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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김사장 Jun 25. 2017

저는 '시'가 싫어요.

[SNS 문학] 그저 그런 시라도 괜찮아


1. "책 좋아하시나 봐요? 꾸준히 읽으시네요."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좋다. 대화에 물꼬를 틀 좋은 소재다. 단둘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야기 거리다. 그동안 읽어온 책도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기에 좋은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겠다고 마음먹었다.

   "네. 즐겨 읽는 편이에요. 책 좋아하세요?" 라며 대꾸했다. 이제 좋은 대화가 이루어지겠지.

   "좋아해요. 시집을 주로 읽어요. 시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스스로의 짧은 문학적 소양을 자책하며.



2.  시를 읽는 일은 내게 취향과는 상당히 멀다. 솔직히 말해서 시가 싫다. 내게 작가의 설명 없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집을 읽는 것이 두꺼운 고전이나 시리즈 서적을 읽는 것보다 더 어렵다. 어쩌다 시집을 읽게 될 땐 만화 책보다 빨리 읽어낸다. 삽화가 있는 시라면 삽화를 '시'보다 더 오래 들여다본다. 내 학업 인생 14년을 통틀어 봐도 '시'가 나의 범주 안에 있는 경우는 없었다. 왜 그럴까? 남들은 즐기는 시를 난 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걸까.



3.   거슬러 올라간 2013년 여름. 나는 수험생 신분으로 남색의 생활복을 입고 책상에 걸터앉아 수능을 준비했다. 세세한 기억을 꺼내자면 날개 달린 표지의 수능특강. 국어영역을 펴놓고 시문학과 씨름하고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당시 시문학의 출제경향은 시의 의도와 표현, 함축적 의미를 찾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만날 때면 나는 이내 큰 번민에 시달렸다. 나에게 가장 힘든 두뇌활동은 특정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다처럼 깊은 시를 싫어할 수밖에. 또한, 일개 고등학생이 오래된 내공을 가진 시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의도 자체도 불순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유로 나는 23살이 된 지금에서도 시가 싫다.



4.   만물의 공통분모인 시간. 그 흐름 속에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피해갈 수 없는 공리이다. 시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시가 시대를 흐르더니 변했다. 기성 시는 제외하자. 쉽게 말해서 질량이 가벼워졌다. 본연의 느낌이 가벼워졌다는 것은 아니다. 시가 라이트 해졌다. 그런 느낌을 받은 건 하상욱 작가님께서 출간하신 『시밤』을 읽은 후부터였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시밤 中-

장난스러운 글 같지만 진지한 시다. 재치가 넘치면서도 여운이 남는다. 감동이 오고 공감이 다가온다. 숨은 이야기를 찾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면 된다. 시밤에는 이런 시들로 가득했다.


                                                                  Insta : _d_ju, yuuuni_93


   사람들이 시를 더 편하게 접하고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물론 sns의 성장세도 한몫했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시를 쓰기 시작했고 공유했다. 넘쳐나는 새로운 시를 접하면서 안목이 넓어졌다. 자연스럽게 시에 대한 거부반응이 줄었다. 이런 범주를 [SNS 문학]이라고 이야기하자. SNS 문학은 대부분 읽은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가볍기 때문이다. 읽은 그대로 이해하면 이해하는 그대로 웃으면 된다. 그렇게 웃다가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여운과 공감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럼 어느 순간 시를 덮고 자판을 끄적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    내게 시를 읽는다는 일은 취향과는 상당히 멀다. 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어려운 시를 찾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비록 유명한 시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그런 시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sns 시? 그건 시가 아냐. 의미도 모호하고 문법적으로 맞지 않아." 누군가 이야기했다.

하지만 의미가 모호해도, 문법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 속에 진심이 담겨있고 공감할 수 있다면 SNS에서 만들어진 그저 그런 시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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