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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u Mo Feb 10. 2020

당신과 인터뷰를 하고 싶어요

인터뷰 섭외에 모조리 실패한 뒤 쓰는 일기

죄송하지만 이번 인터뷰에 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요.  


갑자기 날아든 메시지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온다. 이번에도 실패구나. 어쩌지, 마감은 정해져 있는데. 이번 주의 모든 인터뷰 섭외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두 분께 인터뷰를 요청하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한 분께는 직접 전화도 드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인터뷰어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지 이제 3년이 조금 넘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거절에 익숙해질 수 있기는 한 걸까? 글쎄, 일단 지금은 속이 쓰리다.


문래동에서 만났던 최 아저씨. 푸근한 인상과 일에 대한 자부심이 참 좋았다.

3년 전에는 이런 인터뷰를 했었다. 철공단지 문래동, 수제화를 만드는 성수동, 봉제인들이 모인 창신동처럼 수작업으로 특화된 지역의 장인들을 담아낸 인터뷰 시리즈. 내가 일하는 곳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언론사도 아니었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단체도 없어 직접 동네에 찾아가서 섭외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 이러이러한 취지로 인터뷰를 요청드리러 왔다, 이렇게 저렇게 한 번 진행해봤으면 좋겠다', 읍소하듯이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곳에서는 이야기도 하기 전에 나가라며 대차게 까이기도 했고, 어떤 곳은 연락처를 남겨두라고 했지만 끝내 연락을 주지 않았고, 그러다 어떤 곳에서는 의외로 쿨하게 받아주기도 했다. 누군가의 내밀한 삶을 콘텐츠로 다듬어, 무대 위로 올리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인터뷰는 '서로 보는 일', 그러니 서로의 관점을 나누는 일이다.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나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상대가 만나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서로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섭외 과정도 손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렇지 못할 때다. 나는 이 사람이나 이 단체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하고, 들어보고 싶지만 상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그렇게 아쉬움으로 떠나보낸 이야기들이 꽤 많이 쌓였다.


2019년 4월의 인터뷰. 시원시원하게 말씀해주시던 소방관님의 모습이 아직 선하다.


인터뷰가 불발될 때마다 아쉽지만, 섭외 요청에 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 종종 '나였어도 못하겠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글도 아닌 영상으로(여기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꽤 많다) 인터뷰를 해서 누군가 그것을 임의로 편집하고, 불특정 다수가 그 편집된 콘텐츠를 소비하게 될 예정이다. 당사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그 내용이 나의 취약함이나 아픔을, 그리고 내면의 깊은 고민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라면?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의 문제를 고발해야 하는 것이라면? 내게 그런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선뜻 수락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더불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에 대한 믿음도.


그 믿음을 주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래서 첫 섭외 요청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나는 누구고, 내가 속한 이곳은 어떤 매체이고, 나는 그동안 무엇을 만들어왔고, 당신의 이야기가 이래서 듣고 싶고, 평소 내가 여기에 대해 해왔던 생각은 무엇이고. 일단 있는 힘껏 나를 드러내고, 상대와 관련해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씩 담는다.


가끔 열심히 쓰고 나서 다시 한번 글을 읽어보면 내가 너무 오버하나? 싶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보면 그냥 툭툭 연락 한두 번 해서 바로 섭외하던데.' 생각이 들 때도. 하지만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상대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의 준비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더욱.


그렇게 요청을 했다가 거절하면 그대로 존중하는 편이다. '아이, 그러지 마시고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시죠!' 식으로 막 들러붙지는 않으려 한다. 애초에 나는 붙임성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고, 인터뷰 요청을 받은 상대도 충분히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면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아쉽지만 언젠가 더 좋은 기회로 만나기를 바랄 수밖에.


이전에 언론사 입사 준비를 2년 정도 했다. 그러다 한 대형 언론사에서 인턴으로 잠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도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기사에 들어갈 전문가의 코멘트가 급히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부서장이 갑자기 외치더라.


야, 여기 경영학과 누구 있냐? 아는 교수 있으면 전화해서 코멘트 좀 빨리 따 봐!


기껏해야 기사에 한두 문장만 들어갈 게 뻔한 그 인터뷰 과정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교수는 기자에게 잘 맞춰주며 원하는(?) 대답을 잘해주었고, 또 어떤 교수는 단칼에 '이런 식의 인터뷰는 원치 않는다'거나 '나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라며 거절했다. 결국 코멘트를 따내지 못한 몇몇 기자들의 낙담한 표정이 문득 떠오른다.


인터뷰란 대체 무엇인가. 인터뷰에서 섭외의 중요성이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어떻게 섭외해야 잘하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예정해둔 인터뷰가 펑크 나는 바람에, 다음 마감을 이제 뭘로 채워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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