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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Aug 16. 2018

친구들의 배낭이 무거운 이유

배낭은 무겁게, 쓰레기통은 가볍게 - 제로 웨이스트 사회를 꿈꾸며


생각해보면 나는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 때가 많았다. 대학생 때는 사물함에 책을 넣고 다녔고 지갑은 바지 주머니에 넣을 수 있게 항상 천으로 만든 카드 지갑만 썼으며 다들 있는 옆으로 매는 핸드백 하나도 없었다. 일을 시작하면서는 티나지 않게 퇴근하기 위해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았고 무언가를 꼭 가지고 다녀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접어 넣을 수 있는 종이가방을 사용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가방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었고, 조금만 매고 있어도 괜스레 어깨가 아팠다.


스웨덴에서 공부하면서 몇몇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생겼다. 스웨덴, 덴마크, 브라질, 호주, 국적은 각기 달랐지만 우리는 거의 매일 붙어 다녔고 수업 후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국적도, 성격도 모두 다른 친구들이었지만 이 친구들의 공통점이란 아주 큰 배낭을 빵빵하게 채워 매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수업 자료를 보기 위해 노트북을 배낭에 넣어 다니긴 했으나 친구들처럼 커다란 배낭을 가득 채울 정도는 아니었다. 하루는 덴마크 친구에게 배낭에 무엇이 그리 가득 들었는지 물었는데 친구는 그저 '필요한 것들만' 넣었으며 평소에도 이 정도는 가지고 다녀서 무겁지 않다고 대답했다.


친구들의 배낭이 크고 무거운 이유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배낭에는 대략 이런 것들이 들어있었다. 물병, 텀블러, 도시락통(보통 플라스틱 밀폐용기나 잼병), 간식통(바나나, 당근 등의 간식), 숟가락과 포크 등의 식기, 선글라스, 노트북......


친구들은 아주 커다란 물병과 여분의 텀블러를 한두 개씩 꼭 들고 다녔는데 이는 도서관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부지런한 친구들은 점심 도시락도 꼭 챙겨 다녔는데 도시락통은 그저 둥그런 플라스틱 통인 경우가 많았다. 잼병을 도시락통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볶음밥이나 커리를 잼병에 넣어오는 식이었다. 도시락이 있으니 응당 수저(혹은 스푼과 포크)가 따라와야 한다. 일회용 식기를 쓰는 친구는 없었다. 모두 자기 숟가락이나 포크를 챙겨 다녔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나 또한 내 개인 식기를 항상 들고 다니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쇠숟가락을 꺼내는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배낭이 빵빵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스웨덴에서의 2년간의 생활은 일회용품이 너무나 쉽고 익숙했던 그 전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씩 일회용품을 줄여가는 노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파티를 할 때에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 꼭 머그잔이나 유리잔, 혹은 텀블러를 챙겨가야 했다. 누군가는 참 귀찮은 짓이라 하고 네 친구들 참 유별나다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함께 지냈던 나는 결코 그런 일들이 귀찮지 않았다. 원래도 무거운 배낭이 아주 조금 더 무거워지는 것뿐, 그리 큰 일은 아니니였으니 말이다.


경험상 감히 잼병의 변신은 무죄라 말하고 싶다

                                                               

마트 채소코너를 가득 채운 플라스틱 포장지들

이제 나 또한 가방 없이 집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챙길 것이 많아졌다. 내가 챙겨 나가지 않으면 결국 일회용품을 써야 하거나 새 것을 사야 하는 일이 생기니까. 카페에 가면 머그컵에 커피를 받거나 텀블러를 사용하면 된다. 일회용 빨대 대신 다회용 빨대를 가지고 다니면 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비닐 포장을 가득 담아오게 되는 마트에 가면 참 난감해진다. 이 부분은 스웨덴에서도 고민했던 부분이었는데 한국 마트에 가서 보니 더욱 심각했다.



대형마트 과일 코너, 채소 코너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다. 색색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어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염려스러웠던 부분은 과일, 채소 할 것 없이 대부분 비닐(플라스틱) 안에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과일은 단단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있었고 채소는 일정한 양만큼 비닐 포장지에 담겨 있다. 왜 이렇게 포장을 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2가지의 이유가 떠올랐다.


첫째는 상품성. 비닐에 포장되어 있으면 흙이 떨어진다거나 외부 먼지가 묻을 염려가 적고 소비자도 물건을 편하게 집어갈 수 있다. 또 상품 이동이나 진열시에 물건끼리 부딪혀 깨진다거나 물러질 가능성도 줄어들고. 소비자에게 잘 팔리기 위해선 깔끔하고 깨끗해 보여야 하니까 말이다.


두 번째는 판매자의 수익성 때문. 비닐, 플라스틱 포장에 담긴 물건을 사는 건 소비자가 판매자가 정한 양만큼 사야 한다는 의미다. 판매하는 입장에선 물건을 많이 팔수록 이익이 늘어나니까 무게, 개수 단위로 팔지 않고 봉지나 묶음 단위로 파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대형마트에는 유독 0봉, 0망, 0단 같은 단위가 많다. 정확히 몇 그램인지 찾아보려고 포장을 살펴봐도 정확한 중량이 없는 경우가 꽤 있었다.


스웨덴 마트의 투박한 진열장


예전에 찍었던 스웨덴 마트의 과일, 채소들. 종이 상자째로 혹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통째로 담아서 파는 상품들이 대부분이다. 진열 방식은 한국에 비해 많이 투박해 보인다. 물론 비닐로 포장된 과일, 채소류도 있지만 비율로 따지고 보면 한국 마트의 비닐 포장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럼 스웨덴에선 양파나 감자를 사서 맨손으로 들고 오나?'를 궁금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스웨덴에서도 마트 비닐을 쓴다. 한국과 똑같이 비닐봉지에 필요한 양만큼 채소나 과일을 담아서 사가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비닐 사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경우엔 스웨덴에 살면서 아보카도, 토마토, 바나나, 파 같은 물건을 살 때 비닐에 담지 않고 그걸 그냥 집어서 계산대 위에 올렸다. 또 가끔은 전에 감자를 담았던 비닐을 들고 마트에 가서 거기에 새 감자를 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마트에선 비닐 사용 여부를 소비자가 결정할 수 없다. 물건이 처음부터 포장된 상태로 나오고 좋든 싫든 스티로폼과 비닐 옷을 입은 물건 외엔 선택지가 없으니까 말이다.



포장지 없는 가게들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있던 중 친구의 소개로 성수동 '더 피커'란 가게에 가게 되었다. 그곳은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을 없애고 친환경 곡물, 채소 등을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직접 가져온 장바구니와 용기에 담아 가도록 하는 제로 웨이스트 컨셉의 가게였다. 더불어 이곳에서 판매하는 재료들로 채식 위주의 식사 메뉴와 스무디를 판매하고 있었다. 공간이 넓지는 않았지만 인테리어와 메뉴 구성은 확실히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하지 않나 생각했다.


더피커 매장 사진과 친구들과 함께 먹은 더 피커 메뉴들. 맛있고 알찼다


다만 곡물이나 채소를 사러 오는 사람보다는 음식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보니 이 곳에서 장을 봤다는 사람들보다는 식사를 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들과 이런 제로 웨이스트 컨셉의 가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가 갔던 코펜하겐 LØS market을 떠올렸다.


코펜하겐의 LØS market (출처: http://thecopenhagentales.com/)


덴마크 친구 여럿에게 추천받아 갔던 LØS market. 친구들이 실제로 장을 많이 보는 곳이라고 해서 나도 방문했었다.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도시락통들을 모아 배낭에 넣어 갔다. 가게 규모가 큰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없는 것들이 없었다. 구석구석 가게 공간을 잘 활용해 진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과 올리브 오일, 식초, 꿀을 병에 담아 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특히 좋았다. 여러 가지 식재료들을 내가 직접 담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재미였다.


가끔 어떤 가게를 들어가기 전 가게 외관이 너무 모던하거나 깔끔하면 들어가도 되나 하면서 주저하게 될 때가 있는데 LØS market의 경우 동네 채소가게처럼 여러 채소들이 가게밖에 진열되어 있어 주저 없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가격 또한 아주 부담스럽지는 않았고 다른 가게에 없는 식재료들(특히 다양한 향신료)도 많아서 장보는 재미도 있었다.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이 샌프란시스코의 레인보우 그로서리, 그리고 더피커 대표가 참고했다고 하는 독일의 오리지널 언페어팍트인 것 같다. LØS market은 규모로 보면 오리지널 언페어팍트와 유사하지만 진열 방법이나 고객 응대를 보았을 때 여느 동네에나 있는 접근성 좋은 슈퍼마켓 같은 느낌이라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던 것 아닐까 생각했다. 레인보우 그로서리의 경우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파는 물건들도 정말 다양해서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왼쪽 사진은 레인보우 그로서리(출처 https://bartable.bart.gov)/ 오른쪽 사진은 오리지널 언페어팍트(출처 http://www.doppelberlin.com)


한국에 처음 생긴 제로 웨이스트 가게 <더 피커>가 어떤 방향으로든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해나가기를 바라본다. 나도 다음번에는 여러 가지 용기를 가져가서 이것저것 구입해볼 생각이다. 더불어 꼭 제로 웨이스트 가게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슈퍼마켓, 마트에서 플라스틱, 일회용 포장이 점차 줄어들기를.


최근 내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딸기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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