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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Mar 08. 2023

일상을 여행하는 법

멀리 갈 수 없다면 낯설게 보자!

   

바야흐로 해외여행의 시절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3년 동안 꾹꾹 눌러 두었던 사람들의 여행 욕구가 솟구치고 있다. TV 속 연예인이나 여행 유튜버들은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짐을 싸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이국적인 풍경과 오감을 자극하는 먹거리, 이색적인 체험을 앞다투어 자랑하며 지금 방구석에 있는 당신은 인생을 아깝게 흘려보내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린 너무 오래 기다렸고, 여행의 기회는 언제 또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르니 바로 이 순간이 떠날 때라고 자꾸만 등을 떠민다.      


그런데 말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있는 장소로 떠나야만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와 올해 일본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다. 지난겨울 초입부터 여행 시기를 4월로 정하고 조카와 만날 때마다 가보고 싶은 장소와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선정하며 둘만의 여행 일정을 만들어 갔다. 만화가가 꿈인 조카에게 중학교 입학 전 캐릭터 천국이라는 일본에서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지나친 기대와 준비가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다. 얼마 전 조카가 다니는 병원의 의사는 조카의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니 당분간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조언했다. 조언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설마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겠지?’라는 매서운 시선을 같이 보냈다. 결국 몇 개월의 준비는 물거품이 되었고, 철없고 긍정적이기만 한 고모 탓에 조카의 실망감은 배가 되었다. 민망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조카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당장 해외로 여행을 갈 수는 없지만, 고모와 자주 만나면서 일상에서도 충분히 여행처럼 설레고 즐거운 경험들을 할 수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지 하나씩 찾아가 보자.”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길을 떠나는 각자의 사연에 따라 꿈꾸는 여행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바람이 있다면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풍요로움을 얻고 싶어서가 아닐는지. 그렇다면 익숙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여행의 기분과 기쁨을 느끼는 방법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나는 어쩌자고 호기롭게 조카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인지 또 후회를 하며, 그때부터 생활 속에서 견문을 넓힐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며칠 동안 어쭙잖게 찾아낸 방법을 여기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나의 조카가 이 글을 읽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이 방법을 좋아하는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속에서 발견했다. 그는 『길 잃기 안내서』 앞부분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길을 벗어나기를 좋아하고, 내가 아는 것 너머로 나가보기를 좋아하고, 아마 몇 킬로미터쯤 더 걸어야 하겠지만 다른 길을 통해서, 지도와 다투는 나침반에 의지하여, 도중에 만난 낯선 사람들이 알려준 천차만별의 방향 지시에 의지하여 돌아오기를 좋아한다(리베카 솔닛 저, 김명남 역, 『길 잃기 안내서』, 반비, p.28.).”


이 구절을 읽고 생각했다. ‘그래! 늘 지나다니던 길을 살짝 벗어나기만 해도 작은 여행이 시작되는 것 아니겠어?’라고 말이다. 같은 동네에서 10년 이상 산다고 동네의 모든 골목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엔 아니다. 설사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자신 있게 외치더라도, 경계선을 조금만 넓혀 30분 거리에 있는 옆 동네라면 사정이 또 달라진다.      


요즘 외부 일정을 줄이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산책을 자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발에 익은 길로만 다니다가 점점 재미가 없어지길래 조금씩 방향을 틀어보았다. 평지의 큰길로만 걷던 내가 어느 날은 경사가 꽤 있는 사잇길로 올라가 보기도 하고, 미로처럼 꼬여있는 골목을 따라 살금살금 걸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자 동네의 작은 산으로 길이 이어지며  초록이 무성한 숲을 만나기도 했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이발소 회전 간판이나 녹이 슨 철대문 같은 정감 가득한 사물들을 접하기도 했다.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길 잃기는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위의 책, p.29)”로 가득했다.      


나의 주변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생경한 풍경들을 찾아 떠도는 과정은 멀리 타국을 여행하며 낯선 장소에서 마주하는 감정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굳어있던 생각의 근육들을 풀어주고 앞만 바라보던 시선을 옆과 뒤, 위와 아래로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만이 아니라 그 출발과 과정의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는 여행의 가치와도 맞닿았다.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거리를 찾아 헤매고, 한 번도 행하지 않았던 일을 용기 있게 시도하며, 나의 시선이 닿지 않던 곳까지 애써 보려고 하는 일! 내가 찾은 ‘일상을 여행하는 법’은 바로 이것이다. 어차피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서는 길이 아닌가. 그러니 꼭 비행기를 타고 하늘길을 달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상상력의 항로는 물리적 제약이 없으니 우리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장소와 공간을 달리하는 것보다 나의 관점을 달리했을 때 어떤 체험은 더 크고 깊게 마음에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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