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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매이 Feb 02. 2021

손잡이 없는 문을 여는 법,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스포일러 없이 쓰는 영업을 위한 후기글

-저 기저귀 끈은 아이를 구속한 걸까, 보호한 걸까
-저 끈을 풀어놓으면 애 엄마가 마음 놓고 빨래를 할 수 없잖아요. 물에 기어들어가 빠질지도 모르는데...
-보호한다, 이 말이지?
-...
-그럼 저 끈은 아이의 한계일까, 자유일까?

- 박흥용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18년 초연을 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연뮤덕들 사이에서 다시 보고 싶은 갓극으로 통했다. 그 해 한국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 주연상 등 총 4개 부분에서 수상하면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던 극.


초연에서 베르나르다 알바 역을 맡았던 정영주 배우가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2021년 1월 재연이 왔다!

초연을 못 본 새싹 연뮤덕인 나도 드디어 그 갓극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리두기 2.5단계에서 객석 내에 두 칸 띄어앉기가 실시되어 좌석의 30%밖에 판매되지 않아 내 한 몸 앉힐 자리도 마땅치 않은 극이지만 하루 종일 인터파크 예매창을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맨 끝줄 벽 옆에 자리 하나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첫 장면에서 이미 벅차서 눈물이 났고 마지막 장면에는 극 중 인물들과 함께 비통함에 빠져 커튼콜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서사는 물론 배우들의 연기, 음악, 안무, 무대까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두기 세부지침 변경으로 이번 주부터 객석의 50%를 판매하고 있는데(그래도 매진이지만) 모두 최대한 노력해서 이 극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극을 알고 만나길 바라며 최대한 스포일러 없는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공연 정보에 있는 시놉시스 내용은...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한 마을.
베르나르다 알바는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를 잃고 늙은 어머니, 그리고 다섯 딸들과 지내고 있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안토니오의 8년상을 치르는 동안 그녀의 가족들과 식솔들에게 극로 절제된 삶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그런 중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는 약혼자 빼빼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빼빼의 등장에 그동안 억눌린 본능과 감정이 다섯 딸들과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감싸기 시작하는데...


무대 위에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거실이 있다.

아마도 그 지역의 건축을 본뜬 듯 아치형의 기둥이 지지하는 매끄럽고 차가운 흰색의 석조건물.

무대 좌측에서 들어오는 쏟아지는 빛을 보면 그쪽에 창이 있을 거라 짐작된다.

그리고 이 극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문은 무대 안쪽 정중앙에 크게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손잡이가 없다. 주변 배경과 마찬가지로 흰색이라 닫혀 있을 때는 문인지 벽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무대 사진을 더 보고 싶다면 여기서 링크​)


차가운 석조 새장의 문을 지키는 베르나르다 알바는 하녀들의 손이 부르트도록 일을 시키는 고약한 주인이자 젊은 딸들에겐 8년 동안 검은 상복만 입고 혼수용 수를 놓게 하는 억압적인 어머니다. 자신의 어머니인 호세파가 착란 증세를 보이자 광에 가두어 마을 사람들 눈에 띄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냉혈한이기도 하다.


여자의 순결과 정숙, 복종을 중시하는 베르나르다 알바.

그는 집안의 폭군이자 가부장제의 충실한 부역자일까?

베르나르다 알바 역의 이소정 배우 (출처: 플레이디비)

한계이자 자유,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담장 너머 가끔 집 밖 여자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힘없는 남편과 결혼한 여자는 납치되어 유린당하고 누군가는 약혼자에게 감금당하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돌을 맞고 가족으로부터 버려진다.  


그런 세상에서 베르나르다 알바는 말한다.

 내 보호 아래에서
모두가 편히 숨 쉴 수 있지.

박흥용의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주인공들은 냇가에 빨래를 하러 나온 어머니가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나무에 줄을 늘어뜨려 묶어둔 것을 목격한다. 아이는 그게 서럽고 답답해 목청껏 울지만 그 끈 덕분에 아이는 물과 먼 마른땅에서 엄마의 일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머물 수 있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도 그렇다.

딸들은 집안만 맴돌도록 구속하는 새장이지만 집 밖에 도사리는 다양한 위험(납치와 강간, 쓰레기 같은 남편의 폭력, 변변찮은 남자들의 유혹 등)으로 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보호라는 것이다.


문이 닫힌 새장 안에서 시작되는 폭풍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의지로 어디든 가고 싶어 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

딸들은 자유를 원하고 무엇보다 몸을 가진 여자로서 성적 욕구도 있다.

시놉에 언급된 앙구스티아스의 약혼자 빼빼는 다섯 딸들의 깨어나는 욕망의 상징과도 같다.

딸들과 폰시아가 창 너머 일꾼들을 보고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

극을 보면서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욕망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생각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물론 강간조차 피해 여성의 죄가 되는 사회는 결코 1930년대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만 있지 않으니까. 우리도 알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여성의 욕망을 통제로 착취하고 낙인으로 억압한다.


물론 딸들이 남자를 이 숨 막히는 집으로부터 탈출시켜 줄 구원자로 봤거나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남자를 원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마구간을 벗어나 들판을 달리는 수말을 묶인 채 바라보는 암말들처럼. 여자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 차별적 특권(사실 아주 기본적인 인권의 영역이지만)을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딸들의 갈망을 커져만 가지만 문은 벽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손잡이 없는 문을 여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지만 문 밖의 세상은 좀 더 큰 새장에 불과한 게 아닐까.

몇 개의 문을 더 열어젖혀도 맘껏 달릴 수 있는 들판은 나타나지 않고 손잡이 없는 문만 이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열과 한의 정서가 담긴 플라멩코


갇힌 몸과 욕망하는 몸, 그리고 여자의 몸이라는 한계까지.

이런 몸의 이야기를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플라멩코의 강렬함으로 전한다. (*프레스콜 영상 링크​)

플라멩코의 시작이 바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라고 하는데 단지 지역색뿐 아니라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극과 플라멩코는 너무도 잘 어울린다.

배우들이 부르는 넘버는 끝음을 처리하는 방식 등의 우리의 창을 연상시키는 지점이 많다. 한의 정서가 은은하게 흐른달까.

넘버가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손가락을 튕기거나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박자를 만드는데 그것도 극과 잘 어울린다.


몸을 악기로 만들어 부르는 몸의 노래.

그게 내가 본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한 줄 요약이다.




스포 없이 후기를 쓰려다 보니 다섯 딸(앙구스티아스, 막달레나, 아멜리아, 마르띠리오, 아델라)이나  어머니 마리아 호세파, 하녀 폰시아와 어린 하녀와 또 다른 하녀까지 각 캐릭터의 서사를 하나도 쓰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마르띠리오를 이해하고 안쓰러워하는지, 극 후반부 아델라의 독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디오 빌라도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폰시아의 극 중 위치가 얼마나 그와 닮았는지... 등등.


아무래도 몇 번 더 보고 극이 내려갈 즈음에 스포일러 범벅의 새로운 후기를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스페인을 사랑한다면, 플라멩코가 어떻게 뮤지컬 넘버로 구현되는지 궁금하다면, 새로운 뮤지컬을 찾는다면, 여성극을 좋아한다면, 여성 배우 10명의 에너지로 폭발하는 무대를 보고 싶다면...

보세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 물론 현재 오픈된 회차는 거의 매진입니다... 내자리도 없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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