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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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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10. 2024

견디고 나서 비로소 닿을 수 있는

달리기에 대한 어떤 예찬

달리는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일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의 하루였다.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날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더 길게 달릴 수 있었다. 그만큼 성취감이랄까, 혹은 단지 즐거움이랄까 하는 좋은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참고 견디며 통과한 길 위에서 견디며 버텨내야 하는 날들이 삶에서 지니는 의미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유난히 몸이 무거운 날이었다. 달리기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 나는 발소리가 경쾌하지 않았다. 번갈아 발을 내딛는 움직임이 둔했다. 느린 움직임만큼 무릎과 발에 체중이 실리는 것 같았다. 해가 이미 올랐지만, 쌀쌀한 아침 기운을 맞지 않으려 입은 바람막이는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만 달리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1킬로미터쯤 달린 것 같은데 스마트워치에서 얼마나 달렸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의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것이다. 결코 즐거운 달리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달리기 더 싫어졌다.


쌀쌀해진 탓에 평소보다 덜 달리고 있다. 그래서 주말에는 하루라도 10킬로미터를 달리기로 했다. 토요일에 달리지 않았으니, 일요일인 오늘은 달려야만 했다. 어떻게든 거리를 채우자 마음을 먹고, 뒤늦게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다시 시작이었다. 1킬로미터, 2킬로미터 꾸역꾸역 채우며 계속해서 달렸다. 평소라면 2킬로미터쯤 달리면 몸상태가 대개 나아졌지만, 좀처럼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숙제를 하듯이 달려야 하는 날이구나 생각하며 거듭 반복하여 즐거운 달리기에 대한 기대를 단념했다.


달리기 싫은 마음으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겨우 홍제천을 지나 한강에 닿았다. 쌀쌀해진 탓인지 몇 주전과 달리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간혹 나를 지나쳐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달리기 어려운 날일수록 잘 달리는 사람들만이 길 위에 있곤 했던 것 같다. 평소라면 그저 눈과 마음이 내버려 뒀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속도를 조금씩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타인의 속도에 맞춰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스마트워치를 보고 8킬로미터를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달려야 할 10킬로미터에서 2킬로미터만 남게 된 것이었다.


그제야 달릴만한 상태가 됐다는 것도 자각하게 되었다. 달라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맞춰 목표를 바꿨다. 하프 마라톤 거리를 달려볼까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해야 할 일을 고려해서 15킬로미터만 달리자 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목표에 맞춰 몸에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30분 동안 15킬로미터를 달렸다.


단 1킬로미터를 달리는 것도 힘들다 생각하며 시작한 달리기였다. 꾸역꾸역 버티며 거리를 채우면서 한참을 달렸다. 그러나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더 멀리, 더 오래 달린 달리기로 마무리했다. 몸 상태가 좋아서 더 멀리, 더 오래 달린 날만큼 달리기 싫은 생각이 내딛는 발자국을 무겁게 한 날, 멀리 달리고, 오래 달린 날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기꺼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들이 살다 보면 더 많다. 마음이 행동을 이끌지 못하는 날이면, 멈춰 쉬고 싶어 지곤 한다. 적절한 휴식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끔 쉬는 것 대신에 하던 일을 이어가야 하는 날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날들 중에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하다 보면, 마음을 고쳐 잡게 되고 평소보다 더 잘 해낼 수 있게 되는 날이 있다.


해야 할 이유는 하지 않아도 될 이유에 비해서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비추기 시작하는 주말아침 무거운 몸으로 달려야 할 이유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서 햇살과 바람, 그것이 채운 길 위에 있어야 할 다른 이유는 많다. 그러나 해야 할 이유를 길게 늘어놓을 수 있고, 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일으키고, 세우고, 지탱하는 중요한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은 더 없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일이 지니는 가치의 무게만큼 사람을 지키게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만큼 쉬고 싶어 지게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윤상의 노래 <달리기>에 이런 가사가 있다.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삶은 언제나 시작해 버린 것들 속에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어느 먼 과거에 시작점이 있고, 오늘은 대개 진행 중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삶은 끝을 향해야 한다는 목적의식 위에서 진행되는 생활 속에서 인내를 요구한다. 인내의 순간을 지나치며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때로는 그저 견디며 계속하며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있다. 달리는 동안에 참아내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의외의 거리를 쌓아 올리는구나, 새삼 깨닫게 됐다. 힘든 날이 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 하는 순간, 그 순간에 나는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힘들게 달리다 달릴만해졌다.

그리고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었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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