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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Jul 08. 2021

하수구 안에서

아무 것도 죽지 않는 도시에서 그 무엇도 잊지 않는 할아범이 언젠가 했던 이야기이다.


옛날보다 더 옛날에 한 장사꾼이 도시를 지났어.

푸른 뱀과 덜 익은 구스베리를 갈아만든 만병통치약을 들고

그는 도시에 왔다가 투덜대며 곧장 나가는 길이었지.


그런데 그가 막 하수구 옆을 지나려는 참에 창살 틈새로 휘파람 소리가 새어 나왔어.

바람이 하수구 안을 휘돌아 작은 창살 틈을 비집고 나오는 소리라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을 게다.


그러나 그 날은 특별히 몹시 한가했고

갈 길을 재촉하여 만날 이도 없었기에

장사꾼은 그저 슬쩍 돌아본거지.

그게 무언가 확인하려던 것도 아니고

그저 새벽녘에 코를 훌쩍이거나 밥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것처럼

그저 슬쩍 돌아본거야.


그게 마법의 조건이거든,

장사꾼이 알았을 리는 없지만.

왜 장사꾼들은 별 걸 다 알고 있다고들 생각한 시절도 있었지만

사실 그네들은 여지껏 아무 것도 모른단 말야.

주머니 속에 얼마든지 셈할 것이 있고

보따리 속에 나중에 셈할 수 있을 것이 있으면

배때지를 불리고 아무 미련이 없는 것이 그네들이거든.


아무튼 그 장사꾼은 몰랐던 것이 확실해.

돌아보고 그 작고 반짝이는 눈과 마주쳤을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걸 봤거든.

그 눈이 거기 있어서 놀라기도 했겠지만

무슨 낙타나 표범 따위나 봤을 법한 그런 이름 붙이기 나름일 보석 같은 반짝임이었거든.

장사꾼이야 누구나 보석이라면 환장하지 않겠어?

냉큼 홱 돌아섰어야 제놈 본성인데


어째 발이 붙은 듯 고개만 빼꼼 돌린 채 돌아설 수가 없더란 말이야.

실제 못한 것은 아니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거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도 같고

눈치채지 못 한 척 가야할 것도 같고

그런데도 눈은 뗄 수가 없어서

그러고 잠시 만들다 만 동상마냥 서서 고개를 돌린 채 있었다지.


작은 눈이 깜박이면

장사꾼도 눈을 깜박, 하고

작은 눈이 갸우뚱하면

장사꾼도 눈을, 아니지 머리를, 아니지 온몸을 갸우뚱 했지.


어째 자꾸 부르는 것도 같고

웃는 것도 같고

본 적이 있는 것도 같고

좀 다가가도 될 것도 같고


그래서 발가락이라도 움찔 할까, 말까 그러고 섰는데


아 거기까지야

내가 본 건.


그 후에 어찌되었을까. 지켜서서 좀 봐둘걸 아쉽게 됐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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