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속가능 스튜디오 Dec 02. 2016

나도 '쿨'하고 싶다, 지속 가능성.

트렌드가 답일까 생활이 답일까, 지속 가능성의 '쿨'하고 싶은 속마음


환경문제,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묵직해진다.


지구온난화,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전형적인 이미지들 (슬프고 참담하고 암울하다) 출처: google image


이유는 세 가지로 나뉜다.

 1. 잘 몰라서. (=모르면 조용히 있어야지)

 2. 아는데 너무 우울하고 암담해서. (=하... 한숨만 나오지 뭐)

 3. 알지만 내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나랑은 좀 먼 얘기 아닌가)


지구온난화를 이야기하면 북극곰에게 미안하고,

멸종위기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냥꾼들이 밉고,

대기오염에 대해 이야기하면 공장 다 없애버려야 돼! 나쁜 자본가들!?? (갑자기 마르크스)


우리는 어쩐지 뭔가를 그만해야 할 것 같고 누군가를 미워해야 할 것 같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슬퍼해야 할 것만 같다. 이런 현실, 아니 사실 이런 '이미지'는 결국 우리 마음의 '짐'이 되고 '죄책감'이 되고 종국엔 '외면하고픈' 것들이 되고 만다. 어쩌면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리를 지속가능성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지속가능성은 '쿨'해지고 싶다.


사실 지속가능성은 '쿨'해지고 싶다. 좀 더 쿨하고 가벼운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사실 별거 아니라서 당장 나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쿨해 보여서 먼저 따라 해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가볍게 매일 얘기해도 질리지 않는 주제가 되는 것.


침통한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북극곰의 슬픈 인생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당장 내가 어제 새로 찾아낸 기가 막힌 빈티지 가게를 공유하는 것이 더 재미있게, 또 의미 있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는 방법이 될지 모른다.


때로는 좀 더 가볍고 쿨해지고 싶은 지속가능성, 나는 북유럽에서 환경학을 공부하며, 또 생활하며 이런 '쿨'한 지속가능성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스웨덴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새롭게 발견한 몇 가지 사실들.



첫 번째, 지속가능성은 트렌드를 넘어선 '생활'이다.


미국 스타벅스 지속가능성 관련 팀에서 일했던 친구가 말했다.

"미국에선 어딜 가나 유기농, 친환경, 지속가능성이 트렌드야. 가게마다 커다랗게 친환경 코너를 따로 만들어놓거든. 그런데 재밌는 게 스웨덴에서는 어디에서도 유기농, 친환경이라고 따로 크게 홍보하질 않아.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들이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들이거든."

그 말을 들으며 무릎을 탁! 쳤다고 하면 과장일까. 미국과 한국에서 유기농, 친환경이 트렌드라면 스웨덴에선 이미 트렌드를 넘어선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도 호들갑 떨며 이야기하지 않지만 누구나 이미 생활의 한 부분으로 가지고 있는 그런 것. 어쩌면 트렌디한 것이 더 '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행을 따라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하지만 트렌드가 한 때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생활로 자리 잡힌다면? 

때로는 '생활'이 '트렌드'보다 쿨하고 강력하다.


한국에선 마트나 백화점에서 유기농, 친환경 코너를 따로 만들어놓고 무엇인가 '프리미엄'인 것처럼 보여준다. 'Organic'이 트렌드이니까.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그쪽으로 감히 눈도 돌리지 못한다. 트렌디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치'가 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힙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스웨덴의 플리마켓


식재료, 식문화 외에도 스웨덴의 지속 가능한 소비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second hand shop(중고가게)'과 'flea market(벼룩시장)'. 내가 사는 작은 도시 룬드만 해도 10개가 넘는 중고물품 가게가 있고 그중엔 사람들이 매일 줄을 서서 들어가는 유명한 곳도 있다. 벼룩시장은 보통 매주 주말에 열리고 룬드 같은 작은 도시에서도 그 규모가 엄청나다. 벼룩시장에 모이는 사람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 어린아이들까지 다양하다. 가끔은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사는 것이 H&M에서 쇼핑을 하는 것보다 훨씬 트렌디하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벼룩시장에서 훨씬 독특한 물건을 살 수 있으며 같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H&M에서 산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가 같은 옷을 입고 온 길쭉한 친구 덕에 하루 종일 기분이 울적해질 바에야 벼룩시장에서 산 빈티지 청자켓을 입고 패셔니스타인 척 해보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


이렇게 지속가능성은 트렌드가 되어도 좋고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은 하나의 습관이 되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고 누구나 꺼내서 나누고 싶은 쿨하고 가벼운 주제가 되면 더 좋겠다는 것. 미국과 한국의 친환경 붐, 친환경 트렌드가 식지 않고 서서히 생활 속에 녹아들어 스웨덴과 같이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쿨'하지 않을까.



두 번째, 지속가능성도 '재미'있다. (일단 입덕이 필요하다)

지속가능성 게임을 하며 꿀잼을 맛보는 나의 친구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팍팍한데 여가 시간에까지 머리 아픈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나와 함께 '지속가능성'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사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혹은 재미있고 싶어 한다). 그들은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보다 막장 드라마로 만들어보고 싶어 하고(실제로 그런 면이 있으니까) 길거리에서 끔찍한 사진들을 들이밀며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함께 게임을 하며 가볍게 얘기해보고 싶어 한다. 지속가능성이란 주제를 던짐으로써 진지한 토론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사실 가벼운 웃음이 필요할 때가 더 많다.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 혹은 생각하지 않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은 집단에서는 어떻게든 이야기를 꺼내어 보는 것, 그저 가볍게 툭 쳐서 상대에게 던져보는 것이 큰 시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게임을 만들고 만화를 만들고 시트콤을 만든다. 같은 콘텐츠도 한 권의 두꺼운 양장본으로 다가올 때와 클릭 한 번으로 접근할 수 있는 웹툰으로 다가올 때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물론 깊이는 다르겠지만). 일단 '웹툰'으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입덕'이 되면 양장본을 슬쩍 들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지 않았나. '쿨하고 재미있는 지속가능성'의 이미지는 사람들을 입덕 시킬 수 있고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지속가능성은 '예술'이 되기도 한다.

시간에 따른 토지 지대 변화 그래프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했다. (Jill Pelto의 Landscape of change)


아름다운 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예술을 통해 사람들은 감동받고 소통하며 때로는 각성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바로 지속가능성을 예술로 접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지속가능성은 영화가 되기도 하고 미술이 되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한다. 과학으로 다가온 지속가능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고 복잡한 이미지를 심어주지만 예술로 다가온 지속가능성은 아름답고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주제든 말로 자세하게 설명할 때보다 눈으로 보이는 예술 작품이 되었을 때 그 흡수력은 배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Jill Pelto는 예술가이자 과학자이다. 그녀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그래프화하고 이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우리는 그녀의 작품들을 수업 교재로 사용하고 감상하며 과학과 예술을 동시에 소비하고 있다.

 

Jill Pelto의 작품들 (출처: http://www.jillpelto.com)


사람들은 예술을 소비하며 트렌드를 따라간다. 때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발견하고 소개하며 예술적 안목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미술, 음악, 영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 또한 이런 트렌드 속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소비될 수 있다. 물론 소비되는 것은 작품, 그 속에 회자되는 메시지는 지속가능성이 되겠지만. 가장 강력하고, 때로는 트렌디하며 또 결국엔 익숙해지는 예술 작품들, 지속가능성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쿨하고 싶은 지속가능성, 거리낌 없이 소비되고 싶은 그 속의 메시지들


지속가능성은 더 소비되어야 한다. 트렌드가 되어도 좋고 생활이 되어도 좋지만, 지금처럼 모두 꺼내기 어려워하는 주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좀 더 쿨하고 좀 더 가벼운 주제, 시답잖게 던져볼 수 있고 때로는 격렬하게 토론되기도 하는 그런 주제.

누군가는 이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를 이렇게 가볍게 다루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덕'없이는 누구도 '덕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이 '덕질'을 할 때 그것은 마침내 '오덕'이 아닌 주류가 된다는 것. 나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