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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u Mo May 03. 2020

러너스 하이는 목표가 아닌 걸

달리기와 콘텐츠의 실패에서 느낀 공통점

2013년의 어느 선선한 밤. 경인교대의 우레탄 트랙을 뛰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이 몸이 가벼워졌다.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풀렸고,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10km까지만 정해두었던 마음 속의 한계를 넘어서, 처음으로 15km 언저리를 달렸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게 말로만 듣던 '러너스 하이'인 것 같았다.


러너스 하이. 30분 이상 달리기를 지속할 때,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 현상.

많은 러너들이 이 '러너스 하이'가 주는 짜릿함에 중독된다고 했다. 그 이후 러닝의 목표는 '러너스 하이'를 다시 경험해보는 것이 되었다.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려 무던히 애를 썼다. 달리는 거리를 쭉쭉 늘려보기도 했고, 속도를 한껏 높여보기도 했지만 그 순간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애가 탔다. 아, 왜 안 되지?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데. 그러다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 짜릿한 기분 없이 달리는 건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점점 띄엄띄엄 달리다가 결국 한동안은 달리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새로 이사한 집 앞에 근사한 하천이 있기도 했고, 일에서 받는 부담과 압박을 어떻게든 풀고 싶었다. 이전에 대책 없이 뛰기만 하다가 다친 무릎이 신경 쓰여 천천히 달렸다. 그리고 허무하게도, 그때서야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그 느낌을 다시 받았다. 기분 좋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 그렇게 다시 찾고 싶어도 결국 돌아오지 않던 그 느낌.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도 '러너스 하이' 같은 순간이 있다. 콘텐츠가 말 그대로 빵, 하고 터져서 호응을 얻어낼 때. 내가 만든 것의 파급력이 나도 모르는 곳으로 여기저기 번져나갈 때. 만들 때마다 이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마약 같은 순간. 


문득 '러너스 하이'를 다시 경험해보겠다는 일념으로만 달리던 과거의 모습이 콘텐츠를 만드는 지금과 겹쳐졌다. 콘텐츠가 망했을 때나, 번아웃이 오거나 자존감이 수직 하락해 바닥을 뚫을 때에는 늘 몸과 마음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건 터져야 돼, 이번에는 뭔가 해내야 해'를 속으로 되뇌면서 만들어낸 콘텐츠들. 스스로를 갈아 넣으면서 억지로 쳐낸 일의 결과물들. 아무도 예측하거나 확신할 수 없는 지점을 성공의 목표로 잡아두고 일할 때마다, 나는 실패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렸다. 러너스 하이의 설명글을 다시 읽는다. 이번에는 그 뒤에 덧붙여진 설명도 함께 읽었다.


30분 이상의 장시간 운동을 지속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경쾌한 느낌. 운동하는 사람의 심적/육체적 긴장감이 없을 때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심적/육체적 긴장감이 없을 때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달리기든, 콘텐츠든 나의 목표는 이것이어야 했다. '러너스 하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걸 가능하게 하는 '장시간 지속'과 '심적/육체적 긴장감이 없는 상태'가 목표여야 했다.


유튜브에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그 외에도 어떤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내가 만든 콘텐츠가 빵 터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앉은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작정 '터지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라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 일단 꾸준히 만드는 게 우선일 테다. 부담이나 압박에 지나치게 시달리지 않고,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에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 멈추지 않는 것.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러너스 하이의 짜릿함이 찾아오지 않을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어느 순간에. 한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시기를 보냈지만,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허덕이던 이전보다는 그래도 나름 잘 다독이고 있는 것 같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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