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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일 Nov 19. 2021

짧게 더 짧게, 숏폼 콘텐츠

스마트폰 화면으로도 충분하다는 디지털 원주민들의 선택

숏폼 콘텐츠의 범람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고 유튜브가 대세가 되던 십 년 전만 해도 아직까진 전통적 미디어의 콘텐츠가 강했다. 대다수의 사용자 제작 영상(UGC)은 기존 영상 포맷을 따라가려 노력했지만 기술이나 예산, 기획력의 부재 등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태생적인 어설픔을 지우기 어려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레거시 미디어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무심한 10~20대 제작자들이 만든 숏폼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고,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뭘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기성세대의 생각과는 반대로 모든 Z세대(혹은 디지털 원주민)들은 틱톡과 인스타그램 같은 숏폼 특화 플랫폼의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숏폼 콘텐츠의 매력은 무엇이고, 미디어 제작자들에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모색해 보자.

긴 글을 꺼리는 요즘 독자들을 위해 여러 언론사나 블로그 사이트에서는 읽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적어준다.


숏폼 콘텐츠란?

마케팅 담당자가 생각한 매체별 적당한 분량. 출처: https://www.orbitmedia.com/blog/ideal-blog-post-length

  명확한 정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소설이나 영화가 장편・중편・단편으로 나뉘듯 인터넷 속 영상들도 재생 시간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예전엔 방송 포맷의 절반 이하인 10~15분 짜리 영상을 숏폼 영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유튜브 시대가 되며 10분도 길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고, 요즘엔 스냅챗이나 틱톡이 보급되며 플랫폼이 허용하는 동영상 최대 길이인 15~60초 길이의 영상을 주로 숏폼 영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다수의 숏폼 영상은 휘발성이 강하다. 유튜브 같은 ‘전통적인’ 동영상 플랫폼의 영상은 주로 구독과 관심사 검색을 통해 접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틱톡 영상은 취향을 기반으로 알고리듬이 추천하는 영상이 대부분이다. 구독과 좋아요 같은 기능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손가락을 위아래로 휙휙 움직이며 즉흥적으로 결정을 하다 보니 불과 몇 분 전에 봤던 영상을 다시 찾아 보는 일도 쉽지 않다. 대신 짧기 때문에 가능한 방대한 수량의 영상들은 그런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주로 소비되는 영상으로는 춤이나 노래 같은 장기 자랑 영상이 대세긴 하지만 각종 팁과 정보를 주는 교육 영상, 멍 때리며 즐길 수 있는 유머 영상,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캠페인 영상, 기업과 1인 크리에이터의 광고 영상, 기존 매체 콘텐츠를 재가공한 영상 등이 있다. 예전엔 긴 영상을 짧게 가공하거나 무대 뒷모습이나 팬 서비스 영상처럼 주 콘텐츠를 보조해주는 역할의 영상이 많았지만, 이젠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콘텐츠로 자기만의 자리를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다.

  많은 수의 숏폼 영상은 세로 비율을 따르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사용 습관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는데, 메신저로 대화를 하고 웹툰을 보고 쇼핑을 하고 게시판 글을 읽을 때 세로로 스크롤링하다가 영상을 볼 때만 휴대폰을 가로로 돌리는 게 어색하기 때문이다. 사진과 동영상을 생산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쥐고 있는 기기를 굳이 돌리지 않고도 쉽게 촬영할 수 있고 어차피 내가 찍은 영상을 가로로 긴 화면으로 볼 것도 아닌데 촬영 장비를 가로로 돌릴 이유가 있을까. (필자를 포함해서) 전통적인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들이야 가로 영상을 볼 때 위 아래 까만 블랙바를 띄운 채 보는 숏폼 영상 시청자들이 안타깝겠지만, 처음부터 세로로 찍으면 그럴 일도 없으니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혹자들은 스낵 컬처 콘텐츠를 가볍게 소비하는 인스턴트 음식에 비유하며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주류 미디어가 되기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갖고 놀던 젊은 세대 시청자・창작자들에겐 왜 주류 미디어를 따라해야 하는지 부터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양쪽 진영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의 관심과 돈의 흐름이 이 숏폼 시장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걸 보면 더 이상 숏폼과 롱폼은 경쟁 상대가 아닐 수도 있겠다. 숏폼 콘텐츠들은 또 다른 숏폼 콘텐츠나 플랫폼, 혹은 자기 자신과 싸우며 성장할 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숏폼 콘텐츠 플랫폼


틱톡 : 가장 대표적인 플랫폼으로는 틱톡이 있다. 주로 15~30초 이내의 짧은 영상이 올라오는데, 춤이나 노래 같은 장기자랑 영상부터 마술이나 꽁트 같은 내러티브 영상, 각종 팁을 공유하는 넓은 의미의 교육 영상, 여러 사용자가 함께 하는 캠페인 영상, 기업들의 광고와 홍보영상까지 그야말로 숏폼 콘텐츠의 정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https://support.tiktok.com/ko/using-tiktok/creating-videos

인스타그램 릴스 : 인스타그램은 롱폼 콘텐츠 채널인 IGTV가 생기기 전까진 동영상의 길이가 1분이 최대였다. 그야말로 원조 숏폼 콘텐츠. 하지만 젊은 층 사이에서 타사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보급되자 최대 30초 짜리 영상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인 Reels를 따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기능이나 이용자들의 사용 목적은 틱톡이나 스냅챗 스포트라이트와 다를 게 없다. https://about.instagram.com/ko-kr/features/reels / https://business.instagram.com/creators/reels

유튜브 쇼츠 : 유튜브는 기존 사용자 제작 동영상(UCC・UGC) 서비스 사이트를 압도할 정도의 대표적인 동영상 플랫폼이자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을 대체할 정도로 성장한 정보의 바다다. 더 많은 광고 수익을 노리는 제작자들의 의도 때문인지 유튜브의 많은 영상들은 기존 매체의 영상보다 전반적으로 짧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8(10→5)분 이상이다. 아무래도 감각적인 재미를 주고 멍하니 보며 시간 때우기에 좋은 틱톡 류의 영상보단 길다 보니 젊은 시청자들을 오래 붙잡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2021년 7월에 전세계적인 숏폼 비디오 서비스 Shorts를 시작했다. 업로더에게 파격적인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고, 그 때문인지 많은 유튜버들이 짧은 영상이나 세로 영상을 열심히 올리고 있다. https://support.google.com/youtube/answer/10059070?hl=ko

스냅챗 스포트라이트 : 미국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메신저인 스냅챗에서 제공하는 숏폼 비디오 서비스. 최대 60초 길이의 비디오를 화려한 효과와 함께 올릴 수 있다.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이용자가 적은 편이다.

트릴러 : 숏폼 비디오의 대표적 플랫폼. 인공지능의 손을 빌려 멋진 음악이 깔린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영상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틱톡이 대체가 된 이후에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기 위해 열심히 다른 미디어 업체들과 합종연횡을 하고 있다. https://go.triller.co


숏폼 콘텐츠의 가능성

  짧은 재생 시간을 가진 동영상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긴 영상을 짧게 끊어 올리거나 맥락이나 내러티브 없는 일회성 영상만이 숏폼 비디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긴 영상보다 끝까지 볼 확률이 높고, 빨리 보고 따라할 수 있고, 보자마자 공유할 수 있고, 짧기 때문에 타인에게 추천해도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 이미 갖고 있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제작하는 데에 큰 부담이 없다는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활용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두 개의 사례를 소개한다. 유행에 민감하고, 재밌어야 하고, 시청자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주도적으로 다른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자극・격려하고, 종국에는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라면 참고할만 할 것이다. 


1) 묘비 청소 틱토커 @manicpixiemom 사례

대부분의 비석은 잊힌 존재다. 가족과 지인들조차 1년 중 하루 정도를 빼고는 관심을 갖기 힘들다.


 특히 공동묘지에 있는 묘비는 방치되기 일쑤다. 주변 잡초는 관리되지만 비석 자체가 처음 세워질 당시의 모습으로 유지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100년도 더 넘은 비석이라면 공포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흉물이 되고 만다. 그런 점을 안타깝게 여긴 Caitlin Abrams란 여성은 여러 지역의 묘지를 돌아다니며 비석을 청소하며 망자의 사연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지역 신문 부고란을 뒤져서 어떤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지 찾아내고, 족보 사이트에 접속하여 언제 미국 땅으로 이민을 왔는지 같은 쉽게 알 수 없는 정보를 얻어낸다. 1분 안팎의 묘비 청소 영상 위로 한 사람의 인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깔릴 때면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접하지 못했던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세로로 긴 비석의 형태는 틱톡 같은 세로 영상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발굴될 수 있을까. 1인 미디어 제작자는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서 창작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마을미디어는 지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시작이라는 점에서 @manicpixiemom의 사례는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2) Black Lives Matter 캠페인 : 2020년에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게 강압적으로 체포되던 중 사망하자 벌어진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는 순식간에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뜻있는 시민들을 일으켜 세웠다. 특히 사회 문제에 등돌리고 있을 것이라 여겨지던 Z세대들이 주도적으로 BLM 운동에 참여했는데 그 중심에 틱톡을 포함한 여러 숏폼 플랫폼이 있었다. 젊은 틱톡 사용자들은 BLM 지지 성명 영상을 앞다투어 업로드했고, 순식간에 릴레이 캠페인이 되어 국적을 넘나들며 전세계 이용자들에게 확산되었다. 또 시위 참여자들에게 집회 참여 독려나 참여시 알아야 할 안내 영상을 제공했고, 무엇보다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기록한 영상들을 틱톡 첫 화면에 끊임 없이 노출시킴으로서 사회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자극했다. 이후 BLM 운동을 넘어 아시아인 혐오 중지(#StopAsianHate) 운동이나 LGBTQ 운동 같은 사회 곳곳에 산적한 인권 문제로 전선을 확대시키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참여하는 방식은 기성세대의 운동과는 양상이 달랐다. BLM 시위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 목숨이 오가는 진지한 인권 문제였지만 Z세대 틱톡커들은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평소에 놀고 즐기던 숏폼 영상 문법과 재기발랄함을 덧입혔고, 마치 파티 소식을 전하듯 집회 소식을 전파했다. 또 15초나 3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군더더기는 싹 빼고 마치 광고 영상처럼 핵심과 요점만을 담은 속도감 넘치는 영상으로 할 말을 전했다. 과거의 사회 운동이 헤비급 선수의 움직임이었다면, 숏폼 플랫폼의 활동가들은 라이트 플라이급 선수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이 글은 2021년 11월에 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actmediact.tistory.com/1658?category=111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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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2016년에 썼던 시대 흐름에 민감하자는 취지의 수원시미디어센터 뉴스레터 수미C 기고 글 : https://brunch.co.kr/@drector/1

- Vidyard(www.vidyard.com)의 연구에 따르면 90초 이하의 동영상 중 53%는 끝까지 재생되지만, 30분 이상의 동영상은 고작 10%만 끝까지 재생된다고 한다. 인간의 주의집중력을 고려한다면, 혹은 멀티태스킹에는 능하지만 주의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젊은 세대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숏폼 콘텐츠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 Caitlin Abrams 틱톡 www.tiktok.com/@manicpixiemom / 뉴스 http://youtu.be/qtJb10inTis 

- Black Lives Matter 캠페인 기사1 : https://www.hattaway.com/post/3-key-lessons-from-tiktok-creators-what-change-makers-can-learn-from-gen-z

- Black Lives Matter 캠페인 기사2 : https://www.reach3insights.com/blog/tiktok-social-activism

- 사회 운동과 틱톡 기사 : https://www.ypulse.com/article/2021/09/15/how-activism-on-tiktok-is-leading-to-real-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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