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형제자매는?
https://www.youtube.com/watch?v=2gzadh_5DoU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장애에만 집중하느라 주위를 보살필 여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교수님께서 몇달에 한번 진료 갈때마다 늘 비장애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지금 자폐스펙트럼 아이이야기를 더 해주시지 왜 상관없는 다른 형제에 대해 이야기 하시나 했는데
왜 그러셨는지 지금에서야 이해가 간다.
장애 아이는 부모의 집중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수 밖에 없고, 오히려 소외될 비장애 형제자매를 더욱더
각별히 살피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
건우에게는 형이 있다. 나는 그 무적의 아들둘 엄마인데...(아 나 좀 대단한듯 ㅋㅋ)
둘은 한살차이 연년생 형제이다.
첫째는 6살이 되면서 동생이 다른 동생과 다르다는걸 알기 시작했다.
일곱살이 되던 어느날은 내게 동생은 왜 말은 못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동생은 왜 많이 울고 떼를 많이 부리냐고도 물었다.
첫째가 일곱살인 해에는 둘째아이의 자폐스펙트럼 문제행동이 극에 달했을때였다.
사실 그 시간들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돌아보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사실 가족모두가 그저 '견뎠던'시간이었다.
둘째가 울기 시작하면 한두시간은 기본 울때가
많았는데...
차안에서 토할정도로 울면 나도 남편도 모두가
머리가 흔들흔들거릴정도로
심적으로 지쳤었다.
그때 그 옆자리에 무표정으로..
..그 소음과 괴성을 묵묵하게 견뎠던 첫째가 있다.
울다가 막판에는 토를 하고 ..그러면
우리는 아무말 없이 울음을 삼키며 토사물을 치웠다..
모두가 앞만 쳐다보며 있었다.아무말도 없었다.
그나마 내가 한것은 병원에서 배운 말들..
"동생은 우리랑 느끼는게 다르다. 그래서 장애이고....
지금 우리가 느끼는것보다 훨씬 힘든것을 느껴
저렇게 오래 우는거다. 왜 힘든지 말을 못하니까
더 괴로울거 같다.....기다려주자.....
그리고 너도 같이
기다려줘서 고맙다...."
하지만 비장애 형이
괜찮을리가 없다...........................
이 영상에도 나오듯이 서로의 상호작용이 없으니
비장애 형제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다.
오은영선생님의 설명처럼 '무시'하는게 아니라
'재미'가 없는것이다.
우리의 경우 둘째가 가위바위보를 습득한 후
그나마 둘의 희미한 상호작용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코로나 기간동안
집에 감금(?) 되면서 둘이서 지지고 볶고 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첫째가 둘째의 눈높이로 함께 놀이를 만들면서 점점 더 나아졌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비장애와 장애형제를 할수 있다면 '다른 학교'를 보낼것을 권한다.
이는 장애 형제에대한 배려가 아니라 '비장애형제'를 위해서라고 한다.
처음에는 나는 이 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동안 같은 학교를 보내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왜 다른 학교를 다녀야하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첫째가 둘째를 돌보느라 자기 친구들과 잘 놀지 못했다.
recess시간에 전교생이 다 운동장에서 노는데..
(미국 클라쓰!!)
그 시간마다 동생이 걱정되어 동생쪽에 가서있었다 한다. 그덕에 아이는 학교에서 주는 칭찬스티커를 참 많이 받아왔다.처음에는 왜이리 많이 받아오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동생을 잘돌보는 멋진 형이라 양쪽 담임선생님이
기특하게 여기셨다고...
첫째에게 물어보니...
"건우가 한국말도 못하는데 영어는 아예 못하잖아.
보니까 친구들이 막 밀고 미끄럼틀에서 누가 발도 밟고
그래도 건우가 화를 못내더라구.....속상해"
하지만. 나는 그건 절대 첫째를 위한 일이 아니란걸 알았다. 그리고 내가 소아정신과 교수님께 배운 대로 말해주었다.
" 동생을 돌보는것은 매우 멋진 일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건 이 시간은 너의 소중한 쉬는 시간이다. 이때는 너도 너의 친구와 재미있게 놀아야 해. 그리고 동생도 이 시간에 친구랑 노는걸 시도해보고 설사, 친구들에게 밀침을 당해도 그것도 건우를 위한 경험이고...그 경험으로 언젠가 스스로 싸우는 힘을 기를 수도 있겠지?"
아이는 그제서야 안심을 하며 비로소 자기 친구들과
신나게 놀수 있게되었다.
그 경험은 한국으로 돌아와 꼭 다른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얼마전 첫째아이의 다면적 심리평가를 했다.
지속적으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봐줘야 한다.
내가 상태가 안좋았을때는 사실 첫째까지
케어하기가 참 벅찼다.
누가 툭쳐도 눈물이 뚝 흐르던 상태였으니까.
나도 단단해지고 있는 지금...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자주 아이를 안아준다.
꼬옥. 아프다고 할때까지.
우리는. 함께. 지금도
자라나가고 있다.
얼마전 기사를 통해 알게 된
비장애형제자매의 자조모임 '나는' 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평생 느끼는
슬픔과 부담감, 힘듦에 대해서 툭 털어놓고,
서로를 보듬으며 연대하기 시작한것이다.
참 다행이다.
조금씩. 사부작사부작.
변하고 있다.
나도 꼭 이 변화에 참여하고 싶다.
어떠한 방향으로든.
다짐을 고백한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1026/109907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