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댄스 컴퍼니의 <모빌리티>에 나타난 로봇과 인간의 경계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의 문제
멜랑콜리 댄스컴퍼니를 이끄는 안무가이자 젊은 춤꾼, 정철인 씨의 초대로 현대무용공연을 보았습니다. 작품 제목이 <모빌리티 Mobility>입니다. 이 무용작품은 포스트 휴머니즘을 주제로 다룹니다. 인간 이후의 인간은 무엇일까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 2045년을 전후로 기계와 인간 사이의 구분이 어려워지는 지점, 특이점이 온다는 주장을 합니다. 특이점이란 어떤 대상을 '어떻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지점을 뜻합니다. 영어로는 Singularity라고 합니다. 풀어쓰면 '하나가 된 것'이란 뜻인데요. 한마디로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와해되어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도구를 발명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시켜왔습니다. 바퀴의 발명은 원거리를 다닐 수 있게 해 주었죠. 한마디로 다리의 확장인 셈입니다. 작품을 보면 두 명의 무용수가 바퀴가 되어 무용수를 이동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은 이동의 수단을 통해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간의 감각도 여기에 적응하며 변화해왔습니다. 처음 기차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감산 혼합이 되어 보이는 걸 경험합니다. 이걸 인상을 포착하려는 거친 붓터치로 표현한 것이 인상주의였으니까요.
정철인 안무가는 무대에서 각종 소품을 효과적으로 잘 씁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무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인간의 이동성과 속도에의 열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주었고, 미세한 CCTV 가 부착된 옷을 입고 로봇처럼 움직이는 무용수의 모습은 곧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는 듯 보였고요. 무대에 드론을 직접 띄워 무용수의 팔에 안착시키는 모습도 나옵니다
이 드론의 시점에서 무용수들의 무브먼트를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스크린은 은막이라고 부릅니다. 공연 중의 배우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은밀한 베일' 같은 것이죠. 관객들은 드론이 촬영하는 무용수의 몸을 보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의 시각은 드론과 각종 모바일 기기를 통해 확장되고 연장된 감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보가 포화상태가 되며, '존재'로서의 방식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고 안무가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작품을 봤습니다. 무대에서 땀 흘려준 무용수들과 안무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