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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an 02. 2020

왜 디자인을 전시하는가?

디자인 전시의 중요성 

(c) 네델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시지


1852년 런던 디자인뮤지엄의 설립 이후, 세계적으로 다양한 디자인관련 미술관, 박물관, 재단, 센터 등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 국립으로 계획되고 있는 세종시 디자인 박물관은 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디자인이 산업적인 생산가치를 넘어 고부가가치를 가진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적인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디자인 전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5가지 관점으로 디자인 전시에 대한 중요성과 당위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대상인간 삶의 조건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유무형적 가치가 디자인과 결부되어 있으며, 남녀노소, 직업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 모든 요소들이 사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축과 도시를 통해 삶을 설명한다. 집의 탐구는 삶을 탐구하고, 삶의 탐구는 인간의 탐구이다'라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이념에는 디자인의 궁극적 대상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디자인은 관람객의 입장에서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 있으며, 쉽게 취할 수 있는 높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 디자인 전시의 관람객이 증가하는 추세는 기존 박물관, 미술관이 가지고 있었던 심리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를 제시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하는 문화인류학적 담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 디자인이 가진 가장 중요한 공감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2. 내용프로세스 아카이빙


산업혁명이후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을 위한 수단(industrial design)이었던 디자인은 이제 정보혁명 시대에 사회문화와 교류하며 사람의 행동을 변화 시키는 수단(design activism)으로까지 발전해 왔다. 예술이란 '가치'를 통해 지식을 통제하던 시대에서 디자인이란 '현상'을 통해 지혜를 깨닫게 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은 사람의 삶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디자인의 가치는 유일성을 갖는 유물의 시대에서, 연속성을 갖는 유산의 시대를 바라보는 거시적 가치로 인식해야 한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완결된 내용의 큐레이팅에 의한 서사로서 디자인 갤러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아카이빙 센터로서의 디자인 박물관이 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2009년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팀버튼 전은 1980년 파블로 피카소전과 1992년 앙리 마티스전 다음으로 역대 최다 관람객수 3위에 오르고 호주, 캐나나, 미국, 프랑스, 그리고 한국에서 순회전을 개최하며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디자인이란 이슈를 통한 '과정'의 전시가 가지는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아트 & 디자인 아카이브를 개설하여 아키비스트에게 강력한 권위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과정이 담긴 특별한 아카이빙을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기존 박물관, 전시관의 '보여주는' '나열하는' 결과물의 전시가 아닌, 의미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메타 지식체로서 박물관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디자인이 가지는 수평적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혀줄 수 있는 잠재력을 시사한다. 


3. 형식확장과 공존


순수미술에서의 제한적 분류와 달리 디자인은 다양한 형식을 존중하고 협업한다. 텍스트, 이미지 등의 평면적 결과물뿐만 아니라 모형과 실물 등의 3차원 조형물을 넘어 입체적 영상과 웹 그리고 4차원 가상현실까지 추상을 실체화하여 관람객과 만나는 다양한 형식의 전시 구성은 디자인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확장 가능성이라 할 것이다. 전시장은 무형적 가치를 유형적 현상으로 만들고 이를 대중과, 사회와 만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다. 정보혁명의 시대에 박물관의 미래는 과거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새롭게 기록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록하고 있는 '현재'라는 의미는 일방적인 관점에서 수직적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다각적인 관점에서 수평적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 전시는 국지적이고 지역적이 아닌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수평적 시각을 담아 다양한 스타일과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는 산업디자인에서 부터 건축디자인, 환경디자인까지 기업과 연계하며 형식을 초월한 디자인적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조너선 아이브와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같이 보편적 가치의 최전방과 특수적인 전방위적 형식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디자인이 형식의 경계를 흐리면서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 방법공시적 전시


디자인은 그동안 박물관이 만들어온 통시적 방법론에 의한 전시구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의 공시적 방법론을 통한 전시가 가능하다. 그동안 박물관은 몬텔리우스의 형식학적 방법론(typological method)을 따라 고고학적인 차원에서 사물의 인과관계를 통한 ‘상대연대결정법’이 지배적이었다면 디자인 전시는 현재적 삶을 기준으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스포츠, 연예 등의 이슈를 시간과 공간을 넘어 문화인류학적인 통섭의 방법론을 사용한 메타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완료적 전시가 아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의 전시를 기획할 수 있으며,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관람이 아닌 관찰을 통해 사고의 범위를 넓히고 삶의 새로운 경험을 발견하는 기회를 증대시킨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의 아트 & 디자인 아카이브에서 진행하는 헐리우드 의상소품 전시회(hollywood costume)는 100년 동안 헐리우드 영화사에서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타워즈 시리즈’, ‘스파이더맨’ 등에서 사용된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100여 점의 의상 및 소품을 전시하여 관람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시간의 순서를 넘어 시대를 읽어가는 디자인 전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최근 건축디자인 아카이브를 만들고 '정기용 아카이브' 및 '이타미준 아카이브'등을 만들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이처럼 아카이브를 통한 디자인 전시의 방법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 소통관객 참여


마이클 벨처의 '박물관 전시의 기획과 디자인(EXHIBITIONS IN MUSEUMS)'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박물관이 대중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정책'이다. 관람객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에 관심이 많으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박물관의 기능이 '보존과 보전'에서 '소통과 참여'라는 키워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은 사용자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다양한 리서치를 통해 사용자와 디자인의 현실적 관계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발견된 새로운 소통의 방식은 디자인의 실체적 접근성을 높이며 관람객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디자인 전시는 예술과 디자인, 사회와 디자인, 문화와 디자인 그리고,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일차적 관계를 넘어 도시와 일상에서의 직접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다. 미디어 적인 측면에서도 양방향 정보교환이 가능한 새로운 웹의 형식을 통해 손쉽게 정보를 소유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모바일화 되어가고 있는 미디어의 사용성을 극대화하게 되었다. 또한 서비스 디자인을 통한 전면적인 홍보와 마케팅은 기존 박물관이 가진 물리적, 지역적 소통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고 있다. 대림미술관은 최근 디자인 전시를 강화하고 내부인테리어 및 출판물 등 시각 디자인의 이미지메이킹을 시도하였으며, 회원에 관한 서비스 디자인을 시행한 후 단기간에 다른 미술관들이 하지 못했던 단일 전시 관람객의 폭발적인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6. 변화현재와 미래에 관한 담론


디자인은 그 특성상 자본과 학문과 현상이 그 안에서 동시 진행형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한다. 디자인은 그 변화의 속도를 가장 명확히 바라보는 전방위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예술의 가치는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하지만, 디자인의 가치는 시대를 공감하지 못하면 소멸되고 만다. 미술사에서 장인(artisan)은 기술에 치우친 창의력을 결여한 예술가였다. 지금의 디자이너는 기술과 예술을 넘어선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원칙과 논리를 넘어 모든 것이 가능한 바로크의 시대로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정형화된 규칙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주관성이 강조된 절정의 디자인의 시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술사의 바로크가 특정 계층에게 사랑받았던  시기였다면, 이제 대중에게 사랑받는 디자인의 바로크를 전시를 통해 담아내는 일은 미래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며 국립 박물관에 디자인을 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국립디자인박물관 운영기본계획/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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