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씨에게는, 그러니까 윌리엄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씨의 이름이 윌리엄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윌리엄씨는 이따금씩 돌아누우려다 긴 꼬리가 동굴 벽에 부딪는 것을 보고 소스라쳐 인사를 할 뻔 했다.
그것이 그냥 윌리엄씨의 꼬리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눕긴 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윌리엄씨는 딱히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한 천년쯤은 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배고픔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생각해보자면 동굴 밖에 나가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보아야할텐데 이토록 배가 고플 때에 움직이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윌리엄씨는 그냥 거기에 누워 있었다.
나가서 무언가 잡아먹던 시절도 있던 것 같지만 어느 날부턴가 굳이 먹지않아도 되는 것을 먹기 위해 기어오르고 날고 이빨을 드러내고 움켜쥐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윌리엄씨는 아주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한참을 더 살 것 같았기에 당분간은 그냥 이대로 지내기로 했다.
배고픔만큼 서러운 것은 그냥 이대로 지내는 것 말고 별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이미 해 본 생각이었다.
아주 오래 산다는 건 때로는 깊이 우울해진다는 것이라서 윌리엄씨는 가끔 눈물을 흘리고 싶을만큼 서러워졌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눈물은 곧장 뺨으로 흘러내려 입가를 적실텐데 그랬다간 불꽃을 만들어내는 마지막 어금니 근처가 젖어버릴 것이다.
사실 불을 뿜을 필요가 있기나 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입가는 늘 마른 채로 두어야 했다.
그래서 윌리엄씨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콧김을 살짝 뿜는 정도로 우울을 내쉬곤 했다.
그것도 조심해서 해야했다. 자칫 너무 센 콧김을 뿜으면 매캐한 연기같은 콧김이 우연히 지나가던 생쥐나 전갈 따위를 질식시킬 수도 있었다.
몇 차례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한동안 거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아서 적적함이 말로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죽더라도 생쥐같이 작은 것을 입속에 넣는 것도 고역인데 이빨 사이로 빠져버리기 일쑤인데다 맛도 없고 허기가 가시지도 않았다.
위장을 움직이게 만들 뿐이라 배고픔만 더해져서 도마뱀이나 생쥐는 먹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 날은, 윌리엄씨가 우울함과 배고픔으로 살짝 돌아누워 콧김을 뿜던 그런 날이었는데,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시각에 누군가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있었다.
예전에도 가끔씩 몇 사람, 한 사람, 몇 마리가 들어오기도 했기에 윌리엄씨는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동굴은 제법 넓고 깊어서 어느만큼 들어오다가 다시 나가는 수도 있기에 잠자코 기다릴 뿐이었다.
조금, 설레기도 했다.
윌리엄씨는 대화를 즐기던 편이었는데, 오래 전에는 동족이 많았기 때문에 몇날 며칠을 한 가지 주제로 여럿이 모여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서로의 보금자리를 방문하고 교류하던 시절 말이다.
지금 그들은 대부분 죽거나 사라져 과연 어딘가의 동굴이나 산 속 같은 곳에 동족이 있긴 할런지 알 수 없었다.
윌리엄씨나 윌리엄씨의 동족이 죽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어쩐지 죽는 것은 유쾌하지 않게 여겨졌기에, 윌리엄씨는 어느 해질 무렵에 이 동굴을 발견했고 잠시 조용히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많은 방문자가 있었다.
윌리엄씨가 동굴 밖으로 나와 자기들을 잡아먹을 거라는 공포에 선동된 무리들이나 대단한 모험담을 가지고픈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덤벼들거나 슬금슬금 다가와 눈이나 입가 같은 곳을 찌르려했기 때문에 잡아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각종 금속을 몸에 두르고 오기 일쑤였고 뼈나 갑옷을 뱉어내는 것은 귀찮기도 하고 동굴을 좁게 만들었기 때문에 윌리엄씨는 그들을 먹는 것을 즐기지는 않았다.
얼마 간이 지나자 방문은 뜸해졌다.
여기서 살아볼까 하는 듯한 곰이나 늑대무리도 거의 없어졌고 가끔 찾아오는 사람은 갑옷 대신 빛나는 물건들을 가지고 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머리에서 빛이 나고 어떤 이는 손에서 빛이 났는데 가끔은 머리와 손에 모두 빛나는 물건을 들고 있었다.
방문은 갈수록 더 뜸해졌고 그 날은 정말이지 아주 오랫만의 방문자였다.
그래서 윌리엄씨는 말이라도 걸어볼까 잠깐 생각했는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윌리엄씨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그 날 윌리엄씨는 우울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적적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기다란 줄에 매달린 그 사람이 윌리엄씨에게 빛을 비추었을 때, 윌리엄씨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일단 덥석 물었고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던 생각은 그가 목구멍을 지날 즈음 다시 떠올랐다.
윌리엄씨는 딱딱하고 빛나는 물건들을 툭툭 뱉고 콧김을 푸슉 내쉬었다.
그래도 잠시 허기가 가신 것에 만족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아쉬운 일은, 그 사람도 역시 윌리엄씨에게 윌리엄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