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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Jan 27. 2017

유통의 굴레에 묶인
쓰레기를 구하라

나의 첫 덤스터 다이빙 체험기


스웨덴에 오고 처음 마트에서 장을 보다 뭔가 조금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우유의 '유통기한'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 우유를 사고 두 번째로 알아차린 것은 이 유통기한이 지나면 정말로 우유가 상해버린 다는 사실. 대체 이건 뭐지, 유통기한이 딱 하루 지나고서 요거트가 되어버린 우유를 보며 의아했다.


그렇다, 그것은 '유통기한'이 아니었다. 바로 '소비기한'이었던 것.


-유통기한 : 음식이 만들어진 후 유통될 수 있는 기간. 식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최종시한

-소비기한 : 소비자들이 식품을 먹어도 건강상 이상이 없는 기간.


'유통기한'의 굴레에서 벗어나 실제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소비기한'을 보자면,

개봉하지 않은 채 냉장 보관된 우유는 제조 후 45일까지 마실 수 있고, 달걀은 냉장고에서 최소 3주, 최대 5주까지 보관해도 신선하다. 식빵은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면 최대 20일 정도까지도 먹을 수 있다.


음식물 낭비 방지를 위해 일본, 독일, 스웨덴 등의 나라에서는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에선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음식물 물량이 연간 6500억에서 1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고 하는데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하면 이런 낭비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유통'의 굴레에 묶인 쓰레기를 구하는 방법, 첫 번째는 이런 소비기한의 도입이다.


하지만 일부 품목에 소비기한을 도입한 스웨덴에서도 많은 음식과 물건들이 폐기 처분되고 있다. 유통기한이나 소비기한과 관계없이 흠집이 난 과일이나 채소, 사람들이 더 이상 사지 않는 학용품과 생활용품들, 유통기한이 지났으나 멀쩡한 식빵과 과자 등. 


그런데 이렇게 버려지는 쓰레기 아닌 쓰레기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바로 내 주변에 있었다.


학과에서 공동으로 쓰는 부엌 식탁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신선한 음식들과 유통기한이 딱 당일까지인 식빵들. 어떤 때는 해가 지난 다이어리, 스니커즈, 스타킹, 양초 등 다양한 물건들이 식탁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Whatever you want, take them to your home!"(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집에 가져가!)라는 사랑스러운 메시지와 함께. 대체 누굴까, 때 지난 산타클로스일까?

이것들은 산타의 선물도 무엇도 아닌 '덤스터 다이버'들의 선물이다. 


그런데... 덤스터 다이버들이 누구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Dive!'의 한 장면


덤스터 다이버는 한마디로 덤스터에 다이빙하는 사람들이다. '덤스터(dumpster)'는 대형 쓰레기통을 의미한다. 즉 위의 사진처럼 슈퍼나 마트 주변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몸을 던져 버려진 음식과 물건들을 구해내는 사람들이 '덤스터 다이버'이다. 그들이 덤스터 다이빙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쓸모 있음에도 유통의 굴레에 매여 '쓰레기'로 정의되는 아까운 음식과 물건들을 쓸모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여전히 쓰레기가 되기엔 아까운 상품들, 내가 찾은 두 번째 방법은 '덤스터 다이빙'이다.


사실 이 두 번째 방법은 때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쉽게 말해 '불법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나라마다 법이 달라 덤스터 다이빙이 합법적인 곳도 있지만 사실 스웨덴에서 덤스터 다이빙은 불법이다. 내 주변에 유독 덤스터 다이버들이 많고 저녁에 마트 주변을 지나치다 마주친 적도 꽤 많아서 불법인 것은 최근에 알았지만. 아무래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거나 환경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 덤스터 다이빙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폐기 처분되는 쓰레기 아닌 쓰레기들이 많다는 걸 수업시간에 배우고 나면 저절로 몸이 근질거리게 되니 말이다.


나 또한 덤스터 다이버들의 권유에 몸이 근질거렸지만 쉽게 도전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무엇보다 마트 문이 닫힌 밤에 몰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두려웠고. 두 번째, 쓰레기통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덤스터 다이빙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쓰레기통'에 있는 물건들이니 세균이 있을 수도 있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고 탈이 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위험들은 좀 더 조심하고 신중을 기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듯싶었다. 일단 첫 시도를 해보는 것, 그리고 정말 멀쩡한 것들이 쓰레기가 되고 있는지 확실히 목격하는 것, 이것이 내 첫 덤스터 다이빙의 목적이었다.


쓰레기통에 뛰어든다는 것, 어떤 느낌일까?


집 주변 마트 옆에는 이렇게 개방되어 있는 창고들이 있고 그 옆에 쓰레기통(덤스터)들이 있다. 방법은 상상보다 훨씬 간단했다.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안에 무언가가 있다면 들어가서 꺼낸다, 꺼낸 것 중에 꼭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골라낸다, 이것이 끝. 쓰레기통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멀쩡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심지어 활짝 핀 장미 한 다발을 찾아내기도 했는데 집에 이미 식물이 많아서 그것은 다른 덤스터 다이버들을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이것이 내 첫 덤스터 다이빙의 수확물. 딱 두 사람이 먹을 만큼만 선별하여 가져온 것이다.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식빵들과 멀쩡한 샐러드 채소, 전혀 무르지 않은 각종 과일들. 왜 버려진 것인지 의아할 만큼 상태가 좋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든 것들, 비닐에 쌓여 있는 것들까지 깨끗이 씻었고 되도록 빨리 먹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쭉 정렬을 해놓고 보니 무엇보다 이것들이 '쓰레기'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내가 오늘 소량의 음식들을 구해냈지만 아직도 쓰레기통에 가득 남아있는 그 멀쩡한 쓰레기 아닌 쓰레기들은 누가 구해준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내가 구해낸 식빵과 샐러드 채소, 그리고 싱싱한 과일로 만든 저녁 식사. 내가 이걸 '쓰레기로 만든 저녁 식사'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한국에 가서도 버려지는 음식들, 이 쓰레기가 아닌 쓰레기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려 한다. 한국의 마트는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다이빙할 덤스터 자체를 찾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제도적으로나 기업의 입장에서 버려지기에는 아까운 음식물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또 처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버려지는 이 아까운 음식들과 물건들, 우리는 이것들을 '쓰레기'로 분류하기 전 '유통'에 대해, 무언가를 버리는 '기한'에 대해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쉽게 쓰레기로 분류하기에 우리 지구는 이미 너무 많은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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