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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Aug 01. 2022

책 한 권에 담긴 시절인연

활자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


서점에서 누군가 책을 집은 후 맨 마지막 장 혹은 첫 장을 펼쳐 한참을 바라본다면, 십중팔구 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짐작한다. 책의 처음이나 끝에는 책의 초판인쇄 및 발행일과 이 책을 만드는 데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지은이와 펴낸이, 편집과 디자인, 마케팅을 담당한 사람들 그리고 출판사 정보가 지면의 한 줄씩을 차지한다.


여러 권의 책을 낸 후, 나 역시 서점에서 첫눈에 마음을 끄는 책을 만나면 제일 먼저 만든 이들이 누군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작가에 관한 궁금증이야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풀어가면 될 일이고, 그전에 이렇게 신박한 제목과 매력적인 작가를 선택한 안목의 소유자들이 누구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어쩌다 어렴풋이라도 아는 편집자의 이름을 만나거나 평소 눈여겨보던 출판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혼자 속으로 '역시!’를 외치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오늘의 웹툰>이라는 드라마의 원작은 <중쇄를 찍자>라는 일본 드라마이다. 평소 드라마를 많이 보기도 하지만, 드라마 비평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학계에서도 '드라마 박사'로 불리는 내가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중쇄를 찍자>이다. 원작을 애정 하는 탓에 차마 <오늘의 웹툰>이라는 리메이크작을 보기 두려울 정도다.


<중쇄를 찍자>에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수첩에 메모해 둔 대사도 여럿이다. 그중 새내기 편집자인 주인공과 영업부 직원이 한 신인 작가의 꿈인 '중판출래'를 이룰 수 있도록 전국의 서점을 뛰어다니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결국 모두의 힘을 모아 중쇄를 찍게 되자 주인공은 감격에 겨워 다음과 같이 독백을 한다.


"만화가도 모르고, 독자도 모른다. 책을 팔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을 전하기 위해 모두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오는 8월 8일은 나의 네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오는 날이다. 이런 에세이를 쓰면 어떨까 하고 어렴풋이 떠올린 것은 1년 6개월 전이다. 이후 일주일에 하나씩 열 편의 꼭지를 차곡차곡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으니 누구와 함께 읽기에는 민망한 감정의 배설물이자 치기 어린 일기일 뿐이었다. 결국 그 글들을 세상 밖으로 내놓지 못하고 모조리 서랍 속으로 구겨 넣어버렸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대학원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났지만, 이제는 어엿한 출판사 대표이자 동료 작가로서 글과 일에 대한 내밀한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된 글벗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시절 나의 하루를 채우는 주요일과는 무엇인지, 글쓰기 고민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소박한 글을 쓰며 연명하는 지역 작가들이 나아갈 길은 어떨지 등등.


그러다 후배는 내가 미처 매듭짓지 못한 에세이를 다시 이어 쓴 후 자신의 출판사에서 출간하면 어떠냐는 제의를 했다. 내가 쉬이 용기를 내지 못하자 후배는 아니,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인 그는 나의 글이 좋다며 격려의 말을 쏟아내었다. 이후 둘은 머리를 맞대어 나의 모자란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독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기획에 들어갔다. 이전의 내 글들과 달라진 문체에 대해 의논하고, 책의 목차를 구성하고, 책이 독자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8개월여의 시간을 보낸 '우리'의 작품이 이제 사람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두드릴 준비를 마쳤다.


불교용어에는 '시절인연(時節因緣)'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의 일상과 감정을 거칠게 써 내려간 원고를 서랍 속에 묵혀둔 탓에, 몇 개월 후 다시 펼쳐 든 원고를 보며 문장들을 한 줄, 한 줄 냉정하게 다듬을 수 있는 거리감이 생겼다. 나의 글의 장단점을 잘 아는 편집자를 만나고, 한 권의 책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결이 같은 출판사를 선택했기에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책을 만들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 또 한 번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덕분이 아닐까.


어쩌다 온라인 공간에서, 혹은 서점에서 마법처럼 여러분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된다면 꼭 책을 만든 이들의 이름을 눈에 한 번쯤 담아보시길 바란다. 당신의 손길이 이 책에 머물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진심을 듬뿍 담아 애쓴 이들의 존재감을 느껴보시길.


현재 글이출판에서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서평이벤트 중입니다. 책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응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이출판 인스타그램  @gree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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