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연구>가 말하는 죽음의 현상학, 아름다운 바스러짐을 향하여
무용, 죽음을 말하다
올해는 현대무용을 자주 보네요. 이번에 본 <희년 연구>란 작품은 울림이 컸습니다. 현대무용 작품을 올리며, 토대가 되는 개념을 인문학적 렌즈를 통해 밀도 있게 연구하고 이를 무대에 옮긴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무용을 통해 표현하려는 개념적 사유를 탄탄하게 하려는 드라마투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희년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맞이하는 '안식의 해'를 의미합니다. 이때의 안식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아우성으로 몸부림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오심(The Coming of God)'으로 균형을 잃은 모든 삶의 영역이 정상으로 회복됨을 뜻합니다.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한 토지는 공동의 소유로 돌아가며, 노예는 해방되며 모든 부채는 탕감됩니다. 이는 정의의 회복을 뜻하기도 하지요.
이번 현대무용 작품 <희년 연구>는 그 개념을 '대지로부터의 죽음을 통한 해방의 과정'으로 해석함으로써 성서적 희년 개념과 다른 결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년이 가진 '해방'의 의미를 광의로 생각해본다면 작품 속 안식 개념과 양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희년 연구는 장례식을 둘러싼 의식, 리추얼 Ritual의 분석에서 출발합니다. 되돌아보면 저도 아버지를 여의고, 병원에서 관을 맞추고, 수의를 구매하고, 장례지도사의 가이드를 따라 하나씩 절차들을 처리했습니다. 그만큼 죽음에 관한 사회적 절차는 소프트웨어처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명령어입니다.
어디 장례뿐일까요?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른 몸을 갖고 태어나지만, 짜인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그 틀에 맞는 몸틀을 만들어갑니다. 습관이란 훈육을 통해서요. 무용가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이, 이들이 신체상해를 자주 겪는 존재란 것입니다. 작품 속에는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김밥을 마는 과정'에 비유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꽤 신선한 접근이었습니다. 관에 사람을 담고, 옷을 태우고 초혼을 하는 과정도 현대무용답게 깔끔하고, 간결하게 처리했습니다.
죽은 이를 관에 담을 때도, 관의 내부를 거울로 처리하여, 육체가 담기고, 타인의 몸이 서로 엉키듯, 서로를 살피는 과정을 관람객에게 보여줍니다. 나의, 너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는 것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무용수들은 각자의 상흔을 가진 몸을 갖고 평생을 살고, 그 몸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한 인공 보조기구와 보정틀, 옷을 함께 고이 접어 태움으로써 '제2의 피부'이자 영혼을 담는 그릇이었던 옷에 인사하고 태움과 함께 향이 되어 하늘로 갑니다.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서정가>란 작품에서 "사람의 영혼도 향기의 실처럼 천천히 시체에서 피어올라, 그것이 천상에서 한 군데로 뭉쳐지면 지상에 남겨놓은 육체를 본뜨듯 그 사람의 영혼의 신체를 만들어냅니다"란 구절을 남겨 놓았습니다. 우리의 신체가 화장을 통해 향으로 변화하는 순간은,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해방의 순간입니다. 우리의 몸을 재료로, 저 하늘의 캔버스에 우리의 몸을 그림으로 그리는 과정일 테니 말입니다. 이번 <희년 연구>는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허물려는 일련의 시도를 보여줍니다.
무용수가 연극적 발화를 통해 자신의 몸을 이야기하고, 그 몸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참신한 접근이었고, 연출과 안무를 맡은 김혜윤의 말처럼 '무용이 조금은 친절하게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의 결과는 꽤 긍정적입니다. 무용수 각자의 몸이 가진 서사가, 어떻게 죽음을 통해 원자화되는지, 그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는 그 침묵의 시간이 관객들을 '성숙'화의 과정으로 인도합니다.
올해 댄스 포스트 코리아의 필진으로 현대무용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전 오마이뉴스에서 무용 리뷰를 4년 가까이 열심히 썼다고 자부했는데, 결혼 이후 오랫동안 공연 현장을 떠나 있었구나! 하는 자책을 하게 할 만한 작품이 많습니다. 특히 현대무용은 이제 연극이나 영상과의 경계 허물기와 융합을 통해 새로운 움직임의 문법들을 활발하게 만들고 있고요.
제작진 :
안무·연출 | 김혜윤
리허설디렉터 | 류진욱
공동창작 | 곽유하, 류진욱, 오윤형, 최원석
프로듀서 | 김민영
조명감독 | 김병구
무대감독 | 최상지
영상디자인 | Limvert
작곡 | haihm
녹음 및 편집 | 김형민
음악사용 |
1. Claire de lune- Claude Achille Debussy(조성진)
2. Only our skin- Lamb
3. Glass- Alva Noto, Ryuichi Sakamoto
4. Crown Rule: A Quarantine Mixtape- Filastine
사진 영상 기록 | Tangia Films/이정민
의상 | 신호영
포스터 및 리플렛 | 김효경
주최·주관 | 고스트그룹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전문무용수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