 기숙사로 가는 어둡고 은밀한 미로에는 어쩐지 슬픈 환희가 가득 찬다. 불쑥 찾아온 우리들의 무례에 수줍게 미소 지으며 반기는 아이들. 낮 선 이방인에게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며 작은 입에서 나온 인사. 맹글라바 ! “당신은~ 평화야” 이 땅의 신성한 언어는 안녕을 묻는 미소이다. 아이들은 이 비밀언어로 이방인을 평화로 물들인다.
벌어진 나무 벽 틈 사이로 남방의 바람이 스며든다. 우리는 달뜬 연민으로 아이들과 작은 음악회를 연다. 나무 침상과 바닥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나도 부르고 너도 부르고 우리도 부르고 아이들도 부르고 마음으로 불러 영혼으로 하나되는 기적 같은 음악회. 우리는 한국말로 한국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버마말로 버마노래를 부른다. “봄날은 간다”의 서러운 가락이 아이들의 가슴으로 스며든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평화의 미소가 우러나온다. 그래! 평화에 언어가 무슨 장벽일까? 마음이 전부 지. 마음 하나 제대로 들면 금방 하는 되는 것을.
Thwe는 내전으로 부모를 잃고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8살 소녀이다. 아이의 맑고 슬픈 목소리기 우리 마음을 적신다.
“ 지금 헤어져도 울지 않을게요.
우린 또 다시 만날 테니까요
하지만…..
다시 볼 수 없다면 그땐 울게요. “
그 아이의 노래가 사무치게 듣고 싶다. 그 소녀의 미소가 눈물 나게 그립다. 지금 그 소녀는 16살이 되었을 텐데.
미얀마 언론에 따르면 1년이 지난 지금, 쿠데타 사망자는 1,500명을 넘었고 그중 16살에서 35살 사이가 56%에 이른다고 한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구나. 지금 맨몸으로 총알을 받아내며 거리에서 붉은 꽃잎이 되어 스러지고 있구나.
이 소녀의 노래가 지금 내가 미얀마를 위해 싸우는 이유가 되었다. 이 소녀의 미소가 지금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