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자극적 수위 사이에서
넷플릭스가 OTT 시장을 선점한 이후, 2019년부터는 디즈니와 애플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 둘 OTT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OTT 플랫폼을 가진 것이 만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콘텐츠 기업, 또는 이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를 만드는 기업에게도 경쟁력을 키우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기존에 콘텐츠를 제공하던 왓챠나 웨이브, 티빙뿐만 아니라 유통 기업인 쿠팡까지 OTT 서비스에 가세하면서 OTT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요. OTT 관련 기업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삼는 것이 바로 콘텐츠입니다.
#OTT 경쟁력은 결국 콘텐츠
OTT 기업들은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의 다시 보기를 제공하는 VOD 서비스는 물론,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란, OTT 플랫폼에서 자체 또는 공동으로 제작하거나 투자하여 독점으로 공급하는 작품을 말합니다. 그럼 오리지널 콘텐츠는 왜 중요할까요? OTT 서비스에서 새로운 가입자를 유치하거나 이미 가입한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이탈하지 못하고 계속 소비하도록 하는 ‘잠금효과(Lock-in effect)’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조사에서도 ‘볼만한 특정 콘텐츠’는 이용자가 기존 플랫폼을 떠나지 않는 이유 1위이자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이유 1위로 나타났습니다. OTT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콘텐츠가 경쟁력이 있으면 이용자들은 플랫폼을 이탈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 오리지널 콘텐츠가 OTT 가입자 수를 늘리는 데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콘텐츠 중 처음으로 83개국 1위를 기록했어요. 2021년 한 해 동안 넷플릭스의 전 세계 신규 가입자는 1,818만 명이었는데요. <오징어 게임>이 흥행한 4분기에만 828만 명이 추가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쿠팡플레이의 <안나>는 2022년 6월 말 첫 스트리밍 이후 이용자 60만 명이 증가하는 효과를 내며 기존 이용자 수 대비 20%가 성장하는 효과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관심이 가는 콘텐츠를 보기 위해 플랫폼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 유형의 이용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하니 볼만한 콘텐츠가 끊기지 않도록 경쟁력 있는 작품을 배치하는 일이 OTT 업체들에게 더 중요해졌습니다.
#OTT가 가져온 콘텐츠 제작 환경의 변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 비용은 한국의 평균 드라마 제작비의 네, 다섯 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좀처럼 시도하지 않던 장르에 대한 지원, 안정적 제작 환경이 뒷받침되면서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요. 특히 OTT 플랫폼은 방송과는 달리 창작자들에게 자유로운 제작과 표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을 만든 김성훈 감독과 김은희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킹덤> 자체가 넷플릭스라 가능했다 생각한다. 협업하면서 느낀 건 어떤 새로운 시도에 대한 편견, 장애물, 두려움 없이 시도하는데 끊임없는 지원자이자 우군이 됐던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더욱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존 텔레비전 방송이나 영화에 비해 내용과 형식에서 여러 제약들이 없어지면서 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죠. 그러나 이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창작자들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지원하면서 영상 표현의 수위도 영화나 방송처럼 한계를 정해두지 않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국내외 OTT 콘텐츠 5편 가운데 1편 이상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콘텐츠인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OTT 서비스 중 유료로 서비스되는 비디오물의 등급분류를 맡고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발간한 ‘2023 영상물 등급분류 연감’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등급분류 심의를 진행한 OTT 콘텐츠 8,365편 가운데 약 21%(1,763편)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OTT 콘텐츠가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OTT 플랫폼은 전 세대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잖아요? OTT 서비스 간 경쟁이 치열해진 탓에 점점 시각적 자극이 강한 콘텐츠를 제공해서 시청자의 관심을 끌려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국내 드라마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징어 게임>에 이어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 고등학교에 '좀비 바이러스' 퍼지면서 위협을 겪는 학생들이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K-드라마의 힘을 보여주는 성공 사례로 볼 수 있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이 극 중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많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콘텐츠가 점점 자극적이 되는 이유에 대해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한 조사에서는 OTT를 이용해 본 응답자 10명 중 8명이 공중파에서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소재와 연출의 콘텐츠를 OTT에서 자주 찾아본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의 70.3%는 OTT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지상파나 케이블 TV에서 다루는 콘텐츠보다 더 리얼하고 현실감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고, 수위가 높은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도 60%에 달하는 수치로 나타났어요.
OTT 콘텐츠는 얼핏 보면 사용자들에게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시청 경험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장르와 스타일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죠. 그러나 이로 인해 어린이와 청소년이 폭력성이나 선정성 같은 유해한 표현이 담긴 콘텐츠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합니다. OTT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이용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제작자들이 점점 표현의 수위를 높여간다면 결국 피로감을 느끼고 피해를 입는 것은 이용자들이 될 테니까요.
자극적인 묘사가 논란이 되는 사례는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OTT에서 선보이는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도 나타나는데요. 2023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나는 신이다: 신이 배반한 사람들>,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 <국가수사본부>의 경우 실제 사건을 다루면서 기존 지상파 방송에선 상상할 수 없는 노골적인 묘사들을 담고 있어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OTT에서 만나는 다큐멘터리들이 그동안 전통적인 방송에서 다룰 수 없는 소재들을 다루면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진실을 파헤친다는 제작진의 의도와 더 다양한 영상물을 만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더 부각될 필요도 있겠지요. 그러나 시청자들이 문제의식 없이 이를 흥미 위주로 소비한다거나 청소년관람불가라는 연령 등급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이 이를 접할 때 모방위험 등의 유해성에 노출될 위험 또한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겁니다.
기존 영화나 방송에 비해 내용과 형식의 한계에서 자유로워진 OTT 콘텐츠들은 앞으로도 수위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텐데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OTT 곁에서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영상 표현에 자주 노출되어 선정성이나 폭력성, 부적절한 언어 사용 같은 유해함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제목 배경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본 내용은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김주미, 글이출판)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