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과 같아지기 위한 방법은 임신뿐이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3개월 만에 복귀한 회사동료는 3개월 된 아기가 인생의 전부인듯했다. 자연분만을 하던 날부터 출산 후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로 한동안 사무실은 마치 산후조리원이었다.
출퇴근으로 몰려드는 피로감은 단지 업무 때문만은 아니었다. 묘하게 파고드는 질투 섞인 감정들을 자각하며 못난 생각에 빠진 나를 자책했다.
자궁 외 임신 후 나의 자존감은 점점 바닥이었다. 원인 모를 유산이었지만 마치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어 비정상적으로 임신을 한 게 아닐까?
시댁과 남편 그리고 회사 동료들에게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정상적으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그들과는 다른 비정상이었다.
“임신을 하자! 아이를 갖게 되면 모든 것들이 정상을 찾을 거야.”
36살이라는 나이에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었던 나는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 한쪽이 사라졌기에 자연임신의 확률은 더 낮아졌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제안에 나의 첫 시험관 시술이 시작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병행하는 과정은 수많은 난관이 따랐다. 우선 내 호르몬 주기에 맞추어 불규칙적으로 내원했는데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자연주기에 맞추어 진행하던 초반에는 2-3일에 한 번씩 내원해야 했다.
때마다 어렵게 휴가나 반차를 올리면 상사와 동료들은 대체적으로 너그럽게 대해주었다. 마치 ‘난임동료를 대하는 방법’ 매뉴얼이 존재하는 듯했다.
“이렇게 매번 병원에 가야 해요? 참 힘들겠어요…”
하지만 그들이 건네는 이런 말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두 차례 진행된 시험관센터 시술이 실패했다.
결국 나는 점점 더 작은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