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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밍순 Jan 01. 2021

선배 이야기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특이한 사람이 많다. 

오늘은 A 선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A 선배는 조용하다. 

다르게 말하면 존재감이 없다.

한 번은 선배가 출근한 줄 몰랐는데, 점심때 사람들에게서 A 선배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같이 밥을 먹는 분들에게 "오늘 A선배 출근했어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물론이죠."였다. 

출입구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내가 모를 정도였다. 선배가 얼마나 조용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A 선배가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일단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는다. 

굉장히 사뿐사뿐 느릿느릿 걸어오신다.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다니신다.

나는 A 선배가 화장실에 간 것을 자주 목격한 적이 없다. 


회사에는 A 선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선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유는 다양했다.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다, 행동이 이상하다, 밥 먹자고 해놓고 밥을 얻어먹는다, 말 수가 없다,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늘 말하는 주제가 비슷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등등 

대부분 선배의 말이나 행동에서 오는 싫어함이랄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말하시긴 한다. 정말로 그 사람을 보지 않고서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최대한 설명을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이 *자 ** 잘 && 있어" 

조용히 말을 하셔서 이렇게 문장을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다. 

선배가 한 말은 이렇다. "이 기자 기사 잘 보고 있어"

늘 선배는 조용히 말씀하신다. 정말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되묻곤 한다. 

"네?" or "뭐라고요?"


그리고 선배는 걸음도 느리다. 

정말 느리다. 1m 가는데 30초 정도가 걸린다. 

슬로비디오를 작동시켜놓은 것처럼 천천히, 조심히, 조용히 이동하신다. 

그런 선배가 퇴근할 때는 바퀴 달린 신발을 신은 것처럼 빠르다.  

A 선배를 보고 있으면 영화 '주토피아'에 나오는 '나무늘보'가 생각난다.


그런 A 선배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정말 잘 어울린다. 

느린 행동을 보고 조곤 한 말투를 듣고 있으면 사색에 잘 잠기실 것 같다.

많은 생각은 소설의 소재로 쓰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선배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시다.

책도 즐겨 읽으시고 가끔은 문학 공모전에 직접 쓰신 소설을 제출하신다.

주위 사람들에 의하면 상도 많이 받으셨다고 한다.


그동안 선배가 쓰신 소설이 궁금하지 않았는데,

오늘 카카오 스토리에 쓰신 할머니에 대한 글을 보고

선배가 쓴 글을 읽고 싶어 졌다. 


글에는 사람의 성격이 묻어나는 것 같은데

오늘 본 선배의 글은 참 따뜻했다. 


구절을 조금 인용하자면 "질곡의 세월을 산 할머니는 억세신 면이 있었는데, 나의 노력으로 꽃처럼 부드러워지셨다"라고 한다. 

사람을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선배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넘쳐흘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애정이 있어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상대방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튼,

사랑이 느껴지는 그런 구절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런 선배의 글을 보며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궁금한 게 많아졌다. 선배가 쓰신 소설이 궁금한 이유다.

선배가 쓰신 글들을 보면 조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사시고, 

삶에 어떤 태도를 보이시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까 싶다. 


사회성이 없어 동료들에게 비난과 질타를 많이 받는 분이시지만,

A 선배가 쓴 글은 정반대일 것 같다. 

돌아오는 월요일엔 선배에게 소설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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