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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ting city Oct 16. 2019

2019년 10월 - 윈터 이스 커밍, 그리고 홈 스윗 홈

거의 10년 살았던 건물을 곧 철거한다는 소식에 장기가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철거민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왜 하필 이럴 때 집 없는 서러움까지 느껴야 하는가. 올해 나는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할까. 영적인 존재가 작두 위에서 칼춤이라도 춰줬으면 좋겠다. 아 근데 그것도 다 돈이 든다. 생각의 형태소 단위 하나하나가 다 원으로 느껴져.


집주인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정신없는 사람 중 한 명이라서 이 사실을 아주 당연히 먼저 말해주지 않았다. 빨리 나가라고 할까 봐 한 달 속앓이를 하다 끝내 전화를 걸었다. 뭐 결국 집주인님 해맑은 목소리에서 부정해오던 내 처지를 뼈저리게 느껴버렸네. 계약서 쓸 때 아무리 늦어도 철거 3개월 전에 관련 내용 고지하기로 했잖아요… 우리 그 항목 넣었잖아요… 주인님은 당연히 잊어버리셨겠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으니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체념할 힘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조차 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보니 이 집 건물은 아주 낡았지만 아침에 디즈니 공주 흉내도 낼 수 있을 만큼 햇살이 아주 좋고 위치도 좋고 나름 남산타워 뷰 아무튼 이상하리만큼 조건이 좋다. 그래서인지 이 집은 운이 지지리도 없는 내 삶에 그나마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물론 한 층 아래 살던 작년까지는 맞은편 부자 집 골든 리트리버보다 작은 집에 살았었다. (그 옆집에는 구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살았었고, 우리 동네에는 구 서울시장 공관이 있다. 어쩌면 이 동네 내가 살 수 있는 최고 부촌이라서 사랑했나 봐!) 암튼 뭐 그렇다고 내 인생이 박복한 건 아닌데, 근데 지금 이러는 건 진짜 아니다. 홈 스윗 홈까지 잃어서는 안 되는 시기였다고!


윈터 이스 커밍... 정말이지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올해 나는 회사’들’을 몇 차례 그만두었고 부레옥잠만도 못하게 부유하고 있다. 그렇게 후회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는데, 정신건강이 집보다 중요하지는 않지 않을까 그 인간 버텨볼 걸로 시작해서 내가 어쩌다가 서울로 대학을 왔나까지 질주하고 말았다. 아 맞다, 몇 달 전엔 곤두박질치는 자존감 때문에 뭔가 얻어보려고 가입한 값비싼 커뮤니티의 마지막 날 우연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며 내 포지션이 애매하다는 걱정 어린 영업을 십분 넘게 들었다. 공들여 얻은 환상이 깨져버렸다. 아 근데 그러네, 나는 언제나 애매모호했지. 아직도 내가 쌓은 것은 경력이 아니라 사회생활이라는 모 님의 끔찍한 충고를 아직도 잊지 못해 곱씹으면서도 아 어디든 계속 다녔으면 전세 대출이 됐을 텐데 생각했다. 나는 왜 세상에 뻐큐를 날리며 쿨하게 잊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가. 갯벌 같은 인간인가 나는 왜!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게  전세 대출 때문이래. 근데 서울 아파트에는 도대체 누가 사는 거야? 도시에 온갖 집이 그득한데  집은  없는 거야?  하필 이럴  백수인 것일까 나는! 집을 얻는 방법은 위장결혼뿐인가 싶어! , 끔찍하다! 소일거리  개로 어디 가서 프리랜서라고 말하기가  어색하다. 내가 관종이었으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그럼 진작 팔이 피플도 하고 유튜브도 했겠지! 뭐래! 닥쳐 ㅇㅈㅁ!


직방을 켰는데 인간들 집 사진이 너무 엉망진창이다. 도대체 다들 왜 이렇게 너저분하고 지저분하게 사는 거야. 집 구조는 또 다 왜 이 모양이야. 너무 못생기고 더럽고 다 싫다. 집 내놓으려고 사진 찍을 땐 이불이라도 개야 하지 않나? 아 너무 싫다. 아 작년이랑 비교하니까 이 동네 너무하네 이따위 집을 내놓고. 왜 이렇게까지 욕심이 많아 건물주들은. 진짜 더럽게 비싸네.


계급 격차를 자주 느낀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쭉 그래 왔다. 그렇다고 내가 또 빈민은 아닌데… 자동 반성했다. 엘리트주의에 대해 그만 생각해야지 싶다. 내 정치적 스탠스를 생각할 때 가끔 내가 너무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격이 있나 질문한다. 굽어보려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 으으 재수 없어 내가 뭐라고! 나한테 날리는 뻐큐 뻐큐는 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자기혐오를 그만 해야 해! 뻔뻔한 인간들은 다 잘 먹고 잘 살잖아! 어쩌라고!


요즘 재밌는 것은 정말로 수영뿐이다. 스타트 뺑뺑이를 잔뜩 돌면서 결심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천장에 굴비라도 매달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필 또 병까지 들어서 아무거나 주워 먹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남은 삶 잘 이겨내 보리라. 일단 장을 봐야지, 정든 동네 사진을 꼼꼼하게 남겨둬야지.


아, 그런데 이 모든 결심은 현관문을 열고 형광등을 켜자마자 부서졌다. 스르륵 샤샤샥 벌어진 몰딩 틈 사이로 들어가는 바퀴벌레를 목격하고 만 것이다. 당장이라도 세스코를 부르고 싶었지만! 대략적인 가전제품 구입 비용과 이사비용, 부동산 복비가 당장 스쳐갔다. 내 삶은 언제까지 임시적일까. 신이시여 왜 저를 괴롭히시나요.


아—아— 올해 내 인생 너무 고난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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