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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an 16. 2022

무기력한 불청객

누구에게나 그저 쉬고 싶은 시기가 있다.

최근 열흘 정도 나는 회사에 가는 것 외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열심히 하던 새벽기상도, 공부도, 글쓰기도 다 그만두고는 집에 오면 탄수화물과 당을 섭취하며 미드를 몰아봤다. 자기계발이고 나발이고 그저 쉬고 싶었다. 하루하루를 작은 성취감으로 성실하게 채워나가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갔다. 

음식으로도 충분한 휴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블랙홀 같은 피로감이 나를 지배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하루종일 들었다. 집에 오면 단순히 쉬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돼서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들을 주구장창 먹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피로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내 어떤 한 부분이 고장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제 기능을 하려면 충분히 쉬면서 어디가 고장났는지 살펴보고 수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장기적으로 기계에 손상을 입히는 강한 연료를 계속 들이 부으며 앞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매일 1,2시간 정도 연장근무를 했는데, 안 그래도 지쳐있는 상황에서 정시퇴근을 못하니 더 버티기 힘들었다. 업무 특성상 여러 사람과 일정을 조율하고, 수만가지 잡스러운 일을 처리하고 케어하다 보니 정신력 소모가 상당해서, 집에 오면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써야할 에너지까지 회사 일에 다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하루 이틀만 연차를 내고 쉬고 오고 싶다고 회사에 요청해 보았지만 무산되었다. 


나는 이 피로감이 어떤 놈인지 잘 알고 있다.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무기력한 불청객.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 진상 손님은 잊을만 하면 내 삶에 들이닥쳐 잘 일궈놓은 것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이럴 때 해결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주 질릴 때까지 먹고 자고 쉬는 거다. 그러면 어느 순간 에너지가 차오르면서, 누워만 있는 나자신이 죽도록 싫어진다. 

주말에도 계속 약속이 있어 쉬지를 못하다가 드디어 어제, 하루 웬종일 집에만 있었다. 요리도 하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고 '생산적'인 행위라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느릿느릿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음식을 집어먹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웹소설도 보고, 휴대폰 게임도 하면서 평소에 '해롭다'고 생각했던 오락들을 즐기기도 했다. 잠이 오면 자고, 배가 고프면 먹고 본능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다음날 몸무게가 1kg 늘어있긴 했지만 에너지는 조금 회복되었다. 


이런 식으로 불건전하게(?) 쉬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평소에는 약속이 없는 쉬는 날에도 새벽기상을 해서 공부와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가서 장을 보거나 도서관에 가는 등 억지로라도 나갈 일을 만들어서  나갔다. 약속 없는 휴일은 그렇게 보내는 게 가장 행복했고, 다음 주의 평일을 시작할 때도 가뿐했다. 이제 다시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고 싶다. 내일부턴 다시 일찍 일어나서 운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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