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사비맛 찹쌀떡 Jan 15. 2024

샴푸의 요정


어느 날 아침 샤워 시간. 샴푸를 손에 짜 거품을 내던 중이었다. 


펌프질을 두 번, 표준보다 작아 보이는 펌프 구멍으로 샴푸가 짜여 손에 덜어지는데, 순간 샴푸의 부드러움이 다정하게 (샴푸가 피부에 닿아도 전혀 이질감 없는 이 느낌을 표현할 다른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느껴졌다. 


이 샴푸로 말할 것 같으면 마트에서 가지런히 정렬된 채 한 코너를 가득 채운 그 위엄에 감탄을 자아내는, 시중에 흔히 보이는 저렴하지만 용량만큼은 넉넉한 대량생산의 산물로 나온 그런 샴푸가 아니다. 마트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샴푸는 그저 더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대기업에서 만들어내는 대용량 상품, 비눗방울이 터질 정도로 거품이 과하게 일어나는 샴푸는 화학제품이라는 (사실 화학제품이긴 하지만) 정체성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코가 간지럽게 강한 향을 첨가하거나 두피가 따갑다 생각되는 이런 샴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목적에 충실하고 단순하게 ’막 쓰기 편한’ 제품스러운 사용자 경험을 준다. 그렇다고 이 샴푸는 백화점에 납품되는 해외 고가의 샴푸도 아니다. 


그런데 그날, 샴푸가 손에 닿는 그때 샴푸의 요정이라도 펌프 밖으로 나온 건지. 갑자기, 정말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이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내 손 위로 와닿았다.


펌프의 구멍조차 작다 느껴졌던 (그래서 불편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이 낯선 브랜드의 샴푸로 ‘막 써도 되는 …’ 대신 ‘정성스럽게’ 머리를 감았다.


값이 저렴하거나 대용량으로 생산된 제품보다 비싸면 다 좋다는 것이 아니다. 내게 감동을 준 샴푸는 해외 수입 브랜드도 아니었고, 실제 가격은 전혀 비싸지도 않다. 단지 제품을 만드는 목적과 마음이 사실은 사용자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걸 느꼈던 순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후 물건을 통해서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생각이 되었다. 그 물건을 정성 들여 만드는 사람이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 정성스러운 음식이 내 몸을 더 편안하게 해 주는 것처럼, 정성스러운 물건은 나의 가치를 조금 더 올려주더라. 


매일 사용하는 샴푸. 매일 몸에 닿는 이불.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스피커. 향으로 공간의 결을 더해주는 룸스프레이. 잘 만들어진 노트 한 권.


내가 나의 공간에서 찾은 ‘정성이 전해지는 물건 5개’이다. 이 물건들 덕분에 삶의 질이 달라졌음을 정말로 느낀다.




나에게 잘해줘야겠다, be kind to myself, 하겠다 생각한 새해의 2주가 지났다. 새해의 다짐은 다행히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았다. 


2주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기억했다. 책 읽는 나, 글 쓰는 나, 그림 그리는 나, 먹는 것과 운동을 통해 몸을 관리하는 나. 그리고 하루 1~2시간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했다. 나를 위한다 생각하니 건강한 식사를 차려먹는 일도 덜 귀찮았다. 자기 전에 짧은 요가로 몸을 데운 뒤에 따스한 물로 샤워하고 침대로 들어가는 기분이 좋았다. 월요일 출근 전, 한 주의 마무리로 일요일 저녁에 글을 쓰는 행위에서 소박한 만족감도 경험했다. 


‘내가 나를 위해’ 취하는 행동에는 조금의 의지가 필요하긴 하다. 솔직히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바스러질 정도로 얕고 약한 내 의지를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제 의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나에게 정성을 들인다는 생각, 그 행동에 따르는 ‘꽤 괜찮은 기분’이 나의 새로운 동력이다. 이런 것들이라면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겠다 싶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정성이 전해지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제작자의 의도가 ‘이 제품을 쓰는 사용자가 스스로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건을 사용하는 소비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디테일에서 사용자를 위하는 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을. 나의 삶을 정성으로 채우는 일은 의외로 여러 방법이 있었다. 나를 통해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것들을 통해서.


이처럼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 없는 삶은 위험했다. 내면에서 형성된 단단한 보호막이 약해질 땐 외부에서 타격해 오는 평가를 나의 정체성과 분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공’이라 인정하지 않을 때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다. 일과 나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를쏘냐만은, 사실 그게 잘 안 됐다. 타인의 기대치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흐린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 그래서 스스로에 잘해줄 수도 없게.


그렇지만 정성이 모이고 쌓여서 이제 다시 나를 단단하게 보호해 줄 것이다. 

미래의 결과, 평가에도 자책하지 않도록, 그것들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샴푸의 요정이 숨어있는 GBH 제품
한남동 같은 자리에서 오래동안 매장을 지키고 있는 브랜드
글월의 노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