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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술 한잔 할까 Apr 20. 2017

떠나요. 셋이서! 전통주 훌훌 마시러

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우술까'

                                                                                                                                                                                                                                                                                           W. 장기자


알고 보면 '우술까'는 저기 먼 전라도 정읍에서부터 시작한다. 2년 전, 우리는 각자 다른 목적으로 죽력고를 빚는 '태인주조장'에서 만났다. 나는 취재를 위해 갔었고, 신쏘는 공부를, 박언니는 여행 차 들렀다. 그때의 우연이 인연이 되어 이제는 좋으면 좋아서, 슬프면 슬퍼서 서로를 찾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의 첫 만남을 추억하자는 의미랄까? 지난해 '우술까'를 시작하면서 2017년 새해에는 양조장 여행을 떠나자고 누차 이야기해왔다. 산이 우거진 강원도부터 바다건너 제주도까지 모조리 함께 돌아보자고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거창한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수백, 수천 가지의 이유들이 생겨나더라. 뭐, 결국 바쁘다는 말 한 마디로 통하겠지만. 


못갈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여행 계획을 잔뜩 늘어놓았다. 어디는 당일치기로 가고 싶다, 또 어딘가는 3박4일이었으면 좋겠다며, 떠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그날그날의 술안주가 되었다. 얼마 전, 회의를 빙자한 만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이야기는 여행으로 흘러갔고, 흥이 올랐을 때쯤 한마디 툭.


"아쉬운 대로 술 여행은 어때?"

누구의 아이디어였더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꿩 대신 닭'이라며, 지역 술로 미련만 가득한 양조장 여행의 종지부를 찍자더라. 이윽고 우리는 각자 가고 싶었던 지역을 골랐고, 술 목록까지 완성했다.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총 6종, 마트에서는 전부 구할 수 없으니, 발품을 팔 수 밖에. 결국, 우리는 홍대에 위치한 전통주 바 '술 그리다'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170여 종에 달하는 술을 취급한다. 우리가 선정한 술 대부분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지만, 몇몇은 특별히 이번 여행을 위해 우리가 직접 준비했다. 


자,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으니, 술 여행을 시작해보자.


■ 강원도 정선 '곤드레 막걸리'


첫 스타트는 강원도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신쏘는 강원도에 유난히 애착을 보였다. 어릴 적 선수를 꿈꿨을 만큼 스키를 좋아하는 탓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양 강원도에 자주 갔단다. 애시 당초 신쏘는 강원도 술 소개는 자신이 해야 한다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 했었다. 넓고, 넓은 강원도 중에서 한 곳만 꼽으라고 했더니, 제법 고민을 하다가 이내 정선을 콕 집는다. 


강원도 정선은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몹시 추운 지역이다. 신쏘 역시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러 갔다. 게다가 가족끼리 함께한 곳이어서 더 애착이 간다더라. 특히 부모님과 함께 갔던 정선 5일장은 재미와 정겨움이 가득하다며, 한껏 들떠서는 재잘거렸다.

이번에 추천한 '곤드레막걸리’'역시 정선 5일장에서 사온 메밀전병과 함께 마셨다고 했다. 맛이나 양조장, 제조과정을 다 떠나서 그저 좋은 기억이 가득한 술이란다. 그래서 꼭 소개하고 싶다나? 


'곤드레막걸리'는 농업회사법인 정선명주에서 만들고 있는 술이다. 인위적인 초록색이 아닌 곤드레 자체의 옅은 초록빛이 감돈다. 곤드레 나물만의 쌉싸름한 맛이 쌀의 단맛과 어우러져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이 제품은 완벽하게 밀폐되도록 내압병을 사용한다. 덕분에 탄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청량감을 두 배로 느낄 수 있다.


■ 경기도 포천 '느린마을 막걸리'


경기도는 박언니가 소개하기로 했다. 경기도에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며, 결정을 못하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포천을 적어냈다. 초등학생 때, 박언니는 포천 산정호수로 소풍을 갔다. 커다란 관광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갔던 기억, 그 설렘이 남아있는 곳이란다. 박언니는 생각해보면 멀지도 않은데, 그 이후로 여태껏 가지 못했다며 이야기 하는 내내 아쉬워했다.  


산정호수는 연간 100만여 명이 찾는 대표 관광지이다. 특히 요즘 같은 봄에는 주변 산과 꽃들로 더욱 아름답다. 게다가 박언니가 이곳에 가고 싶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인기리에 종영했던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촬영지인 ‘돌담병원’도 이곳에 있다. 박언니는 "드라마 보는 내내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다"며, "사실 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조심스레 고백했다. 

산정호수를 다 둘러보고 난 뒤에는 포천의 명물인 이동갈비를 먹고 싶다고 했다. 이때 주먹까지 불끈 쥐었다. 이동갈비에는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길래 '포천일동막걸리'를 말 하는 건가 했더니, 아니다.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라더라. 


'느린마을 막걸리'도 이곳 포천에서 태어났다. '2015년 우리술품평회 생 막걸리 부문 대상'을 받은 바 있는 녀석이다. 일반 누룩보다 15배 당화력이 높은 누룩을 사용하여 인공감미료에서 느껴지는 텁텁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단맛과 탄산을 끌어냈다. 박언니는 '느린마을 막걸리'가 갈비 특유의 느끼함을 달래주고, 밥을 따로 시키지 않아도 쌀 막걸리로 인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 충청북도 영동군 '원 와인' 


전통주 소믈리에인 신쏘는 충청북도 영동과 인연이 깊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조 및 실무를 배울 수 있는 4년제 대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신쏘는 이곳에서 '와인발효 식음료서비스'를 전공했다. 덕분에 4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고 했다. 영동 그리고 영동의 술에 대해서는 추억도, 지식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영동은 전국 최대면적을 자랑하는 포도 주산지이다. 국내에서 와인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신쏘는 4년 동안 한국와인의 제조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마시며 공부를 했다. 졸업할 때쯤 되니 특별히 애정이 가는 와인까지 몇몇 생겨났더란다. 요즘에도 신쏘는 울적한 날이면 영동와인을 찾는다. 이국땅이 아닌, 본인 추억이 깃든 곳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인지, 영동와인만이 주는 따스하고, 친근한 느낌이 있단다. 

이번에 소개할 영동와인은 '원 와인'이다. '원 와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먹는 '캠벨포도'로 만들어져 익숙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다른 레드와인과 비교하여 타닌감이 적고, 부드러워 레드와인을 마시는데 부담을 느끼는 초보자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와인이다. 스위트, 드라이, 미디엄드라이 총 세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면 된다. 


우리가 마셨던 스위트와인의 경우, 차갑게 마셨을 때 훨씬 매력적이다. 와인에이드처럼 달콤하면서도 상큼하다. 특히 신쏘는 '원 와인'에 사이다나 스파클링 워터와 레몬을 더하여 마시는 것을 즐긴다.

  

■ 전라북도 남원시 '황진이'


경기도와는 다르게 전라도에서는 단번에 지역과 술을 고른 박언니다. 전라북도 남원을 선택했는데, 이유는 '낭만'이란다. 혹시 '춘향이랑 이몽룡' 때문이냐고 물으니,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눈빛까지 반짝반짝. 이럴 때 보면 가끔씩 소녀 같을 때가 있다. 로맨스와 낭만, 분위기에 약하다. 


남원에는 춘향이와 이몽룡이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됐다는 ‘광한루’가 있다. 문화적 가치가 있는 정원이라는데, 그냥 딱 봐도 예쁘다. 춘향이랑 이몽룡의 사랑도 아마 이 광한루의 분위기가 한몫 톡톡히 했겠지. 특히 봄의 광한루는 벚꽃, 매화, 개나리, 살구꽃이 잇따라 꽃망울을 터뜨려 박언니 말대로 낭만이 곳곳에 가득하다. 박언니는 셋이서 한복을 맞춰 입고 꼭 가고 싶다고 했다. 아, 사랑과 낭만, 로맨스의 현장에 여자 셋이라니! 어쩐지 퍽 맘에 들지는 않는다.

당장이라도 박언니가 떠나자고 할까봐, 급히 술로 화제를 바꿨다. 박언니는 남원 참본의 '황진이'를 마시고 싶단다. 이왕이면 얼큰한 남원 추어탕과 함께 말이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만큼 뜨거운 추어탕을 후후 불어가며 한입, 마무리는 상큼한 '황진이'를 한 모금. 박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주 기갈나는 조합이다. 


'황진이'는 전북 청정지역에서 자란 질 좋은 오미자와 순곡을 주원료로 한다. 여기에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약초를 넣어 옛 선조의 전통기법으로 빚는다. 약재효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숙취가 없고, 부드러우며 청량감이 풍부하다.   


■ 경상북도 안동시 '명인 안동소주'


경상도는 나, 장기자가 선택했다. 부산, 함양, 울산, 문경, 대구 등 다양한 지역과 술이 떠올랐지만, 고르고 고른 게 안동이다. 안동에는 여러 브랜드의 안동소주가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선택한 건 식품명인 제6호 박재서 명인의 ‘명인 안동소주’이다. 이 술은 불 맛이 적고, 은은하며 맑은 향이 난다. 알코올 도수는 22도부터 45도까지 다양한데, 제일 높은 45도짜리를 마셨다. 


박언니나 신쏘처럼 좀 그럴듯한 이유면 좋으련만, 내 선택의 8할은 아쉽게도 '남자' 때문이다. 소녀시절, 짝사랑했던 옆집 오빠는 경상도 남자였다. 조금 촌스러운 옷차림, 어설펐던 서울말. 사소한 것 하나 하나 전부 어찌나 설렜던지, 참 여러 날을 그의 생각에 잠 못 이뤘다.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고, 심지어 얼굴조차 희미한데. 추웠던 겨울, 미니스커트 차림을 한 내게 "춥지도 않냐?"는 무심한 말과 외투를 건네던 모습만큼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같은 경상도라는 점 뿐만 아니라, '명인 안동소주'와 그는 어딘가 닮은 것도 같다. 이상하게 이 술만 보면 그가 생각난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45도의 강렬한 알코올. 입안 전체를 잔뜩 자극해 놓고는 마지막엔 살살 달래가며 목을 타고 흘러 넘어간다. 참 무심한 것 같지만 한편으론 부드럽고 자상한 면모가 있다. 


나의 사랑 얘기에 우리의 분위기는 제대로 무르익었다. 이미 신쏘와 박언니에게 여행과 술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라는 질문만 연달아 날아온다. 어떻게 되긴, 고백 한번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당시 나는 속만 끙끙 앓았었지. 두 여자 모두 시시하게 끝난 짝사랑 이야기에 혀를 끌끌 차며, 나를 토닥인다. 박언니는 옆에 있던 '명인 안동소주'를 집어 들더니 비어있던 잔을 가득 채워주더라. 마시란다.  


뭐야, 다들 왜 안쓰럽게 보는 건데?


■ 제주 '오메기술'


같은 대한민국인데도 이상하게 제주만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햇볕 한줌, 바람 한 점조차도 이곳에서는 낭만으로 느껴진다. 제주에는 대여섯 번쯤 다녀왔다. 여행도 있었고, 취재차 가보기도 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제주는 참 아름다운 섬이다. 그에 어울리게 섬 곳곳에는 여유가 흘러넘친다. 


지난달 떠났던 제주여행에서 '오메기술'을 마셨다. 항상 서울에서만 마셔봤지, 제주에서는 처음이었다. 이날 '오메기술'을 마시며, 숙소 앞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 출렁이는 바다는 푸르다 못해 잔 속 술처럼 녹색 빛이었다. 아름다웠다. 제주바다를 안주삼아 나와 친구는 건배를 나눴다. 우리는 술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금세 취기가 올랐고,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정말이지 최고의 여행이었다.

내가 신나게 제주여행에 대한 썰을 늘어놓는 동안 두 여자는 '오메기술'을 마시느냐 정신이 없어보였다. 병을 살펴보니 이미 반절가량이나 마시고 없다. "저기, 내말 듣고 있는 거지?"라고 물어보니, 대답 없이 신쏘가 술 한 잔을 따라 슥 내민다. 아, 역시 맛있다. 


'오메기술'은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제주샘주'라는 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다. 오메기는 좁쌀의 제주 방언으로, '오메기술'이라는 이름은 좁쌀로 만든 술을 의미한다. 차좁쌀을 가루로 만든 오메기 떡을 삶아 잘 으깨서 누룩가루와 제주 청정수를 섞어 항아리에 넣고 일주일 정도 발효시키면 상층부에 맑은 청주가 생긴다. 이 부분이 바로 '오메기술'이다. 


'오메기술'은 상큼한 과실향과 차좁쌀의 독특한 향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하다. 알코올 도수는 도수 13도로, 쓴맛이나 알코올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끊임없이 들어간다. 

아쉬워서 한잔 더 마시려고 보니, 두 여자가 그새 다 마셔버리고 빈병만 남았다. 그저 입맛만 쩝쩝 다실뿐이다. 아직 해도 중천인데, 우리 셋 모두 취기가 올라 볼이 발그레. 우리의 미련 가득한 술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세 여자는 누구?>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우술까(우리_술 한잔 할까?)'를 기획,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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