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 관점에서 바라 본 1인 미디어 교육 사례
시청자미디어재단 미디어리터러시 계간지 '미디어리' 5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편집자에 의해 가공된 부분이 많으니 꼭 브런치 글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https://kcmf.or.kr/cms/board/board_view.php?menuIdx=23&btype=publication&search_field=&search_string=&page=&mode=v&idx=28817&mode=v&idx=28817
‘우리도 유튜브 스타’, ‘만들어Yo 어서옵Show’(중학교 자유학기제 과정), ‘우리 동네 유튜버’(지역 공동체 어린이 교육), ‘행동하는 1인 미디어’(노무현재단 시민학교) 등의 교육 과정을 운영했는데 모두 1인 미디어가 중심에 있긴 하지만 교육 기관의 특성과 대상자들의 수요가 달라서 동일한 교육 내용을 적용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만은 빠지지 않고 다뤘는데 지금부터 그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현대인이라면 하루라도 미디어를 접하지 않고 살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심히 걱정스럽다. 미디어 정보 처리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능력은 물론 뉴 미디어 활용 능력과 그에 적합한 소통 능력, 그리고 그 뒤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공동체적 사고와 인권 감수성까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은 점점 방대해지고 있다. 하지만 트렌드에 맞춰 잘 나가는 유튜버를 양성하려는 현재의 1인 미디어 교육의 현실에서는 혹은 45분 안팎의 8회차 자유학기제 수업 안에서는 단순한 제작 교육을 넘어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기에는 여건이 만만치 않다.
초기에는 1,2차시 수업을 통째로 ‘미디어의 힘’이나 ‘미디어 리터러시’ 같은 주제로 미디어를 읽고 쓰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1인 미디어 제작자로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실하게 알려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학교밖 성인 교육에서는 교육방향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 참여자 몇 명이 2회차 수업 후에 중도 하차 하는 일이 벌어졌고, 학교안 청소년 교육에서는 참여자들이 딱딱한 ‘공부’를 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제작은 언제 해요?” 같은 질문을 할 정도로 지루하게 느끼는 분위기가 퍼졌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리터러시에 대한 내용은 각 단계별로 조금씩 녹여서 설명하는 걸로 방향을 전환했다.
많은 사람들이 1인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고 직접 제작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1인 미디어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제작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미디어 개념만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갔다.
전통적 미디어와 뉴 미디어를 모두 아우르면서도 쉬운 개념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음식과 그릇의 비유를 떠올렸다. 여러분들이 만든 음식을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는지에 따라 맛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접시에 먹기 편한 음식과 빨대로 빨아먹기 좋은 음식이 다르듯 어떤 매체에 담고 표현할 것인가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하고 싶으신가요. 또 유튜브는 어떤 매체인 것 같나요?
평소 보는 유튜브 채널을 말하라고 하면 열심히 떠들던 학생들이 “그럼 너는 어떤 영상을 만들 거니”라고 물으면 입을 닫거나 평소 보던 영상을 따라하는 수준의 얕은 의견만 발표한다. 정말 좋아하고 관심 있고 자기 자신과 관련 있는 주제를 찾아도 다음 질문을 던지면 또 조용해진다. “그 다음에는 어떤 영상을 올릴 거니”
유튜브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는 한 편만 공들여 만들면 되는 영화 제작과는 다르다. 꾸준히 만들면서도 매번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잡지 제작과 유사하다. 또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튜브 영상의 수명(lifespan)은 최대 2주라고 한다. 대중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거나 시의성 때문에 역주행 하는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상 조회수는 2주 안에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갖고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 부어서 하나의 걸작을 만들기보다 자기만의 특색을 갖고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채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편까지 염두에 두고 기획하기 위해 참여자들에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해왔다. 하나는 처음에 던진 아이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다. 누군가 ‘편의점 먹방’을 찍겠다고 하면 다음에 먹을 음식도 10개쯤 생각해 보라고 말하던가, 색다른 방식으로 먹는 법을 궁리해보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이미 넘쳐나는 유튜브 먹방 홍수 속에서 자기 채널의 콘텐츠를 차별화 하는 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니까.
공동 작업 제안은 필수는 아니지만 혼자서 제작 과정 전반을 책임질 자신감이 없거나 단편적인 아이디어만 던지는 참여자들에게는 유용할 것이다. 처음에는 영화 교육을 하던 습관 때문에 두 번의 제작 실습 중 한 번은 무조건 모둠 활동을 하게 했지만 학생들의 성향이 다양하고 1인 미디어의 특성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과 의견을 맞춰가며 작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참여자들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미디어 교육에서 ‘무엇을 담고 있나’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어떤 장르, 어떤 서술 방식,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수용자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어떻게’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의 중요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같은 주제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입장에서 접근하는 사례 영상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장애인 픽토그램을 보여주거나, 환자에 대한 국가별 시선의 차이를 느껴보라고 ‘사랑의 리퀘스트’와 ‘Sickkids vs’ 광고 영상을 함께 보여준다. 이 과정을 거치며 학생들은 단지 어떤 소재를 촬영할까라는 고민을 넘어 어떻게 촬영하고 어떻게 편집하고, 마지막에는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될지까지 고민하는 기획자의 자질을 갖게 된다.
교육 대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젊은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능력은 훌륭하기 때문에 스마트폰 활용 수업에서는 굳이 모든 걸 알려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전에 편집 앱 사용법을 20분 내외의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한 뒤 교육 전 공지 단계에서 사용할 앱을 알려주며 관련 영상을 보고 오라고 과제를 내주고 있다. 수업 전에 모든 참여자가 앱을 미리 설치하고 기본적인 기능을 익히고 온다면 수업 중엔 더 전문적인 제작 기술과 자기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만 전달하며 학생 개개인의 질문에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내가 만든 자료가 아니라도 유튜브에는 좋은 자료가 넘쳐나니 모든 미디어 교육자들이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 기법을 사용하기를 추천한다.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제작자들은 꼭 화면 속에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카메라나 마이크 뒤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도를 전할 수 있고 영화나 방송 같은 공동 작업이라면 역할을 나누기 때문에 출연자 말고는 자기 공개의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1인 미디어는 완전히 다르다. 극히 일부 장르를 제외하고는 제작자가 곧 출연자다. 그래서 출연 때문에 영상 제작 자체를 꺼리는 교육 참여자도 많다. 수업 첫 시간에 분명히 “우리 수업은 유튜브 업로드를 전제로 영상을 만듭니다”라고 말해도 끝내 얼굴 공개를 거부하거나 업로드 자체를 막는 사람도 있다. 손이나 목소리만 나오는 영상을 제안해도 부담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사람들은 남이 찍은 사진이나 게임 플레이 영상을 활용한 영상을 제출하고, 심지어는 모든 등장인물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영상을 제출하기도 한다.
다른 미디어 교육도 마찬가지겠지만 1인 미디어 수업에서는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얼굴 공개나 유튜브 업로드에 대해 사전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타인에게 보여주기를 꺼려한다. 모두들 자기 작품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보여주기를 부끄러워한다. 처음에는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의견을 듣고 부족한 부분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영화·방송반 수업에서 미디어 수업으로 교육의 성격을 바꾸면서 공유의 필요성도 약간씩 다르게 전달하고 있다.
앞에서 미디어는 그릇이라고 비유했다. 기껏 음식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먹지 않고 썩는다면 어떨까. 누군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진다면 어떨까.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미디어 콘텐츠가 타인에게 닿아 모르던 정보를 전해주고 감동을 주고 더 나아가 사회를 변하게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에서 공유되지 않고 확산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가치 있는 콘텐츠라 하더라도 무용지물이지 않을까. 기존의 영화 제작 수업이라면 작품은 남을 것이고 결과물이 형편없더라도 만드는 과정 속에서 깨닫는 것도 있겠지만, 미디어 수업에선 남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미디어 쓰기 교육과 구별하고자 ‘미디어 되기 교육’이란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연결하기 위해선 적확한 방법도 알아야 한다. 내가 사용하려는 매체와 플랫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하는 법을 익히고 결과물을 최적의 방법으로 공유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아도 좋아요와 공유를 비롯한 여러 기능으로 좋은 콘텐츠를 남들에게 전파할 수 있다. 예전에는 전문가와 방송국만 할 수 있던 일을 작은 스마트폰 한 대만 있으면 하나의 ‘미디어’가 되어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이 스스로를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라는 자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미디어 교육이라면, 현대의 미디어 교육은 곧 ‘미디어 되기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체성이야말로 시민의 중요한 특징이니까.
1인 미디어 교육에서 다룰 내용은 많다. 미디어 리터러시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제작 기술이나 홍보 기법,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서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는 힘도 길러주어야 한다. 하지만 1인 미디어가 화두가 된지 얼마 안 됐으니 모든 게 혼란스럽다. 결국 교육 내용이나 교육 방법 모두 미디어 교육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지금의 1인 미디어 교육이 어디로 흘러갈 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유튜브는 그저 지금 가장 잘 나가는 플랫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다. 너무 유튜브에만 얽매여서 가르치기보다는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와 플랫폼을 두루 공부하면 좋고, 전통적인 미디어의 잘 정돈된 내용을 가져오는 것도 충분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메시지라고는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콘텐츠 그 자체니까.
--------------------------------------
*저작권이나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알아야 할 점들에 대해서는 유튜브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면 좋다
https://www.youtube.com/intl/ko/yt/about/policies/#community-guidel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