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일곱 번째 이야기. 이승민 셰프 & 환경활동가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건강을 위한 음식을 챙겨 먹어라는 독려의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죠. 그런데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먹는 것 ‘what we eat’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세네갈, 케냐, 싱가포르, 제주도, 그리고 지금은 영국. 그동안 이승민 셰프가 지나온 발자취입니다. 꽤 다양하고 독특하게 보여요. 음식을 다루는 셰프가 가기에 세네갈과 케냐는 어쩌면 조금 의외인 곳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의 활동 무대였던 제주도에서 이승민 셰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지만 세네갈, 케냐, 싱가포르, 이렇게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는 이유가 있어요. 사실 저는 세네갈을 가기 전에도 10년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요. 함께 일하는 곳에서 만난 동료들을 보면서 계획을 세운 건데요, 본받고 싶은 사람의 모습, 혹은 따라 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정리해 두니 제 계획이 자연스럽게 나오더군요. 어떤 곳에서는 폐식용유를 하수에 그냥 버리는 선배의 모습을 보았어요. “어차피 우리는 피해 안 봐”라고 선배는 말했지만, 사실 이미 우리 세대에 그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그때가 26-27살이었어요. 사실 더 이전에 미얀마와 필리핀에도 간 적이 있어요. 해외 선교로 방문한 거였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아마 나중에라도 다시 해외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기도 하네요. 셰프는 직업이잖아요. 셰프라는 타이틀을 떼어 놓았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상상 속의 제 모습은, 10년 후는 ‘환경 활동가’가 되어야겠다- 였어요. 환경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 어쩌면 진짜 여러 나라의 환경을 직접 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극한 환경일 수도 있겠지만 보고 싶다,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렇게 세네갈을 가게 되었던 것이죠.
막상 세네갈에 갔는데, 실제로 더운 날에는 50도를 웃도는 기후인 세네갈에서는 제대로 자라는 작물이 없었어요. 대부분의 재료는 수입에 의존합니다.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있는 온대 기후에서는 다양한 작물이 자랄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제철 재료와 우리나라 특산 요리를 즐길 수가 있지만요,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지역에서는 재료의 한계 때문에 먹거리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해요.
기후의 영향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던 과거에는 기를 수 있는 작물까지 정해주었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 익숙해지니, 이제는 다른 작물을 키울 수도 없게 돼버린 거죠. 특유의 전통적인 식재료라고 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먹는 것들은 결국 바다와 산, 들에서 나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바다와 숲은 '즐길거리가 있는 레저의 공간’이죠. 그런데 하이킹, 다이빙처럼 자연 속에서 즐기는 액티비티를 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다. 이 정도로 오염이 많이 되었구나.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의 원천이 되는 것들이 나는 곳인데, 참 많이 더럽혀져 있구나.'
셰프라고 해서 일반인보다 자연, 즉 먹거리의 원천이 되는 바다, 물, 땅, 토양과 더 가깝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셰프가 아니라도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물을 아끼고, 식재료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요. 요즘 우리는 버리는 것에 너무 익숙하잖아요. 자꾸 새로운 것이 나오니까요. 오히려 윗 세대를 보면 하나하나를 다 아끼고 모아두었죠. 냉장고 열면 다들 검은 봉다리 꼭 있잖아요. 언제부터 보관했을지도 모르는 냉동실의 검은 봉다리… 남은 식재료 모아두면 언젠가 쓸 거라고 하지만 그거 사실 안 쓰잖아요. 기억도 안 나고.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게 되니 이것 또한 낭비입니다. 웃긴 건 냉장고 속 검은 봉다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냉장고 시설이 잘 안 되는 곳도 많기 때문에, 일단 냉장고가 있다면 그걸 꽉 채워 넣으면서 괜히 흐뭇해하는 가정도 많아요. 소비하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결국 음식이나 식재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너무 쉽게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검은 봉다리만 쌓아두지도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미니멀리스트란 건, 옷이나 생필품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 미니멀리스트란 것도 있어요. 그날 먹을 것만 사서 넣어놓고 사는 거죠. 그러면 굉장히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하게 되고, 냉장고는 텅텅 비어서 부담도 없고 방금 사 온 재료로 요리를 하니 음식은 맛있을 수밖에 없고요.
지금은 영국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계획은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지난 10년의 계획을 돌아보았을 때 조금의 후회가 있었거든요. ‘아, 내가 계획을 조금 더 크게 세웠으면 난 그렇게 되었을 텐데.’ 계획에 갇혀버린다는 느낌이랄까요.
대신 하고 싶은 건 여전히 있습니다. 비건을 조금씩 알릴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요. 우리가 평소에 먹던 육류, 어류, 가금류도 팔지만, 비건 소비자들도 와서 먹을 수 있도록 비건 메뉴도 같이 하고 싶어요. 비건 식당에 가면 사실 양도 적고 값은 비싸서 잘 안 가게 되잖아요. 비건음식은 샐러드다!라는 편견도 생겨버린 것 같고요. 저는 사실 비건 음식도 맛있고 배부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비건은 푸짐한 음식이라고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맛있고 양 많은 음식인데, 환경에도 좋은 게 비건이라고요. 사실 샐러드가 아닌 비건 음식도 정말 많거든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비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접할 수 있게 하는 식당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셰프로서 또 환경 활동가로서 제 삶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어려워요. 그래도 저는 요리하는 사람 (오너 셰프)이면서 환경 활동가가 되어야겠다는 답은 내릴 수 있었어요.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즐길 수 있는 여정이어야 했고요. 그래서 잘 놀고 잘 돌아다니고, 그 힘으로 또 일 할 수 있으니까 10년 정도로 길게 목표를 잡았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하는 한 걸음걸음을 돌아보니, 살아가는 대로 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뭐 어떡해, 그냥 사는 거지 뭐”라는 말은 하기 싫었습니다.
내 인생이고 내 시간이니까, 내 의도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 하는 모습이 10년 뒤의 모습이 똑같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어요. 반대로 저는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고 방향을 바꿔나가는 삶을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온 관성이 있기 때문에 ‘하던 대로’ 살아질 수도 있지만, 의식적으로 관성을 깨려는 노력을 계속했어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매일 아침 감사를 잊지 않고, 줄 때는 아낌없이 주려고 해요. 또 나를 만나고 싶을 땐 일기를 써 가면서요.
인터뷰 전문은 유튜브 오와한자연 채널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