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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매이 Jun 07. 2023

걱정과 고도차를 두고 멀어지기

북한산을 오르는 다섯 가지 방법

삼재가 있다면 이런 것일까, 최근 3년은 하여간 되는 일이 없었다.


어느 자리든 3개월을 넘기기 어려웠고 덕분에 수입도 크게 줄어든 와중에 둘째 고양이가 큰 병을 진단받았다.

내 고양이는 명랑하고 씩씩하게 병마와 싸웠지만 끝내 이겨낼 수 없었다.

산소통을 싣고 오가던 강남의 심장전문병원에서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며 약도 지어주지 않고 심지어 오늘 병원비도 받지 않겠다며 그만 가라고 했다.

아픈 고양이를 업고 길거리에 서서 엉엉 울었다.


고양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하던 프로그램이 없어져서 나는 또 백수가 됐다.

그때 다큐멘터리도 한 편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사이가 편치 않았다.

회의 자리에서 의견을 내도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관리자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전화를 걸어와 까마득한 후배 의견 들어보니 니 말도 맞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나는 회의 때보다 더 무안했다.

십수 년을 해 온 일인데 어떻게 일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남보다 못나게 사는 걸 보니 내가 못난 사람이 맞구나, 싶었다.


그렇게 애쓰고,

애쓰려고 애써보다가

결국 지쳐버린 2022년 봄,


나는 친구를 따라 북한산으로 향했다.

여러모로 서툴고 힘들기만 한 산행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정상까지 올랐다.

그곳에서 발아래 펼쳐진 도심을 보면서 '아, 저 건물들 사이 어딘가에 내 걱정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좋았다.


나와 내 걱정 사이에 836m의 고도차가 생겼다.

그때부터 산이 참 좋아졌다.



우리나라에 멋진 산들이 많지만 역시 가장 사랑하는 산은 북한산이다.

작년 4월, 처음 북한산을 오른 이후로 틈틈이 찾았다.

휴일에 늦게 일어났는데 날씨가 좋으면 3시간 내외로 왕복 가능한 원효봉이나 문수봉을 찾았고 좀 일찍 일어나면 숨은벽 능선을 지나 백운대까지 올랐다.  

아직도 북한산의 모든 능선을 타보진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장 대표적인 북한산 등산 코스 5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1. 산성탐방지원센터 원점 회귀코스

사실 백운대까지 오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이동에 있는 [백운탐방지원센터]를 통하는 것이지만 나는 강서지역에 살다 보니 우이동까지 가기가 좀 멀다.

그래서 주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기점으로 움직인다.


삼성탐센을 지나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첫 번째 표지판이 나타난다.

왼쪽은 산성계곡을 따라가는 탐방로, 오른쪽은 대서문을 지나는 임도이다. 두 길은 어차피 북한동 역사관 앞에서 만나니까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는데 나는 주로 풍광 좋은 계곡길로 올랐다가 임도로 내려오는 편.


북한동역사관에 도착하면 다시 표지판이 나타난다.

왼쪽 보리사 방향이 '가파르고 빠른 길' 오른쪽 (*사실상 직진)은 '약간 완만하고 느린 길'이다.

참고로 느린 길이 전망이 훨~~씬 더 좋다.

무릎 부하를 생각하면 급경사길로 올라서 완경사길로 내려오는 것을 추천.


북한산은 상당히 난이도 높은 바위산이라 경사가 가파른데 정상부 암봉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워낙 사람이 많이 다니다 보니 바위가 반들반들 닳아서 미끄럽다는 걸 감안해서 꼭 등산화를 신고 신발끈 잘 묶고 가도록 하자.


2. 숨은벽 능선 코스

요즘은 워낙 유명해서 '들킨 벽'이라 불리는 숨은벽 능선.

인수봉에 가려서 북한산 주능선 방향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서 숨은벽 능선이라 불린다.


[밤골탐방지원센터]에서 첫 표지판을 만나면 왼편으로 가야 한다. 오른쪽도 숨은벽 능선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길이 험하고 마당바위를 못 간다.

마당바위는 출발해서 50분 남짓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조망점으로 숨은벽 능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라 꼭! 쉬었다 가길 추천.

고양이 가족들이 사는데 무척 귀엽다. 사람이랑 안 친하니까 만질 생각은 절대 하지 말자.


마당바위를 지나 숲길을 좀 더 걸으면 코스의 하이라이트, 숨은벽 능선이 나타나는데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길 폭도 넉넉하고 안전한 편이다.

위험한 곳엔 어김없이 안전장치를 설치해 두는 국립공원공단이 그냥 내버려 둔 이유가 있으니 신발끈 꽉 매고 주의해서 걸어보자.


사실 숨은벽을 내려온 뒤가 더 힘들다. 갑자기 90도의 수직 암릉을 쇠봉 잡고 내려와야 해서 장갑은 필수. 그리고 백운대를 오르려면 숨 넘어가는 깔딱 고개를 지나야 한다.

이후 인수봉을 빙글 돌아서 백운봉암문에 다다라 1번의 산성탐센 길과 만난다.


하산은 주로 우이동, 백운탐방지원센터로 한다.

등산 악몽: 처음 숨은벽 갔을 때 배탈남



3. 비봉능선 코스 (*백운대 안 감)

족두리봉-향로봉-관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불광역 8번 출구에서 10분만 걸으면 등산로가 시작되어 접근성이 가장 좋은 편이고 암릉 타는 재미도 있고 난이도에 비해 풍광이 아~주 좋아서 소위 '가성비 코스'로 불린다.

입구가 주택가 사이 계단이긴 하지만 지도에 [대호아파트]를 쳐보면 등산로가 선명하기 때문에 찾기는 어렵지 않다.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면 철망문이 나오고 이곳을 통과하면 다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둘레길, 왼쪽이 비봉능선의 첫 봉우리인 족두리봉으로 가는 길이다.


한 20분만 오르면 사방이 트이면서 도시가 발아래로 보인다.

족두리봉에서 내려와서 잠시 숲길을 가긴 하지만 거의 이런 암릉 능선을 따라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참고로, 족두리봉은 정면에 위험 안내가 있지만 우회로로 올라갈 수 있다. 족두리봉을 마주 보고 오른쪽으로 돌면 입구가 있고 바위에 페인트로 길이 표시되어 있다.


향로봉도 암벽등반 구간과 우회로가 따로 있다. 깔딱 고개를 지나서 왼편인데 전망이 무척 좋으니 꼭 가보자.

관봉은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데 향로봉을 지나 암릉에 소나무가 멋진 조망바위다.

비봉도 처음엔 출입제한 구역이 있고 이곳을 돌아가면 오른쪽에 입구가 따로 있다. 코뿔소 바위와 진흥왕 순수비 등 핫스폿이 넘치지만 나는 무서워서 한 번도 안 가봤다. 비봉능선을 네 번을 탔는데 안 올라갔다.

안전제일.


문수봉 가는 길목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왼편으로 '쉬움', 직진은 '어려움'이라고 팻말이 나오는데... 기억하자.

쉬움=힘듦이고 어려움=무서움이다.

쉬움 길은 너덜 깔딱 고개이고 어려움길은 가파른 암릉을 오르는 진짜 깜짝 놀랄 만큼 아찔한 길이다. 근데 풍광이 정말 좋고 이곳을 오르면 나타나는 연화봉도 정말 멋지기 때문에 조심조심 '무서움'길로 가는 걸 추천



4. 의상능선 코스 (백운대 안 감)

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715봉-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출발은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한다.

앞서 1번에서 계곡길과 대서문길이 있다고 했는데 의상능선은 대서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입구가 있다.


의상능선은 북한산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코스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봉능선은 향로봉 이후에는 경사도도 심하지 않고 평이한 능선이 이어지는데 반해 의상능선은 마지막까지 철난간을 붙들고 오르는 암릉길이 나온다.

다녀오면 팔과 겨드랑이 언저리가 뻐근할 만큼 팔힘을 쓸 구간이 많다.


그런데 정말 예쁘다.

의상능선은 오른편에 백운대 등 북한산 정상부를 두고 왼편에 응봉-비봉능선을 두고 오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첩첩산중, 서울 도심에서 강원도 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코스다.


비법정 탐방로인 나월봉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을 오를 수 있도록 난간이나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으므로 비봉처럼 입구를 못 찾아 봉우리를 놓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하다.


헷갈릴만한 구간은 증취봉 인근.

우선 증취봉 표지석은 큰 바위를 돌아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가다가 왼쪽에 큰 바위가 우람하게 있고 내리막이 시작된다면 그 바위 뒤로 가보자.

그리고 증취봉을 내려오면 큰 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누워있는 곳을 보게 된다. 여기에 정신 팔려서 걸음이 자꾸 왼쪽으로 향하면 소위 알바를 하게 된다. 경로를 이탈해 운동량을 벌어간다는 뜻이다.

낙엽이 많아서인지 묘하게 길이 헷갈리는데 내려가지 말고 직진해야 한다.


그리고 나한봉도 놓치기 쉽다. 성벽길을 걸을 때 끝까지 따라가면 나타나는 북한산성의 치성(*정찰을 위해 돌출된 부위로 꿩 머리를 닮아서 치성이라고)이 바로 나한봉. 난 주로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715봉은 표지석이 없다.


비봉능선이나 의상능선 모두 하산을 [구기탐방지원센터]로 하는 걸 선호한다. 길이 무척 편하다.

가끔 구기탐센으로 문수봉만 올라가서 놀다 오기도 한다. 문수봉 풍광이 참 좋다.


5. 원효봉 코스 (백운대 가도 되고 안 가도 됨)

완전 초보자 코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코스다. 

사실 등산을 거의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굳이 운동화 신고 백운대까지 고생고생 하며 올라갈 필요가 있나 싶다. 자기 체력에 맞는 코스를 올라야 산을 즐길 수 있을텐데 말이다.


1시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는데 풍광이 좋고 쉴 곳도 넉넉해서 충분히 북한산을 만끽할 수 있다.

중간에 높지 않은 암봉이 있어서 바위산인 북한산의 매력도 느낄 수 있다.


출발은 산성탐센에서 시작해서 계곡길 방향으로 진입한 뒤 바로 앞의 다리를 통해 계곡을 건너 둘레길을 따라가는 방법이 있고 아예 효자 1통 마을회관(*버스 한 정거장 차이) 앞에서 내려 편의점 옆 등산로로 진입하는 방법도 있다.


시구문이라 불리는 서암문을 지나면 원효암까지 꽤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데 그 이후에는 좀 나아진다. 그리고 풍광도 좋고 군데군데 너른 조망바위가 있어서 충분히 쉬면서 오를 수 있다.

내려올 때는 상운사 방향으로 주로 내려온다.

상운사 앞까지 내려오면 백운대로 오르는 길과 만나는데 체력이 남는다면 올라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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