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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Nov 02. 2023

브런치를 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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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정리된 글을 보는 즐거움


난 매일 아침 신문을 즐겨 읽던 세대이다. 늙었다는 말을 세련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릴 때는 조선일보, 독립해서는 한겨레, 가족이 생기면서 중앙일보로 바뀌었고, 4년 전에 이사하면서 구독을 취소했다. 매일 아침 맑게 정리된 글을 읽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지만, 대체재를 찾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주로 칼럼(사설)을 보면서, 형광펜 밑줄도 긋고, 포스트잇 메모도 하면서 열심히 스크랩을 했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어느새 '신문 스크랩'이 '즐겨찾기 저장'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라떼감성 덕분에, 하나하나 프린트하여 차곡차곡 링바인더에 스크랩했다. 이런 습관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었고, 내 삶의 곳곳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밀레니엄 즈음 '블로그'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스크랩 활동이 버거워졌다. 글 잘 쓰는 숨은 논객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환희에서 공포로 변해갔다. 결국, 읽어야 하는 좋은 글들이 언덕을 넘어 안데스 산맥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지경에 놓이게 되고, 마침내 글 읽는 즐거움이 시들해져 가고 있었다.    



미디엄, 복잡한 잡지책에서 말끔한 소설책 레이아웃의 등장 


온갖 잡글들이 난무하던 시기에 읽고 쓰는데 중심을 둔 '미디엄'이 등장하면서 블로그 세상의 지형을 흔들어 놓았다. 묘수를 찾아야 했던 다음은 신속하게 '브런치'를 출시했다. 누가 봐도 유사성이 있는 서비스였지만, 온갖 해괴망측한 판형의 글들을 보다가 단정하고 세련된 레이아웃에서 신문같이 정제된 글 모음을 볼 수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환영받을 일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선 미디엄이 자리를 잡지 못했고, '작가'와 '출판'이라는 다음 치고는 꽤'힙'한 마케팅을 하면서 난무하는 블로깅 세상에서 완벽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더불어, 글쓰기가 강력한 위안과 위로의 코드가 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게 만들었다. 요즘 떠오르는(?) 수많은 이혼기처럼 아프지만 말 못 했던 것들을 말하고 나눌데가 생겼다. 



'글자청정지역'에서 좋은 글을 만나는 즐거움


그동안 내게 브런치는 글 쓰기 보다는 글 읽고 추천하기에 더 많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요즘에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권하는 것보다, 좋은 글을 많이 만나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글 읽는 즐거움을 안다는 건, 배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건 참 특별한 거니까 말이다. 긴 글 읽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읽는 즐거움'을 배우기 어려우니 조금씩이라도 좋은 맛을 보게 해야 한다면, 브런치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글과 나쁜 글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구분한다. 브런치가 지금처럼 '글자청정지역'이 되어서 '읽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장이 되면 좋겠다. 좋은 글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되뇌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미지와 동영상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글만으로 사람을 머무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이건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불현듯 '브런치를 왜 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는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처럼 5분씩, 한편씩만 더 보는 게 어떨까. 보는 사람이 줄어들어 카카오의 칼날에 브런치 마저 없어져 버리면 그나마 인터넷창과 스마트폰에서 한글로 된 '맑은 글'을 볼 수 있는 '도구'가 아예 없어지게 되니 말이다. 






더 바라는 것 없어요. 지금처럼 '글'만 읽을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건 말이죠, 오직 브런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오늘도 무사히'로 읽히는 조슈아 레이놀즈 ‘아기 사무엘’, 17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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