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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Apr 23. 2024

아이의 진실과 나의 진실

중학교 독서토론회 봉사에서 발견한 행운

청소기 이모님이 열심히 바닥을 닦는 동안

정산소종 홍차를 우려 놓고

아이 학교 독서토론에 나오는 책을 펼친다.

Jacques가 중국에서 갖고 온 이싱 주전자에

대만의 티마스터로부터 받은 입구가 넓은 찻잔을 꺼내놓았다.

한 주전자에 담긴 찻물이 깨끗하게 모두 찻잔에 들어가고

과거나 현재나 최고의 매혹을 자랑하는 정산소종의 풍성한 향기가 내 코를 즐겁게 한다.


집 안도 적당히 깨끗하고 책 읽기 좋은 날이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는 처음으로 독서토론의 학부모 리더 역할에 자원했다.

학부모 봉사는 본인 아이에게 도움 되라고 마지못해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독서토론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동문학의 명작을 반강제로 읽은 다음, 아이들의 싱싱한 생각을 목격할 수 있다니 얼마나 귀중한 기회인가.


교과서에 나오듯이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일을 해야 책과 친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실천이 힘들었다.

나는 이 일을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반강제로 하게 되었다.


“기억전달자“라는 첫 번째 책 토론을 하고

나는 한 동안 이 새로운 일이 내게 일으킨 물결의 반향에 젖어 있었다.

태어난 지 10년 좀 넘은, 아직 솜털이 보송한 다섯명의 아이들이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을 하는 모습을, 그들의 다양한 생각의 줄기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그 어떤 철학서적을 읽을 때보다

그 어떤 비싼 그림을 볼 때보다 내게 영감을 주었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가 대부분 헛소리인 걸 깨달았다.

특히, 인문학 꽤나 공부한 내가 책 읽기에 대해 해 왔던 말이 말이다.

중학교 1학년 권장도서를 읽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아 스스로 난독증을 의심할 정도였다.

아이에게 책 좀 읽어라, 나를 닮았으면 책 속에서 얻는 기쁨을 알 텐데 라고 (말은 안했지만 나 닮았으면 공부를, 학문을 사랑할텐데 ) 라고 이야기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돌이켜 보니

내가 책을 마지막으로 사랑한 때는 적어도 20년 전이었다.

지금의 나는 집중력은 바닥이고 도파민의 노예. 저질체력에 정신적 무기력에 종종 빠진다.

(이걸 휴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돈이 걸리지 않는 한, 자발적 근면성실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모습의 엄마 밖에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라떼는 말이야” 가 다 헛소리일 터이다.


5명의 내 아이가 아닌 아이들과

봄날에 도서관 데크에 앉아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첫날, 나는 첫 전시의 기자회견을 할 때만큼이나 긴장했다.

미리 교육받은 대로 토론 진행하는 일은 간단했고, 독서토론 리더는 자기 이야기는 전혀 할 필요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꼰대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들의 진지하고 생기 있는 눈,

수줍어하는 모습,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입을 움찔거리거나 졸려하는 모습까지,

나는 이 아름다운 시간을 목격하는 것 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가상의 이야기가 실체적 진실이라는 내 지난날의 경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용케 잘 참았다.

(이 책의 주인공이 어느 날 사물 너머를 보는 능력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양자역학과 뇌과학에 대한 참고서적을 추천한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제 “순례주택”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책이다.


두 번째 우려낸 정산소종 홍차를 입 안에 머금자, 입속에 부드럽게 감기는 느낌  - 차 좋아하는 사람들이 밀감이라 부르는- 이 달다.

(잠깐 차 이야기로 새서 나는 이 차를 차선생님으로부터 받아서 다락에 쟁여 놓았다.

뜯을 때마다 티백의 화려한 포장지를 버리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세월이 갈 수록 풍미가 더하는 좋은 잎차에 매혹홍차라는 이름을 붙였다. )


나는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좋았다.

전두엽 발달의 말미에 이른 작은 사람, 내 아이가 사람의 아름다움을 다 갖추어가는 시기가 되니 엄마로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입학하자마자, 독서토론봉사 모임에 가니 90명 남짓한 부모들이 도서관을 꽉 채우고 있었다.

많아진 학생수에 비례해서인지 학부모 봉사의 규모가 부쩍 커지고, 내용은 단단해 지고

내 아이의 이익을 더하려는 신경전이 난무하거나,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소모적인 모임이 아닌 합리적인 조직의 냄새가 났다.


무엇보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읽게 될 60권의 책은 모두 정교한 문학적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50년 가까이 산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진실, 혹은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마음의 빈곤을 달래면서

아이에게만 지적인 인간이 되라고 볶아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아이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의미 없는 자기 감상에 빠진 잔소리나 하지 않기 위해 이 일이 난 꼭 필요했다.

무엇보다 내 아이의 성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다.

이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모인 부모들이 존경스럽다.

이 배움의 기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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