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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곡기를 끊다, 단식 3

메마른 영혼

내가 쓰러진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다가 문을 닫으려고 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앞이 깜깜해졌는데 일어나보니 방 안이었다.


정신이 들자 나는 다시 침울한 기분을 느꼈다. 더이상 아침이 주는 기쁨도 없었고 다시 눈을 뜨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들지 않았다. 자주 감사했던 건 아니지만 가끔씩 나를 밤새 덮어주고 있던 이불에게까지 고마웠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게 짐이었다. 나를 짓누르고 있는 옷도, 공기도 싫었고 무엇보다 살을 빼야하고 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정신적 짐이 제일 무거웠다. 무거움은 자꾸만 나를 넘어지게 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과 지금 당장 입에 무엇을 넣고 싶다는 열망만이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꿀을 마구 퍼먹고 옷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장기간의 단식 후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응급실에 실려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나는  기차에 타자마자 서울역 던킨도넛에서 샀던 도넛을 먹었다.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몸에 힘이 났다. 신기했다. 에너지라는 확실히 존재하는 물질이 내 몸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게 느껴졌다. 걷기도 힘들었던 나는 뛸 수 있게 되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뛰어갔다. 갑자기 집으로 내려 온 날 보고 엄마와 아빠가 놀랐다.


- 연락도 없이 왔어? 연락했으면 기차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 밥은 먹었어?


또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는 엄마였다.

나는 엄마를 안았다. 엄마에게는 단식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얘기를 하면 지금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슬픈 만큼 엄마도 슬플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살이 좀 빠진 것 같다고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냐고 농담을 했다.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과 국을 먹고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배는 약간 아팠지만 응급실을 가야할 정도로 몸에 이상은 없었다. 밥을 먹자 이 세상에 내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은 에너지가 솟았다. 엄마, 아빠 가운데서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눈을 떴다. 엄마와 아빠는 이미 출근 준비를 하고 계셨다. 눈을 떴는데 어제와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계획을 또 망쳐버렸다는 패배감부터 이 상태로 학교를 가는건 방학 숙제를 하지 않고 개학을 맞는 어린이가 되는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아침 차려놨으니까 일어나면 먹어. 엄마, 아빤 나갈게.


또 집에 혼자 남겨졌다.  엄마는 미역국과 감자볶음, 제육볶음을 만들어 놓고 나갔다. 아침에 이 정도를 준비해놓고 가려면 또 엄마가 얼마나 일찍 일어났을지 짐작이 갔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아무리 못났어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구나.' 밥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밥을 먹었지만 어제처럼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많이 먹었다는 생각에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건 무서웠다. 오랜만에 돌아 온 집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잊을 만한 뭔가를 찾고 싶었다. 책장에 꽂혀있던 한비야의 책이 보였다. 


여행. 한비야의 세계 여행기가 적혀있었다. 나는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다 한 부분에서 멈춰야 했다. 


한비야씨가 인도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기차에서 한비야씨는 거울을 보며 얼굴 상태를 확인 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흔히들 그렇듯 피부상태를 확인하며 늘어나는 점과 주름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인도인 여자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 나이에는 외적인 모습보다 영혼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가꿔야 하는 거 아닌 가요?" 


나는 이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다. 외모보다 영혼. 처음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했던 것도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였다. 나의 영혼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그것의 존재를 느끼기도 전에 내 영혼이 나에게서 도망쳐 버렸다는 걸 느꼈다. 내게 영혼이 없다고 느낀건 내가 너무 차가웠기 때문이다. 난 냉소적이었다. 굶주리고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봐도 멍청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불쌍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건 나였다. 그들에게 다가올 내일이 반복되는 굶주림일지라도 그들은 내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오늘처럼 내일도 먹지 말아야 했고 먹고는 토해내야 했다. 내 미래는 뭘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영혼이 있었다면 그는 나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을것이기 때문에 만약 미래를 모른다면 가능성이라도 알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차갑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미래는 얼음처럼 투명해서 그 차가움으로 모든 것을 가려 놓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따뜻하게 되돌려 놓기 위해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학교로 돌아가기 싫었던 마음도 있었다. 개학 첫날의 두려움은 그때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또한 인도에서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저녁이 되어 엄마, 아빠가 차례차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그들에게 하루는 고단했을테지만 나를 보고 집에서 즐거웠냐고 묻는 그들에게 다시 무한한 애정이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다 불쑥 휴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요. 영혼의 자유를 얻고 싶어요.


추상적이고 당황스러운 소리였지만 부모님은 이해해주었다. 아빠는 내가 언제나 극단으로 치닫는 성격이 걱정스럽다고 했고 엄마는 인도에서 내가 생각하는 치유가 가능하다면 꼭 자유한 인간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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