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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글리 Jun 28. 2019

파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기 우리에 대한 이야기

딜릴리가 이야기하는 다름과 특별함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영화 포스터와 스틸컷의 전체적인 색감을 보면서 아주 귀엽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한 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예상은 틀리고도 맞았다. 영화는 키리쿠에서 파리로 온 소녀 딜릴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딜릴리는 남들과 다른 외모, 또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아주 특별한 소녀다. 딜릴리는 자신을 동물원에서, 또 거리에서 시시때때로 구경거리로 삼는 사람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항상 당당하고 의연하게 행동한다. 아프리카에서는 피부가 너무 하얘서, 파리에서는 너무 까매서 차별을 당하지만 '그 덕에' 진짜 바보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는 딜릴리를 보며 속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어디에나 나와 다른 누군가를 솎아내고 차별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영화는 파리의 명소들을 비추고 벨 에포크 시대의 여러 유명인들을 등장시킨다. 영화는 화면을 채우는 여러 장소와 인물들의 수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품고 있다. 또한 이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채로운 색감과 음악을 적절히 활용한다.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가, 과학자 등 익히 알려진 인물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당시의 사회상이 보여진다. 



마냥 밝지만은 않은,

영화의 포스터나 스틸컷만을 접한 사람은 이 영화가 아주 발랄한 템포로 유쾌한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나 또한 귀여운 주인공 딜릴리의 웃음, 전체적으로 화려한 색감과 비주얼, 다양한 인물들과 '파리'라는 필연적으로 낭만적인 배경 때문에 이 영화가 아주 '밝은'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풍요로운 예술의 전성기 벨 에포크 시대 파리, 평화롭기만 한 이 도시에서 연이어 어린아이들이 사라진다. 이에 사랑스런 소녀 '딜릴리'와 배달부 소년 '오렐'은 파리 곳곳을 누비며 피카소, 로댕, 모네, 드뷔시, 르누아르, 퀴리부인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에게서 힌트를 얻는다. 꿈보다 더 환상적이고 예술보다 더 아름다운 가장 황홀한 보랏빛 모험이 시작된다.



이 영화 소개글을 영화 관람 후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영화 내용이 꽤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게는 끔찍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던 장면과 내용들이 '보랏빛 모험'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분명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도움을 얻지만 그것만으로 '꿈보다 더 환상적이고 황홀한' 모험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파리에서 (여자)아이들이 사라지고, 아이들을 유괴하는 악당들을 쫓는 딜릴리 또한 유괴당한다. 유괴당한 여자 아이들이 모여있는 지하도 비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충격적이다. 악당들은 여자들이 권력을 가지는 사회에 대해 분노해 여자 아이들을 유괴해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가린 채 네 발로 걷는 연습을 시킨다. 네 발로 걷는 아이들은 '의자'가 되고 '노예'가 된다. 그들이 말하는 여자들의 권력이란 '여자들이 대학을 가고 정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


어느 시대나 사회든 내가 아닌 타인,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닌 타 집단이 '우리'보다 열등하다,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꾸만 서열을 나누고 다른 집단을 박해하는 무리들이 있다. 나는 그 정도는 달라질지라도, 그 방식은 변해갈지라도 그런 무리는 언제나 존재했으며 지금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여자 아이들을 유괴하는 마스터맨들은 극단적이고 악랄하며 사회악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이들처럼 표면에 드러나게 나쁜 존재들은 줄어들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더 영악한 방법으로 타인을 배척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뽐내고자 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럴듯한 논리로, 배려하는 척 위선으로 속내를 감추면서 끊임없이 타 집단을 억압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직시하고 경계해야 하는 그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럼에도 분명 희망적인,

이 영화는 그럼에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인공 딜릴리는 끊임없이 차별당하고 무시당하고 유괴까지 당한다.


그럼에도, 딜릴리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다수의 등장인물들이 있다.

그럼에도, 딜릴리는 기죽거나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럼에도, 악에 가까웠던 인물이 타당한 계기로 생각을 바꾸고 변화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끊임없이 긍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극도로 어두운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판타지에 가까운 긍정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영화의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 더 빛을 발하는 면도 있다. 또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어두운 사회의 면면에 단련된 딜릴리라는 인물의 목소리로 전하는 긍정의 메시지는 분명 더 힘 있게 느껴진다. 편안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인생의 고달픔에 대해 논할 때 듣는 사람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처럼,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사람이 말하는 삶의 긍정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러나 차별을 겪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딜릴리의 목소리로 '그럼에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보자고 말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관객에게 와 닿는 힘을 가진다.

딜리리는 말한다.

'가끔' 인생은 정말 멋진 걸 주기도 한다고 말이다.

 

'가끔'이라는 워딩, 지금 보니 정말 '항상' 멋지지만은 않은 삶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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