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Chemical, 다크워터스
환경학 공부를 하면서 연구를 위해 스웨덴의 산, 바다, 강, 여기저기로 많이 다녔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소는 내가 사는 지역의 하수종말처리장이었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하수처리장이 나왔는데, 그곳에 갇혀있는 물이 특별히 더럽다거나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곳이 하수처리장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필드트립을 다녀온 이후 스웨덴의 하수처리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부분은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팀이 초점을 맞춘 것은 생활하수에서 검출되는 여러 약물들이었다. 스웨덴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하수에서는 다양한 약물이 검출된다. 이는 사람들이 복용한 약물이 체내에서 분해되지 않고 배설되어 하수에 섞이기도 하고, 복용하고 남은 약을 하수구에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수에 남겨진 약물들은 하천과 토양으로 흘러들어 하천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거나 다시 인간의 건강에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하수에서 발견되는 약물들이 그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하수처리장에서 많이 검출되는 잔류 의약물은 진통제, 해열제, 항생제이다.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이 OECD 국가 중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28.4DDD(국민 1000명 중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의 수)로, 이는 OECD 국가 평균 수치는 20.3DDD에 비해 높은 편이며, 스웨덴 항생제 사용량인 15.5DDD에 비해 거의 두 배인 셈이다. 한편 스웨덴 하수에서는 에스트로겐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어류의 생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는 어린 나이부터 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피임약에 대한 인지가 높은 스웨덴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섭취하는 약물은 일부 하수로 돌아가고, 결국 하천에 사는 어류의 생태에 영향을 주고 그 어류를 섭취하는 인간에게 다시 영향을 준다. 각 사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약물은 우리 몸을 통해 배출되고, 다시 우리 몸으로 돌아온다. 한마디로 뿌린 대로 거두는 셈이다. 이처럼 인간을 위해 만든 것들이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건, 당연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생태학자 Chelsea Rochman는 미세 플라스틱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했다.
"We drink it, we breathe it, we eat it"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We make it"
우리 삶의 편의를 위해 직접 만들어낸 플라스틱은 여러 형태로 우리 몸 안에 다시 들어온다. 다크워터스에 등장하는 PFOA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영화의 말미에 전 세계 인구의 99%의 혈액에 PFOA가 남아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프라이팬, 콘택트렌즈, 아기 매트 등 일상 속에 흔히 존재하는 여러 물건들을 통해 PFOA를 접했고, 일정량 섭취했다. 삶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화학 물질이 우리의 몸에 들어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영화 속 화학자는 "PFOA를 마신다면?"이란 질문에 간단히 대답한다. "안 마시죠." 다시 한번 "그래도 마신다면?"이라고 묻자 그는 "타이어를 삼킨다면 어떠냐고 묻는 셈인데 난 모르겠네요."라고 답한다.
우리는 타이어를 먹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타이어를 먹을 일이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똑똑한 소비자라 생각하며 스스로 꽤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결국 우리의 몸에 닿는 물건들, 때로는 혀에 닿는 물건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러한 우리의 무지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을 부대며 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온전히 '드러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전문가들에게 일임한다. 몸이 아플 때는 의사와 약사에게 의존하고, 사용하는 물건이 고장 나면 AS센터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기오염, 식재료, 독성 폐기물까지, 그 무엇 하나 전문가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다크워터스에 나오는 PFOA라는 독성 폐기물질은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로펌 변호사인 롭(Rob Bilott)이 듀폰사의 자료를 조사해 밝혀내기 전까지는 유해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 물질의 독성이나 악영향이 "알려져 있지 않다"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알려져 있지 않은' 위험은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숨겨져 있거나' '조사되지 않았으며' 때로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라고만 표현된다. 일반인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조사되고' '밝혀진' 사실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우리는 '알려져 있지' 않은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다크워터스에 나오는 '듀폰'이라는 회사는 한국으로 따졌을 때 삼성 정도의 국민기업이다. 그들은 전문가 집단을 자체적으로 두고 있으며, 동시에 외부 전문가, 정부 관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진실은 너무나 쉽게 감춰지고,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수의 노력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그 과정을 충실히 담은 다크워터스라는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며 나는 큰 두려움을 느꼈다. PFOA라는 독성 폐기물질을 하천에 유출해 해당 지역민들을 병들게 하고, PFOA를 각종 제품에 사용해 전 세계를 독성 물질 중독에 빠뜨린 미국의 화학기업 듀폰의 행태를 고발하고 20년간 싸워온 한 변호사의 이야기는 그의 영웅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가까이서 그려냈기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다크워터스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당위'적인 일을 '당연'하게 하기 시작하는 롭이라는 개인의 행보였다. 기업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기업을 공격하는 일을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그려질 것 같은 '이 일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이 영화에는 없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 일에 뛰어든다. 이런 그의 모습이 현 시대상에서 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그의 주변 인물들조차 이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데에 모두 동의한다.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계, 경제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대형 로펌의 비윤리적 행위나 용기 있는 개인을 회사 차원에서 압박하고 탄압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단순하고 순수하며, 동시에 당위적인 이유인 '알리고자 함'에서 시작한 일이 종국에는 개인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동시에 극단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수반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부당한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듀폰의 행태를 고발하는 일을 시작할 때의 담담한 롭의 모습과 10년 가까이 이 일에 매진하다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롭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숨겨진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뿐인 롭에게 필요한 것은 화학물질에 대한 지식이 아닌 엄청난 용기와 외로움을 견뎌낼 인내였다는 것에 어쩐지 씁쓸함을 느꼈다.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단순히 듀폰만이 롭의 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듀폰이 공장에서 PFOA를 방류한 지역의 지역민들조차 롭과 롭을 도운 고발자들을 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듀폰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듀폰은 그 지역을 먹여 살리는 고용주이자 그들 삶의 전부이다. 듀폰이 없다면, 듀폰이 무너진다면 자신들도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듀폰이 당신들을 속이고 있었다는 걸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마침내 롭과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결정하는 지점은 슬프게도 그들의 건강이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난 후이다. 그들은 그제서야 듀폰의 기만으로 자신들이 잃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 삶의 근간이 되는 건강을 잃고 이러한 위험이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마침내 그들을 싸우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건강과 일상을 잃게 되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우리는 자연에서 오지 않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남긴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모든 화학약품으로 만든 물건들은 우리 몸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사실 알고 보면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이미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GMO(유전자조작생물체) 또한 이를 섭취함으로써 생기는 영향에 대해 정확히 드러난 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이미 본능적으로 이러한 '인위'적인 물질들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문제가 생길 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GMO처럼 인간이 직접 섭취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항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에 지금보다 큰 무게감을 두어야 한다. 자연을 거스르며 인간이 만들어내는(人爲)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걸 우리는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Forever Chemical', 우리 몸 안에 영원히 남는 화학물질처럼 모든 인위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