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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음악 : 다섯 번째-쇼팽 "마주르카"

연재 : 7개의 선율 - 기억 5

by 헬리오스

내게 남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 단 하나의 순간—기억 5.


* 아직 네 번째 글은 올리지 못했지만, 이 글은 전체 시리즈에서 다섯 번째에 해당하기에 ‘기억 5’라는 이름을 붙였다.

총 일곱 편으로 이어질 이 작은 연재의 끝자락에는, 피아노 음악을 위한 세 개의 자리를 남겨두었다.
이 글은 그 중 첫 번째이자, 조용히 열리는 피아노의 문이다.


아직 비어 있는 ‘기억 4’는, 마치 서랍 속의 편지처럼 고이 접어 두었지만 머지않아 내 손끝에 다시 불려지고, 천천히 펼쳐질 것이다.
때로는 순서가 흐트러져도, 기억은 음악처럼 제자리를 찾아 흐르기에,
나는 이 여정의 남은 페이지들을 따라, 조용히, 그러나 끊이지 않고 걸어갈 생각이다.




시간을 걷는 음악 - 언제나 곁에 두는 7개의 선율 : 다섯 번째 이야기

쇼팽 : 마주르카 49번 a 단조 Op. 68-2 (Lento) -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연주 (DG)



쇼팽의 마주르카, 모네의 수련, 그리고 그녀


이 곡을 들을 때면, 모네의 수련이 떠오르고, 수줍어하던 그녀가 생각난다.

물결 위에 조용히 피어난 연한 꽃잎처럼, 그녀는 내 곁에 있었지만, 손을 뻗으면 사라질 듯한 존재였다.

쇼팽의 마주르카 49번, Op. 68-2는 마치 그런 기억을 닮아 있다. 우아하지만 덧없는, 다가서면 이미 저물어가는 저녁의 빛과도 같은 곡.


수련이 피어 있는 정원과 모네의 수련, 그리고 그녀는 닮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모네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햇살이 부드럽게 물 위를 감싸고, 바람이 얇은 수면을 살며시 흔든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연못 위에서 수련은 조용히 피어 있다.

그러나 그 꽃은 화려하게 피어오르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듯, 물 위에 조심스럽게 떠 있다. 가끔 피어나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다 알지 못하는 듯한 모습.

완전한 형태로 피어나지 않고 빛 속에서 변하는 것처럼,

그 고요한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수줍어 보인다.


쇼팽의 마주르카도 그러했다.

이 곡은 선명한 색채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희미한 노을처럼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마디마다 스며드는 음색이 곧 사라질 듯한 여운을 남겼고,

미켈란젤리의 연주는 그것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음들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로 흐르며, 마치 바람결에 흔들리는 수련처럼 가볍게 떨린다. 그러나 그의 절제된 터치와 떨림 속에서 더 깊은 애수가 스며든다.

기쁨과 슬픔이 한데 섞인 순간들,

마치 봄날 저녁,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다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이렇게, 이 곡은 단순한 춤곡이 아니다.

마주르카의 전형적인 리듬은 희미해지고, 서정성과 내면의 흐름이 강조된다.

음악은 춤을 추기보다는,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걸음걸이로 나아간다.

마주르카라기엔 너무 조용하고, 왈츠라기엔 너무 내밀한 흐름.

춤곡이라기보다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련처럼 섬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곡이다.


나는 이 곡을 그녀에게 많이도 들려주었다.

그녀는 말없이 음악을 들었고, 가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수련처럼 가만히 머물렀다가, 어느 순간 물결에 흔들려 사라졌다.

마치 이 곡의 마지막 음처럼.

잔잔하게,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을 여운을 남긴 채.


그녀는 이 곡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떠올렸을까?

혹시 내게 묻고 싶지는 않았을까?

"왜 이 곡을 나에게 들려줘?"

나는 대답했을 것이다.

"너의 모습이 이 곡 같아서. 마치 수련처럼."

그러나 그녀는 묻지 않았다.


이제 봄은 깊어지고, 겨울의 흔적은 어느새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꽃샘추위의 마지막 숨결도 고요히 스러지고,

햇살은 제 빛을 다해 나무와 사람을 따뜻이 감싼다.

바람은 꽃향기를 머금고, 천천히 마음속을 지나간다.


쇼팽의 마주르카는 봄날 저녁의 바람과 닮아 있을까?

그것은 따뜻하지만 살짝 서늘한 기운을 머금고, 어디선가 꽃향기를 실어 오는 바람.

해가 기울고 노을이 퍼지며, 부드럽게 스쳐 가는 바람.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아직 식지 않은 대기의 잔열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것은 거세지 않고, 몸을 감싸는 듯이 잔잔하다.

그러나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바람에는 어딘가 모를 애수가 섞여 있다.

그 애수는 봄이 가버리는 아쉬움일까, 아니면 바람결에 흩어진 보이지 않는 그리움일까?


미켈란젤리의 연주는 마치 바람의 손길과도 같다.

그는 이 곡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손끝으로 바람을 어루만지듯 연주한다.

그의 음색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저녁노을처럼 은은하게 스며든다.

그래서 이 곡을 들으면, 그것은 마치 봄 저녁의 바람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봄의 끝자락에서, 아직 피어 있는 꽃들 사이로 흐르는 바람처럼.


하지만 그 바람은 다시 돌아올까?

아니면, 한 번 스치고 나면 다시는 같은 자리로 오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없을 때면,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이 곡을 듣는다.

마치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봄이 오면 피어나는 수련처럼,

이 곡은 여전히 내 곁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다.


물결 위에 떠 있는 꽃잎처럼

부드럽게 피어나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는 거리.


저녁 바람이 스치듯

음은 흐르고, 사라지고,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미켈란젤리의 손끝에서

음 하나하나가 맑게 떨린다.

그녀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수련처럼 흔들리다,

언젠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미켈란젤리는 이 곡을 말을 아끼는 사람처럼 연주한다.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저 피아노를 통해 속삭이듯 말한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한 번 듣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날의 기분과 날씨, 공기의 온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고,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잔잔한 외로움을 더 깊이 스며들게 한다.


나는 이 음반을, 그리고 이 곡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에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른다.
어떤 음악은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감동이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이 곡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졌다.
오래된 편지를 다시 펼쳐 들었을 때, 그 사이사이 숨어 있던 감정들이 새롭게 깨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정이 문장 사이에서 조용히 빛나고, 그 여운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래서 단 하나의 마주르카 음반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음반, 이 곡을 선택할 것이다.
미켈란젤리의 연주도 좋지만, 결국 내게 남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한 순간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이 남긴 여운은, 내 안에 오래도록 짙게 배어있다.



Chopin: Mazurka No. 49 in A Minor, Op. 68 No. 2 - Lento

Piano :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https://youtu.be/Z_g9QGvaNz8?si=DegQ8hs1DWAd5d2C


이 곡은 쇼팽이 1827년경에 작곡한 마주르카다.


쇼팽의 마주르카는 폴란드의 민속 춤곡에서 유래했지만, 단순한 춤곡이 아니라 깊은 서정을 담고 있다.

특히 49번, Op. 68-2는 마주르카 특유의 경쾌함보다는, 흐르는 듯한 우아함과 조용한 쓸쓸함이 두드러진다.

이 곡은 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치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가는 듯한 음악이다.

애수를 머금은 선율이 천천히 펼쳐지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끝내 말하지 못하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이 조용한 고독의 정서야말로, 이 곡의 가장 깊은 아름다움이다.


미켈란젤리는 극도로 세련되고 우아한 연주 스타일을 가진 피아니스트다.


그의 연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고요한 긴장감과 우아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쇼팽의 마주르카, 특히 우아함 속에 담긴 섬세한 슬픔을 지닌 Op. 68-2와 그의 해석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의 연주는 극도로 정제된 음색과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감정적 과잉 없이, 불필요한 장식 없이, 마치 하나의 조각을 다듬어 가듯 치밀하고 섬세하게 음악을 빚어낸다.

마주르카 특유의 리듬을 강하게 부각하기보다는, 마치 왈츠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게 만들면서도, 춤곡이 아니라 조용한 회상과 내면의 대화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그의 해석이 차갑게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 안에는 고요한 열정과 품격 있는 애수가 스며 있다.

오히려 절제 속에서 더욱 깊이 배어 나오는 감성. 그래서 그의 연주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각 작품을 바라보듯 음악의 형태와 여백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쇼팽의 마주르카에 내재된 애수와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과장되지 않은 우아함,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흔적.

마치 봄날 저녁 바람이 스쳐 간 자리처럼, 그의 연주는 부드럽게 흐르지만 그 끝에는 잔잔한 슬픔이 남아 있다.


음반에 담긴 열 곡의 마주르카, 하나같이 아름답다.

쇼팽이 남긴 마주르카는 모두 58곡이지만 이 음반의 열곡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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