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바라며 눈물로 기도하고 인내하며 나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마흔네 살.
9년이라는 기간 동안 나의 첫 번째 소망은 임신이었다. 이 소망을 위해 울며 기도하고 인내하며 나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할 수 있어, 성공만 하면 된다!‘
난임병원을 5군데 옮겨 다녔고, 배에 복수가 차고 지루성 피부염 등의 시험관 시술에 따른 부작용을 여러 개 겪고 , 처지가 달라진 많은 지인들과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자주 드러나는 큰 문제는 남편과의 관계였다. 감정적이며 항상 감정을 표현하는 나와는 정 반대인 남편이었다. 말수가 적고 이성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감정표현이라면 운전할 때 욕하는 게 대부분이랄까?
이런 남편은 시험관 시술에 실패 후 울고 있는 나에게 ‘힘들었겠다’라며 손을 잡아주기 전에, 진작부터 나를 말려왔고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게 된 이 상황에는 본인의 책임은 없다는 걸 먼저 짚어냈다.
정치인들 싸움판도 아니고 다짜고짜 책임소재를 꺼내는 꼴이라니…
우는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스킬만 지닌 남편에게 향하는 공감의 기대치는 점점 낮아졌지만 그만큼 나는 결핍이 커져만 갔다. 그 결핍은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어 나를 바닥 끝까지 끌고 내려갔다.
나는 외로웠다.
외로움과 함께한 9년 동안 깊고 깊어진 내 마음속 심연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지인들이나 가족 혹은 남편에게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최근 시작한 심리상담선생님에게도 50분 동안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시간의 압박도, 공감의 구걸도 필요 없이 차분히 하나하나 털어놓고 싶었다. 내 지루하고 다소 어두운 이야기들을…
그래서 잠시 놓고 있던 브런치를 열었다.
다시 느낀 이 공간의 소중함이란!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순간부터 저 멀리 누군가의 공감이 시작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