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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 Jun 15. 2021

'상상'에도 종류가 있다

상상, 공상 그리고 망상

나는 생각이 정말 정말 많다.

게중에는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생각도 있고, 그냥 막무가내로 떠올려지는 생각, 또 중독이 되어버린 생각들도 있다. 깨어있을 때 뿐 아니라 잠을 잘 때도 나는 어떤 '그림' 속에 산다. 그 그림도 역시나 생각의 일종이다. 그러니 나는 24시간 내내 생각에 사로잡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사고'이다. 나름의 논리적인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생각'들이다.

둘째는 '상상'이다. 이것은 현실을 기반으로 떠올려지는 가상의 '그림'이다.

이 둘이 완전히 분리되는건 아니다만, 사람마다 어느 쪽의 생각파에 가까운가 성향은 주어져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고' 파라기보단 '상상'파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내가 유별나게 창의적인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왜냐, 상상에는 꼭 창의적이거나 (결과적으로) 생산적인 것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극히 내 주관대로, 나는 상상의 세 종류를 구분지어보았다.


첫번째는 우리가 익숙히 아는, 말그대로 '상상'. 이것은 '사고'와 가장 친밀도가 높은 상상의 영역이다. 즉 나름대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를 적절히 조합하여 나와 타인을 즐겁게 해주거나 현실의 개선에 도움을 주는 생각들이다.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혁신적인 비즈니스 아이디어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두번째는 '공상'이다. 사고가 땅이라면 공상은 상상보다 땅에서 다소 멀리 위치해 있다. 지구 대기권의 최하단인 대류권과 성층권의 차이를 떠올리면 되겠다. 그러나 공상이 헛된 것은 아니다. 공상은 처음 들으면 일단 황당무계하다는 인상을 많이 주지만, 잘 다듬는다면 얼마든지 '상상'이 될 수 있다.  모든 '상상'이 성공적인건 아니지만, 적어도 '공상'의 놀이터에선 참신한 상상이 될 씨앗들을 발굴해낼 수가 있다.


마지막은 '망상'이다. 이건 지구 대기권의 영역을 벗어나 안드로메다 어딘가에 속한다. 망상은 '병'적인 속성을 지닌다. 처음에는 상상이었다가, 그것이 길을 잃고 공상이 되고, 더 나아가 종잡을 수 없을 지경에 다다러 인간이 '생각'의 주체가 아닌 '생각'의 노예가 될 때 그 주인을 바로 '망상'이라 부른다. 망상은 시작부터 망상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좀더 많다고 본다. 대체론 공상에서 시작된다. 엉뚱하지만 그래도 로또처럼 아예 불가능하진 않은 것들, 그러나 작은 확률에 목숨과 운명까지 다 바칠 기세가 될 때 그것이 '망상'이 된다.


망상은 전복의 위험까지 갖고 있다. 공상이 현실을 아주 약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재기어린 장난을 쳐대는 정도라면, 망상은 군부 쿠데타와 같다. 현실을 도저히 인정 못하게 만들고 제 맛대로 바꾸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 한다. 그리하여 '망상'은 '집착'과도 같다. 이 위험한 망상을 이어갈건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려있지만.. 관두기가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상상과 공상만 적절히 섞어가며 살아간다면 삶이 얼마나 재미있고 충만해질까 - 이것 또한 공상일까?  - 그러나 어떤 상상과 공상은 물리적, 심적인 이유를 만나 끔찍한 망상으로 변질된다.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망상이 있다. 그러니 라벨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생각과 상상에 과하게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의 성격을 파헤쳐보는 것을 권한다. 미세먼지 농도처럼 생각의 위험성을 판단해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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