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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an 17. 2022

장래희망은 뻔뻔한 어른입니다

눈 떠보니 서른 한 살.

얼마 전 스물 다섯에 처음 연을 맺은 언니가 올해 서른 다섯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스물 다섯에 그 언니는 스물 아홉이었고, 언니가 작년부터 열심히 운동을 해서인지 처음 만난 그 시절보다 오히려 요즘 더 어려보이는데, 서른 다섯이라니. 상상치도 못한 언니의 나이에 깜짝 놀라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올해로 서른 하나였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문득 소름이 끼쳤다. 스물 다섯의 나와 서른 하나의 나. 살이 조금(사실은 10kg 넘게) 찌기는 했지만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외모도 사고방식도 욕망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나이만 먹은 것 같다. 이상하게 스물 다섯 이전의 나는 한 해 한 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나 자신을 다르게 느꼈는데, 스물 다섯 후부터는 나이 먹는 게 예전만큼 큰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스물 다섯을 기점으로 나는 좋게 말하면 다 자랐고, 나쁘게 말하면 훅 나이들어 버렸다. 


스물 다섯을 기점으로 내가 가진 것들로 다른 사람을 추월해 앞서나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나이들수록 내가 남들보다 잘나야 한다는 욕심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러고보면 나는 원래가 소박한 평화주의자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글을 배우지 않아 학업 성취도도 높지 않았고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은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어떤 친구가 나를 무시하면서 '공부도 못하는게'하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아 처음 공부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아예 없었다. 

처음으로 '공부'에 대한 의욕이 생겨 무작정 교과서를 달달 외웠는데 어째선지 바로 다음 시험에 올백을 맞았었다. 그 때부터 삶이 조금 달라졌던 것 같다. 공부 쪽으로는 아예 기대조차 안하던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면서 나를 칭찬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갖고 싶던 장난감도 사주었다. 

공부를 잘하면 사랑받을 수 있구나.

티 못내는 관심병 환자 인프피는 그렇게 '범생이'가 되었다. 그 때부터 십여년간 내 삶은 공부로만 채워졌었다. 나는 항상 선생님들에게 예쁨받는 모범생이자 다른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자식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고학년 내내 전교 1,2등을 다투다가 중학교 때 배치고사에서 1등을 하며 입학식때 선서를 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내내 전교 1등을 하다가 특목고에 입학했고, 뒤늦게 진하게 온 사춘기의 영향으로 예술병에 걸려 문창과에 입학하는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질렀다. 물론 여기에는 가난한 경기도 소도시에서 전교 1등을 해봤자, 전국단위로 치면 중상위권 정도밖에 안된다는 뼈아픈 현실이 있었다. 특목고에서도 내내 1등을 했더라면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빠지진 않았을 테니까. 사실 문창과에 가려고 간 게 아니라 원래는 미대에 가고 싶었는데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뒤늦게 그 세계의 입시를 준비하는 건 공부로 어지간한 대학을 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고 결국 아무 생각없이 지원한 문창과에서 장학금을 준다기에, 그냥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대를 가는 것보다는 훨씬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는 선택이었지만, 약간의 미련은 있다.

그렇게 인간관계도 미숙하고, 무언가 남들보다 잘해서 주목받는 것 외에는 남의 호감과 관심을 얻을 줄도 모르는 범생이가 명문대 간판 없이 어른이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엄청난 방황을 시작했다. 문창과에서는 등단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게 유일한 목표처럼 보였기에 그걸 목표로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한 유명 소설가의 곧 죽을 것처럼 파리한 낯을 마주한 일이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난 우울한 표정, 신경과민으로 떨리는 손.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종류의 사람인데, 자신을 갉아먹으며 소설을 써내는 것 같은 그 연약한 모습을 보고 더럭 겁이 났다. 잘못 건드리면 깨져버릴 것 같은 그 사람이 너무나 안타깝고,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팠다. 내가 그렇게 되는 건 상상도 되지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건강하게 잘먹고 잘 살고 싶은 탐미주의자일 뿐, 예술가는 못된다는 걸 깨달았다. 잘난척 하는 어중이떠중이는 될 수 있겠지만, 내가 되고 싶었던 진짜 재능을 가진 예술가는 죽어도 못 될 것 같았다. 어떤 종류의 글을 쓰고 싶은지에 따라 조금 다를 순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쓰고 싶어했던 종류의 글의 최정점에는 그 소설가가 있었고, 그 소설가의 모습은 동경보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 세계에서는 가장 큰 명예를 (아마도 부도) 누리는 그의 모습은 당장 죽는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웠고, 내가 내 삶에서 누리고자 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예술가란 그저 '공부잘하는 애'를 대체하는, '남들보다 우월한'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목표일 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평생 살아왔던 방식과 똑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범생이에서 예술가 지망생으로 드라마틱한 변신을 했으나 내 질낮은 욕망은 어린 시절의 그것과 똑같이 단순했다. 나는 그냥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거다. 그 누구도 나자신만큼 내게 관심을 주고 사랑을 줄 사람은 없는데, 나는 지금까지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건가, 허무하고 허탈했다.

이제 나는 특별해지거나 남보다 잘난 것으로 내 가치를 증명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사랑받으려 노력해왔으니 이제 나 자신에게 사랑받아야겠다.

정말이지 뻔뻔한 어른이 되고 싶다. 

아직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고, 길을 나서면 보도블럭 위에 퍼질러 앉은 비둘기들의 눈치까지 보는 인간이라 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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