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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Jan 22. 2024

파랑색의 사람

너의 색은 무엇이니?

지금 내 모습이 나의 과거를 설명한다고 하면, 과거의 어떤 시점이 제일 먼저 떠오르나?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들어 준다면, 나의 미래는 어떨 것 같은가?


과거가 궁금한 사람이 생겼다. 그 사람의 현재가 너무 근사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현재 책을 쌓아두는 공간을 운영하며, 사람들이 그 공간 속에서 책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판매하고 있다. 맘에 드는 책은 구매도 가능하다. ‘서점을 운영한다는 건가?’라고 생각된다면, 사실 그렇다. 서점이긴 하다. 


하지만 서점으로서의 기능만 하진 않는다. 서점을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에 찌릿한 행복을 남기는 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된 그 유명한 블루도어북스에 다녀왔다. 서울역에 있을 때부터 가고 싶다 생각했다가 한남동으로 옮기고 나서야 발걸음을 했다. 굳이 예약을 하고 돈을 내며 책을 읽으러 가야 하나-는 회의감이 가기 직전까지도 가시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조금 거추장스럽달까, ‘굳이’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니 책은 집에서 봐도 되잖아.’ 싶은 편견. 그래도 요즘 ‘나를 위한’ 일을 조금씩 계속하고 있는 중이니까, 나를 위해 가 보자라는 명분이었다. 


블루도어북스의 문은 파란색이 아니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도착한 곳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조금은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입장한 시간, 저녁 8시. ‘우와 여기가 블루도어북스 구나.’ 입장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며 응대하던 사장님, 작은 목소리에 다정한 톤으로 블루도어북스의 2시간 동안의 경험이 시작됨을 알려왔다. 




예쁜 건 입 아프니 더 강조하지 않겠지만.. 너무 예쁜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앉아서 책을 읽을 자리를 찾았다. 자리마다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아르떼미데 조명이 놓여있다. 곧이어 따뜻한 차가 나왔다. 찻잔과 차 종류도 그냥 고른 게 아니라고, 생각과 정성을 담았다는 티가 났다. 소서에 찻잔이 부딪힐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도 고민했을까? 로열코펜하겐(으로 추정되는) 찻잔은 가벼우면서도 찻잔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찌르듯 나지 않았다. 위타드의 디카페인 티의 향이 책장을 넘기는 사이사이에 날아와 앉았다. 


제목에 큼직하게 <좋은 기분>이라 쓰여 있는 책을 골라 읽었다. 2시간이라는 시간에 책 한 권을 끝낼 수 있을까? 아까는 들리지 않던 노래가 귀에 들어온다. 아.. 좋다. 무슨 노래일까? 검색해 본 뒤 다시 책으로 눈을 옮긴다. 조금 있다가 또 아.. 이 노랜 또 뭐지. 너무 좋다. 검색해 본다. 그러다 보면 아… 향 너무 좋다. 무슨 향이지? 또 고개를 들게 된다. 그러면 조심스레 카트를 끌고 책장 사이사이를 걷고 있는 김진우 님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선곡도 하신다. 혹여나 책 읽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그가 고르는 노래, 오늘의 향기, 오늘의 차, 오늘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그가 선택하여 놓인 책들. 큐레이션 하나하나에 취향이, 정성이, 정성이, 무엇보다도 정성이 가득했다.  




궁금해졌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 삶이 어떤 꿈을 꾸게 했길래, 그 꿈을 어떻게 해석했길래 지금 이 현실을 가능하게 만들었을지. 


바로 지금 최선을 다해 촘촘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마침 읽은 <좋은 기분>에서도 말해주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행복해집니다”라고.


분명 책을 좋아하는 것으로 서점을 시작했겠지만, 이렇게나 가득한 정성은 어떻게 설명되나?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에 겨워 돌아간다.


아마도 나라는 한 개인의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는 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생각의 뿌리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는데 애를 쓰지 않았을까.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마음으로 느껴지기 마련인가 보다. 무엇보다 진우 님이 자신의 마음을 귀하게 여겼겠지, 정성을 아끼지 않았겠지. 그래서 결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한 삶의 나이테가 쌓였겠지.  


나 역시 행복감에 겨워 혼자 추측해 보았다. 




하고 싶은 게 늘 많고 새로운 시도에 겁내지 않았던 나도 30대 후반이 되면서는 은근하게 몸을 사리는 결정을 하고 있지 않나 돌아봤다. 예전만큼 엉뚱한 생각이 나오지 않아 두려운 적도 있었다. 나이가 드는 건가.. 할머니가 되어도 나답고 싶었는데. 나의 색이 흐려지고 점점 세상 속에 묻히는 기분이 들 때 바짝 경계하게 된다. 이러지 말아야지, 나의 색을 잃지 말아야지. 내 생각의 뿌리를 더 단단하고 특별하게 만들어야지.


블루도어북스라는 공간에서 나는 책 한 권을 읽었지만, 그 2시간의 경험은 한 사람의 진한 파란색을 보게 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 내가 좋아하는 것에 기울이는 정성만큼, 하나에 정성을 둘에 정성을 더해 전달하는 일. 그 일이 가득 묻어나는 공간 속에서 나는 질문했다.


나에게도 아직 그 마음이 남아있나?


40대가 되었을 때 ‘포기’하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 내 색깔, 내 취향과 내가 기울이는 정성들이 더 ‘나’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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