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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Apr 22. 2024

몰아본다고 뭐가 달라져?

OTT 서비스가 바꾼 영상 소비 방식


주말이나 연휴 계획을 물으면 미뤄두었던 드라마를 정주행 하거나 인기 작품의 시리즈를 몰아보겠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내려갈 수 없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OTT 서비스에서 관심 있는 콘텐츠를 한 번에 이어서 보는 현상이 유행했어요. 이를 '몰아보기(binge-viewing)라고 합니다. ‘몰아보기’의 영문 표기인 ‘binge-viewing’가 학술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2013년도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 후보가 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몰아보기란 말은 미디어 소비 패턴의 변화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몰아보기는 몇 개의 연속적인 에피소드나 여러 프로그램의 시즌을 한자리에서 이어 보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10명 중 9명이 몰아보기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요. 젊은 세대일수록 몰아보기를 자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문화 현상이 된 몰아보기를 유도한 것이 바로 넷플릭스인데요. 넷플릭스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편씩 공개하던 기존의 영상 콘텐츠 제공 방식에서 벗어나 자사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시리즈로 사전제작하며 전편을 한꺼번에 모두 공개하는 ‘일괄 출시(all-at-once release)’ 전략을 2013년 처음 선보였습니다.


넷플릭스가 시리즈 전체 에피소드를 동시에 출시한 사례는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라는 드라마의 첫 시즌을 공개하면서부터입니다. 이 드라마는 하나의 시즌에 에피소드 13편이 포함되었는데요. 넷플릭스는 이를 동시에 개봉한 것이죠. 이후 2014년 2월에는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시즌 2>를, 6월에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 시즌 2>를 선보이며 전 에피소드를 모두 공개하는 전략을 채택합니다. 당시 넷플릭스의 시즌 전체 동시 출시는 파격적이란 평가를 받았어요. 보통 미국 드라마가 일주일 단위로 방영하고, 온디맨드(on-demand) 비디오도 현재 방영 중인 시즌은 일부만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는 왜 이런 과감한 선택을 했을까요? 넷플릭스의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자신들이 제작한 콘텐츠의 시리즈를 한 번에 출시하는 이유에 대해 “소비자들은 점점 더 컨트롤을 원할 것이란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원한다.”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몰아보기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부터 스토리를 이어갈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 때문에 몰아보기의 시청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몰아보기를 향한 기대


단순히 몰아보기를 하는 시청자 수가 많아졌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에는 이 현상에 담긴 숨은 의미가 많은데요.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영상 시청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괄출시로 인해 몰아보기가 가능해졌다는 말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의 주도권이 시청자에게 넘어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존 방송국 시스템에서는 편성의 과정이 중요했고 그래서 어떤 요일, 어떤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끼워 넣을 것인가 결정하는 방송국의 전략이 중요했습니다. 방송사 혹은 채널별로 하나의 편성표가 존재하니 시청자는 이 편성표의 방송 순서를 따라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OTT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시청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OTT 앱을 열면 가상공간에 일목요연하게 배치된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어요. 온에어 시간을 개인의 스케줄 중 콘텐츠를 보고 싶은 때로 직접 고르고 보고 싶은 양만큼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OTT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우리는 나만의 편성표를 짤 수 있게 된 셈이죠. 이제 영상 콘텐츠 소비를 방송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수동적인 시청’이 아니라 내가 시청 시간과 공간을 정하고 주도하는 ‘능동적인 재생’의 방식으로 영상을 소비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몰아보기 경험에 담긴 우려


그런데 OTT 서비스 이용자의 콘텐츠 몰아보기 경험이 미디어 소비의 자율성을 높이는 긍정적 결과만 있는 것일까요? 넷플릭스가 처음 시작해 이제는 후발주자 OTT 서비스들이 따르고 있는 일괄출시 전략은 결국 치열한 미디어 시장에서 한 명의 소비자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연속극을 시청할 때 우리는 방송국의 편성에 온전히 시청 스케줄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OTT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를 볼 때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콘텐츠 선택권이라는 공이 이용자에게 넘어옵니다. 이때 시리즈의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된 콘텐츠의 경우 전체 회차를 한 번에 모두 볼 수 있게 되었지요? 드라마를 몰입해 보다 보니 어느새 밤을 새워 마지막 화까지 봤다며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SNS에서 누군가 드라마의 결말을 얘기하면 나도 그 드라마를 끝까지 봐야 한다는 생각에 게임하듯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죠. ‘몰아보기’는 이용자들이 드라마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 시청을 끊을 수 없게 합니다.


실제 OTT 서비스들은 이용자의 ‘몰아보기’를 돕기 위해 플랫폼에서 여러 장치들을 숨겨놓고 있습니다. 각 OTT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다음 회 이어 보기’, ‘전회 요약분 건너뛰기’, ‘오프닝 건너뛰기’ 등과 같은 메시지가 뜨고, 이를 클릭만 하면 바로 다음 화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소소하지만 유용한 기능들을 만납니다. 대부분의 OTT 서비스에는 영상의 재생 속도를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는 ‘빨리 감기’와 10초 정도 앞으로 건너뛰어 재생할 수 있는 ‘건너뛰기’ 기능도 탑재돼 있어 몰아보기를 부추깁니다.


우리나라에서 몰아보기가 대표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팬데믹 때라고 할 수 있어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명절이나 휴가철에도 외부에 나갈 수 없으니 그동안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몰아보기 하기에 더욱 좋은 조건이 되었죠. 그런데 넷플릭스가 팬데믹 이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미 이용자의 61%가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하니 지금은 몰아보기를 해본 적이 없는 OTT 이용자를 찾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도 과식을 하거나 한꺼번에 많이 먹는다면 건강을 해칠 수 있듯이, ‘몰아보기’도 그 정도가 심하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몰아보기’ 때문에, 매주 한 회씩 방송된다면 보지 않을지 모르는 시시한 TV 드라마까지 중독성이 생긴다고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몰아보기를 통해 줄거리가 그다지 짜임새 없어도 한번 보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관성적으로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몰아보기의 ‘binge-viewing’에서 ‘binge’는 폭식을 뜻하는데요. 과잉, 중독, 게으름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다고 하니 이런 주장이 괜한 걱정은 아닌 듯합니다.   


실제 SNS나 커뮤니티에서는 OTT 서비스에 새로 출시되는 콘텐츠의 시리즈를 자랑하듯 그날 모두 시청했음을 과시하는 메시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즌 공개일에 시즌 전체를 몰아보는 ‘빈지레이스(binge race)’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 강도가 세지는 추세입니다.


몰아보기가 가져오는 부작용은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더 크게 다가오는데요. 너무 OTT 시청에만 매달리다 보면 가족이나 친구 같은 타인과의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연구에서는 몰아보기가 우리의 뇌나 감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시리즈를 한꺼번에 보고 난 후에는 일종의 상실감이나 허무감을 느끼며 일시적이지만 ‘상황적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해요.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진은 하루 4시간 이상 TV 앞에 앉아 있으면, 수면무호흡증 발병과 이로 인한 코골이 등이 발생할 위험이 78%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OTT 콘텐츠의 몰아보기 경험이 이용자에게 선택권을 넘겨줬다며 반길 수만은 없습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일찍부터 미디어 이용 습관을 점검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주어야 해요. 알람을 설정해 한 번에 OTT를 보는 시간을 제한하거나 시청할 에피소드 횟수를 미리 정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OTT를 이용할 때에는 침대나 소파에 기대어 영상을 본다거나 너무 어두운 곳에서 장시간 TV나 스마트폰을 시청하지 않도록 해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챙겨야겠습니다.



(*본 내용은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김주미, 글이출판)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알라딘: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 (aladin.co.kr)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 | 김주미 - 교보문고 (kyoboboo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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