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을 잔뜩 머금은 구름 탓에 날은 흐리고, 높은 온도 탓에 공기는 끈적끈적한 8월의 어느 주말.
딸과 함께 목마, 씨름, 앞구르기 등 엄마와는 잘하지 않는 몸 쓰는 놀이를 하다가 서로를 간지럽히는 놀이로 이어졌다.
까르르까르르, 개구진 웃음소리가 이어지다 둘 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중에, 딸이 말한다.
"난 아빠를 간지럽히는 놀이가 좋더라."
대수롭지 않게, 약간은 의례적으로, 나는 되묻는다.
"왜?"
"아빠가 웃는 게 좋아서."
사실 생각해보면 간지럼을 태운다는 것은 엄밀히 얘기하면 사람을 괴롭히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억지로 웃게 만드는 행위이니까. 심지어 고대 로마에서는 간지럼을 고문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만약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간지럼을 태운다면 즐거움보다는 불쾌함이 더 크게 들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곧잘 좋아하는 사람을 간지럽히곤 한다. 나도 갓난아기를 보면 괜스레 옆구리를, 발바닥을 살살 어루만지며 간지럼을 태운다. 그 사람을 웃게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내 욕심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누군가를 간지럽히는 가장 솔직한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딸도 그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아빠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간지럽히는 놀이를 좋아하는 거라고. 그런데 그토록 단순한 이유로 난 또 한 번 딸을 꼭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 누군가가 나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딸아, 아빠도 그렇단다. 나도 네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분에 넘치게 행복해서, 어떻게든 널 웃게 해주고 싶어서, 날마다 즐거운 고민을 한단다. 그러니 이유 없이 슬픔이 찾아올 때,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때, 속이 상해서 방 한편에 쪼그려 앉아 있고 싶어질 때에는 꼭 말해 주렴. 아빠가 네 마음을 간지럽히는 피에로가 되어 줄게.
오늘도 사랑한다,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