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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Feb 28. 2022

자유보다 안정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자유를 꿈꿨지만 성인이라 할만한 나이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항상 안정을 꿈꿨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자유 대신 안정을 바라게 된 그 순간부터 어른이 된 것 같다. 내 삶에 가이드를 제시하고 재정적인 지원도 해주던 부모님이 "이제부터는 너의 삶"이라며,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쥐어준 순간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 막상 자유로워지니 세상엔 믿을 사람 하나 없었고, 남의 돈 벌기는 너무 치사하고 더러웠으며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청소년기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나는 대중교통을 제대로 타는 방법조차 처음부터 배워야했다. 걸어갈 수 있는 범위 이상을 이동할 때는 항상 부모님이 차를 태워줬었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면허를 따고 부모님이 마련해준 차로 운전을 했기에 지하철로 어떻게 낯선 곳을 찾아가는지, 버스는 어떻게 타야하는지, 마을버스와 시내버스 시외버스의 차이는 무엇인지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이건 미숙함을 넘어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내 부모님을 조금만 비난하자면, 그들은 수도권에서의 서민적인 삶 대신 지방에서의 풍족한 삶을 선택하면서 외동딸을 무슨 대단히 유복한 집의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워놨다. 부모님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본인들도 몰랐겠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줄만한 재력이 없었다.

아직 온실 속 화초였던 대학생 때는 나를 자신과 비슷한 무리라고 착각한 류의 친구들이 꼬였었다. 철마다 해외여행 다녀오고, 학비와 생활비 걱정 대신 피부미용이나 옷에 대한 얘기로 삶을 채울 수 있는 애들이었다. 어느 순간 그 무리와 다른 길을 걷게 되자 사소해보이던 격차는 점점 더 켜졌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을 때 그들은 철마다 해외여행을 갔고 취직 여부와 상관없이 윤택한 삶을 살았다. 일부는 부모님의 연줄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종류의 직업을 갖기도 했고, 모두가 나와는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극심한 우울과 절망에 빠졌다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다소 억척스러운 지금의 나로 재탄생해 다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건, 나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가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내가 몸이 아파서 누워있는데 딱히 돌봐줄 사람도 구하지 못했고, 몸이 너무 힘들어 집밖에 나서지 못하는 바람에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코로나 검사도 받지 못했다고 치자. 그런데 나보다 부유한 다른 사람들이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상황에 병원에 안가냐. 책임감이 없다.'며 냉정한 소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같았으면 화가 났겠지만, 지금은 '병원에 쉽게 차 타고, 택시비 지불하고, 가서도 몇 만원쯤 쉽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들보다 가난한 나의 상황은 결코 훈장이 아니며 오히려 지은 적 없는 범죄에 가깝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 대해,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정당한 자격'이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며, '저 사람이 저렇게 사는 건 저 사람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렇게 살지.' 이런 말에는 그들의 이러한 심리가 내포돼 있다.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부' 그 자체를 숭배하는 이 시대에 그들을 비난하는 건 내 정신건강과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예전에는 사람들이 카네기의 자기계발서라도 읽으며 밑바닥에서부터 성공한 사람들의 신화를 동경했다. 부 그자체 보다는 그것을 이루어낸 인간의 위대함을 숭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밑바닥에서부터 부를 일궈낸 사람보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했던 태생적 부자를 숭배하는 것 같다. 마치 과거의 신분제가 부활해 평민들이 귀족을 숭상하는 꼴이다. 노력해도 안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태생적 부자들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야 너두 노오력하면 할 수 있어!'라는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차피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동경하면서, 부자들은 저 사람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 하면서 눈 앞의 경쟁자를 까내린다.


가진 게 없는 자는 잃을 것도 없으니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그렇지만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삶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겠지만, 이건 나이가 젊으면 대부분 갖고 있는 것이고 그 다음 중요한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잃기가 쉬운 것이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먹고 살 능력'이다. 꼭 모양을 갖춘 회사에 정규직으로 일하는 게 아니더라도 무슨 일을 해서라도 매달 돈을 벌어오는 능력이다. 제 아무리 의사 변호사라도 본인의 커리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 않는다고 자존심 때문에 돈을 안 벌어온다면 이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자존심 때문에,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닌 것 같아서, 따위의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일을 해서 매달 통장에 돈이 들어오게 하는 능력. 나는 이게 두번째로 중요하다고 본다. 마지막 세번째로 중요한건 안정적인 거주지다. 누구도 나를 쫓아낼 수 없고, 그곳에서 더 살거나 덜 살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집이다. 나는 20대 내내 이 세가지를 갖기 위해 발버둥쳤고 그 결과 어느정도는 이뤘다. 이제 잘 살아가는 일만이 남았으니 오늘도 정신을 똑바로 챙기고 일터로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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