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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Jan 30. 2024

30대, 인생이 노잼이라면


뉴욕행 비행기를 질렀다.


쓰지 못한 채 쌓여 있던 항공사 마일리지를 털어 큰맘 먹고. 꼭 뉴욕이어야만 했던 건 아니다. 알고보니 마일리지 항공편으로, 그러니까 준(準; quasi-) 무료 항공권으로는 갈 수 있는 도시는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가서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도시는 우선 다 제외시켰다. 설렘조차 없는 도시가 몇 있었다. (1차로 슬펐다) 가봤던 도시를 굳이 또다시 가고 싶은 욕구도 들지 않았다. (2차로 슬펐다) 어릴 때 여행을 많이 다녀라는 말은 이래서 나오나 보다. 나이가 드니 호기심이나 욕구 따위가 사라진다.


사실 원하는 도시가 있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날짜에 마일리지 항공편 여분이 남아있길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캘린더 날짜를 조정해 보고, 도시를 바꿔보고, 한참을 항공사 어플에서 머물면서 내 일정에 들어맞는 곳이 뉴욕이란 것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하면 어떨까. 뉴욕(ㅇ_ㅇ!)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설렘(?)에 비하면 김이 새는 전개인가.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마일리지를 하루라도 빨리 처분하고 싶었다. 마일리지가 있어 봤자 비행기 한 편 타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데 괜히 아쉬워말고 그냥 쓰자!


그래서 나는 뉴욕에 가는 비행기를 확정 지었다. 뉴욕도 처음은 아니지만 2017년 출장을 마지막으로 가 본 적이 없고 2012년 여행을 빼고선 내내 출장으로만 방문했던 도시기에 10년, 아니 12년 만에 다시 여행을 가는 셈이다. 떨리는 마음보다 무서움이 먼저였다. (3차로 슬펐다) 지난 10년의 기간에 내 귀에 들린 미국의 소식은 흉흉하기만 했다. 원인 없는 혐오, 자유랍시고 마음껏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그곳의 치안과 위생에 대해서 들리는 이야기 때문에, 게다가 치솟는 물가, 20%가 넘는 팁 때문에 쉽게 마음먹고 여행할 생각을 못했다. 비행기표 구매 후 숙박어플을 켰을 때도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어마어마한 호텔가격이란… 하… 그냥 뉴욕 가지 말까.


여행 하나에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기대감이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설레는 삶을 살고 있나?

무과수의 <안녕한,가>



60이 넘은 나이에 첫 해외 선교를 앞둔 한 장로님은 그 3박 4일의 선교 활동을 위해 1년간 헬스장에 다니며 체력을 키우셨다고 했다.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마음인가… ‘에이 이 나이에 무슨’ 하며 헬스장 출입을 부끄러워하거나, 괜히 민폐만 될 것 같아 선교라는 새로운 도전을 지레 포기부터 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미래가 있기에 1년이라는 기간의 하루하루를 설레는 열심히 지낼 수 있으셨겠지. 반면 나는?


뭔가 기대되는 일이 있나?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가?


기대보다는 자꾸 슬퍼지는 여행 계획 중에 내 마음은 자꾸 흔들렸지만, 아직 비행기표를 환불하지 않은 한 가지 이유가 있다. MoMA, MET, 그리고 구겐하임.


사진: Unsplash의Diane Picchiottino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리 브링리 작)”의 소개 글인 "나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기로 했다”처럼, 내 인생 박물관인 MET (Metropolitan Museum)에서, 그리고 MoMA에서 하루 종일 숨 쉬고 싶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구겐하임도, 또 내가 모르던 새로운 뮤지엄과 미술관을 발견할 재미도 기대된다.





삶이 너무 안정적이고 미래가 예상되어 기대할 것이 없는 노잼의 시기. 어쩌면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기대도 없는 상태. 나이가 들며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짐에 따라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새롭게’ 보이지 않는, 그래서 감동도 감정도 조금은 메말라버리는 시기.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기를 지나는 중에 뉴욕행 비행기를 끊었다.


연인 관계도 설레는 첫 100일이 지나면 익숙하고 편한 성숙한 단계로 변하지만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노력해야 하지 않나. 나이가 들면서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한 태도도 계속 가꾸어 나가야 할 것 같다. 삶이 보여주는 환희에 감격하는 노력, 처음이 아니지만 마치 처음인 것처럼 감동하는 시선으로. 


뉴욕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마음이 일상에 활력을 더해주길 바라며, 그리고 뉴욕에서 몸과 마음으로 흡수한 감흥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또 다른 설렘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원서, 뉴욕 여행 전에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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