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정한샘 기획자 (a.k.a. 드림메이커)
말이 잘 통한다. 한샘님의 첫 느낌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대화가 술술 되었죠.
좋아하는 동네를 소개해 주며 자주 온다는 카페와 맛있는 빵을 파는 곳도 알려주셨어요. 서울 남산타워가 보이는 곳에서 그렇게 한샘님을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송도에서 오셨다고요.
송도면 서울까지 진짜 멀 텐데, 어떻게 이렇게 서울을 자주 오세요? 출퇴근은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대한민국의 중심, 수도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되었지만, 정말 서울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서울 사대문을 중심으로 한 성곽의 경계, 그 안과 밖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차이라기보다는 저에게는 그 모습이 조화라는 단어로 해석되더군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 이질적이지만 조화를 이루는 시공간의 존재가 있는 곳이 서울이라고 생각되었어요.
와, 서울을 이렇게 볼 수 있다니요? 점점 한샘님의 시선이 궁금해졌습니다.
보통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생각해 보면 고작 나 자신, 기껏해야 우리 가족 단위에서 멈추는 편이니까요. 우리의 시선은 줄곧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일에 매여 왔습니다. 이렇게 생계라는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시선을 가지려면 삶의 여백, 생각의 여유가 있어야 된다고 여겨지는데요, 아이러니한 점은 서울이라는 공간에는 여백이 크지 않다는 거죠. 어떻게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이런 시선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한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개인적인 경험이 분명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나 말고도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요.
수줍게 입을 여는 한샘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다고 고백합니다. 남들보다 호기심이 많아서 ‘내가 이상한 걸까’라고 생각해 본 적도 있어요. 대중교통에서, 길거리에서 큰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봤을 것 같은 모습이 연상되어서 살짝 웃음이 나왔습니다.
한창 호기심 많을 15살, 필리핀에 갈 기회가 생겼어요. 선교지로 필리핀의 빈민가 지역에 다녀온 건데요, 눈으로 직접 본 그곳의 모습은 날 것 그대로의 충격을 안겨주었죠. 그렇게 두 눈으로 우리나라 밖의 모습, 그중에서도 어렵게 살아가는 지역의 아이들 모습을 처음으로 담았습니다. 이후로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더 시선을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시선이 닿고, 겹겹이 시선이 쌓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긴 마음은 우리가 행동하도록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닿는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요? 결국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음,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 자신을 가꾸어나갈 때 우리가 원하는 사회(공간)가 생기는 건 아닐까요?
한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을 설명하면서 ‘황홀함’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어요. 최근에 우리가 언제 한번 ‘황홀하다’는 표현을 한 적 있나요. 황홀한 공간에 산다는 것, 상상만 해도 꿈을 꾸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꿈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사치일 수도 있는 요즘 분위기에서 한샘님의 생각이 궁금해졌습니다.
꿈이라고 하면 흔히들 일과 직업에서 연상된 생각을 많이 하죠. 그러나 한번 꿈을 글로 적어보고 말로 표현해 보세요. 그럼 추상적이라고만 생각되었던 ‘이상’이 조금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들어요. 또 이렇게 앞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저절로 나 자신을 탐구하게 됩니다. 나를 마주하고 나를 인정하는 순간, 미래의 나를 위해 스스로 응원할 수 있게 되어요. 결국은 꿈 그 자체가 나 자신이라는 걸 이해하게 돼요. 거리감 있고 현실성 없는 추상적인 단어에 불과했던 꿈이, 알고 보니 지금 살아 숨 쉬는 나였다는 사실. 이걸 깨닫고 나서 저는 매우 편해졌습니다. 저를 더 아끼게 되었고요. 그래서 내일을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는 힘도 생겨요.
꿈을 이뤘어. 혹은 이루지 못했어.라고 평가하는 대신 내가 꿈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 진행 중이다.라고 기준을 새롭게 정하는 일입니다.
15살의 한샘님이 필리핀에서 돌아온 이후, 어떻게 하면 모두가 꿈을 꾸고 이루어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대학 전공을 결정할 때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초등교육,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국가 간의 개발 협력을 선택해서 공부하기로 정합니다. 문과였지만 문과생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이과적인 학문, 바이러스, 보건 쪽으로도 자세히 보았어요. 직접 한의사나 의사가 되어서 의술로서 생명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거죠.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결국은 생명 가득한 인생, 그 사람을 살리는 길이니까요.
의식하지 못한 사이 우리는 굉장히 수동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받아들이고 적응해 버리며 살았던 모습이 많았어요. 하지만 내가 중심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지속가능성, 꿈을 잃지 않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과 사회를 향한 꿈을 꾸는 한샘님께는 미래를 희망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결국엔 사람입니다. 제가 아무리 원하던 것을 이뤘다고 해도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저를 단단하게 해 주는 것들은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과 나눈 대화, 누군가의 이야기, 그들과의 관계로 저는 저를 더 잘 알게 되었거든요. 오히려 저는 저를 잘 몰라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일까요? MBTI로도 저를 다 설명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지속가능성이란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