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내용보다 형식이 나를 압도한다.
시가 눈으로 읽는 노래라는 것을 오늘 새삼 느끼게 된다. 음악을 들을 때 내 기분의 흐름을 바꾸는 이 청각 매개의 자극이 그대로 시각으로 바뀐 것 같다. 눈 앞에 그려지는 상황과 감정,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 이 정도 살았으면 웬만한 감정을 다 느꼈을 것 같은데 어릴 때에 비해 빈도가 줄어들 뿐이지 새로운 자극이 오긴 온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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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해받기 위해 읽었는데, 요즘은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
엄마가 줄치며 읽었던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먼저 폈다. 세상을 소년과 청년의 그 어디쯤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남성이 읊조린 세상에 대한 자신의 감상평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겐 시라는 느낌보다는 감각놀이를 하고 있는 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술을 닫고 읽다가 엄마가 줄 쳐 둔 <사는 법> 이란 시를 보고, 나도 모르게 입술이 떨린다. 그 시에 동그랗게 줄을 그은 엄마의 마음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심재상 시인의 <넌 도돌이표다>를 읽었다.
심재상 시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 갑자기 나에게 어떤 시를 읽어주었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시를 들었을 때 마음에 조그맣게 오던 감정충격은 잊기가 힘들다.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팔딱거리는 것처럼,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에 팔딱이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심재상 시인의 시는 아름다워서 팔딱거리진 않았다. 오히려 슬프고, 외로워서 시를 읽다 돌연 의자에 기대버리게 만들었다. 가도가도 난데없는 삶. 도무지 따라잡지도 못하고, 따돌리지도 못하고 그저 갑자기 나타나 놀래키는 공포영화속 귀신같은 운명. 이미 정해져있는 '운명'인데도, 언제나 의외로 다가오는 이 거지같고, 무서운 삶.
시집이 인생을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태도라면,
나는 왠지 의외로 세상을 황무지 같은 곳으로 바라보는 축축한 흙 가득한 화분 속의 선인장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