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할 수 있음에 대하여
몇 해만에 이사를 준비한다. 여름까지만 해도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그 마음이 싹 가셨다. 그래서 고민 없이 떠나기로 결정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서는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사흘 만에 집이 나갔고, 새로 살 집도 구해서 이사 날짜도 정했다. 처음에는 다가올 봄에나 이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전에 집을 옮기게 됐다.
여기서 보낸 첫 절반의 시간은 분투의 시간이었다. 스스로 몸을 일으켜 굳건하게 서려고 노력하고, 노력했다. 성과도 있었고, 계속해서 꿈꾸게 됐다. 그러나 다음 절반은 그로기 상태였다. 부서진 의미와 그것을 잃어 가치 없어진 목적을 버리고 달리 살고자 노력했지만, 자꾸만 침전하는 마음 때문에 노력을 습관으로 삼지 못해 시간을 허공에 부서뜨렸다.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늪 같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늪을 넘어 더 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늪에 더 이상 깊이 빠지지만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난 3년 남짓의 시간을 보냈다. 비관적인 생각을 반복했고, 반복된 생각이 비슷한 행동을 만들었으며, 생활이 돌고 돌았다.
늪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침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기도 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달리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는 "새롭게 시작할 수 없음"에서도 오는 것이었다. 새롭게 시작할 결심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에 사로잡혀 오늘마저 볼 수 없으니 끊겨버린 시간 속에서 존재하며 살아있지 않지만 신체를 유지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멈춤이고, 의미 상실이었다.
앞에 둔 문제를 무엇하나 해결하지 못했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떠나려고 행동하게 됐다. 이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겠지만, 하나의 늪을 벗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훈데르트바서의 The endless path to you를 떠올리며, 아주 오래간만에 U2의 Walk on을 들었다.
a singing bird in an open cage
who will only fly, only fly for free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