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봄 꽃의 대표주자가 되어버린 벚꽃은 예년보다 빨리 피고 졌는데, 날씨는 또 무슨 심보인지 4월의 중순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의 꽃샘추위로 가뜩이나 나서기 싫은 출근길을 더 힘들게 합니다.
유년시절의 저는 새해가 시작하는 1월 1일보다 봄이 시작하는 3월 1일을 일 년의 시작점으로 여기곤 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것도 봄, 새싹이 돋아나는 것도 봄. 1월 1일이 주는 한겨울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시작점으로 느껴졌어요. 봄은 새 출발의 신호탄이요, 새 생명의 봉오리니까요.
애니메이션 [후르츠바스켓]의 한 장면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봄의 분위기가 마냥 밝게만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난 아직 겨울잠이 다 깨지 않았는데 어느새 성큼 다가와버린 봄이 달갑지는 않은 느낌이랄까요. 특히 재작년과 작년이 좀 심했던 것 같아요.
재작년은 제가 지금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한 회사에서만 있었다고 하지만, 물론 그 안에서도 변화가 있기도 했지요. 승진도 하고, 담당하던 업무도 조금씩 바뀌면서 나름 견실하게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문득 이게 정말 맞는 길인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주변에는 2~3년마다 회사를 바꿔가며 자신의 몸값(?)을 불려 나가는 친구들도 많은데, 나는 그냥 현실에 안주한 채 관성에 따라가던 길을 마냥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었습니다.
누가나가 그렇겠지만 긴 인생에 있어서 지금의 내가 가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이대로만 가면 이 길의 끝에 내가 원하던 풍경이 펼쳐질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저로서도 찾을 길은 없지만, 그래도 길의 초반에는 아니다 싶으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걸어온 길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제는 새로운 출발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함과, 맞는 길이 아니라면 서둘러서 다른 길로 진로를 변경해야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조바심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저에게 위로를 준 노래가 '홀로 봄'이었습니다. 모든 건 다 잘 될 거야, 봄이니까 새롭게 시작해봐, 라는 식의 긍정적인 메시지들보다 오히려 더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어요. 나처럼 동굴 안에 갇혀서 봄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지금부터라도 뭐든 시작하면 되겠다는 마음을 들게 해 주었습니다.
때때로 위안은 '내버려둠'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녹초가 되어 쓰러져서 쉬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라는 말보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이 더 힘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인지 올해 맞이하는 봄은 예년처럼 거북스럽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정답을 찾아서는 아니에요. 여전히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고, 이 길의 끝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걷고 있다, 라는 사실이 저를 안도하게 합니다. 겨울잠을 자고 좀 늦게 출발하면 뭐 어때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당분간 혼자 지내면 뭐 어때요. 누구나 그렇게 쉬어가는 시간은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은 존재합니다. 쉽사리 예측 못하는 4월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제 인생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템포와 상관없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 피곤하면 잠시 쉬어가더라도, 긴 시간을 두고 돌이켜봤을 때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거면 충분히 나름의 봄을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쓰고 보니 두서없는 끄적거림이지만, 봄을 알리느라 고생한 꽃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