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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Oct 04. 2023

추석의 끝과 블루 자이언트

231003


  추석 연휴가 끝나갑니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가 이달 중 개봉한다고 합니다. 해서 집에 있던 원작 만화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시간이 더 빨리 갑니다. 소름이 끼칩니다. 내용이 좋아서인지 출근이 싫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로또당첨되면 만화책방을 차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사회과학 서적을 곁들인. 집에 있는 소설도 책장에 비치할래요. 책방 배경음으론 늘 재즈를 틀어 두겠습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긴 이른 모양입니다. 내일도 밥벌이를 해야 하네요.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 부당한 듯 합니다. 밥벌이라, 지겹다고 투덜대지만 지금의 내 일이 과거의 내겐 꿈이었습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그때를 잊은 걸까요. 목표가 달라진 건지.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군가 로또든 연금복권이든 뭔가 대박이 나면 뭐할 거냐고 물을 때 나는 그래도 기자 일은 할 것 같다고 답하곤 했습니다. 읽을 만한 논픽션 작품을 쓰고, 영화 비평서를 완성하겠다는 꿈도 여전합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도 해야겠고요. 나이를 서른 여섯이나 먹은 마당에 철없는 소리 같지만, 어쩐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영화 <blue giant> 일본 포스터.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예전엔 만화책 속 주인공에게 즐겨 감정이입했습니다. 주인공의 능력이 대단할수록, 그가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은 그가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갑니다. 주인공의 재능 앞에 좌절하는 사람, 목표가 또렷했으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꿈을 포기하는 사람, 그저 주인공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 중심 트랙에선 끝내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는 그들도 빛나는 순간과 또다른 빛을 찾아 헤매는 시간을 마주할 겁니다.

  마침 이 만화는 한권 한권 말미에 조연들을 등장시키네요.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와 언젠가 만났던 이들로, 먼 미래 시점에 위대한 음악가가 된 그와 교류했던 순간을 회상합니다. 만화의 큰 줄거리는 다이의 성장기인데, 그의 성공은 이미 정해진 결과인 셈입니다. 그의 연주를 들은 것이 계기가 돼서 재즈 애호가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때 다이의 곁에서 연주했으나 지금은 다른 길을 찾은 사람도 나옵니다. 중심 이야기 속 이들의 역할이 새삼스럽습니다. 다이에 관한 이들의 증언은 어쩌면 이들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시리즈 제목인 blue giant는 작중 다이의 첫 스승인 유이가 재즈의 거장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유이가 꿈꿨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대신 다이에게 희망으로 내건 단어죠. 현실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이는 색소폰 연주자고, 만화에선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같은 전설적 색소포니스트들의 이름이 즐겨 언급됩니다. 이들 각각의 최고작이 무엇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앨범이 kind of blue, blue train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근거는 없습니다만, 저들이 blue giant의 어원 아닐까 짐작하게 됩니다.

  D가 이 책을 꼭 보면 좋겠습니다. 이동진 수준으로 보지 못해도 우리 모두 영화를 좋아합니다. 스크린이 걷히고 나면 무언가 한마디씩 생각을 주고받죠. 저는 다이처럼 연주할 수도, 평론가처럼 분석적으로 들을 능력도 없지만 재즈좋아합니다. 지금 속한 업계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일합니다. 업의 본질과 직업윤리도 고민합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이 일을 할 생각이냐 물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날은 꿈이 하나인 것 같고, 어떤 날은 여럿 같습니다. 일단 하루하루 삽니다.

  슬며시 blue train을 틀어 봅니다. 이 음악이 끝나고 나면 어디로든 도착해 있겠죠?


https://youtu.be/HT_Zs5FKDZE?si=b6cERgY4ruCPlbq9



P.S. 이 만화 내용이 좋은 건 이미 잘 알려졌으니, 컷 구성도 훌륭하다고 홍보를 좀... 시리즈 2편인 <블루 자이언트 슈프림> 5권 초반은 다이가 은인 보리스에게 베를린에서 멤버들과 여는 첫 합주라며 초대 문자를 보내고, 보리스가 다이에게 '못간다'는 등 보내는 문자 글귀 아래로 보리스의 일상이 그려 뒀다. 재즈 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보리스는 더이상 재즈 업계를 존중하지 않는 동네 분위기와 인터넷 발달로 용품 오프라인 숍이 주변화되는 상황을  '이번 재즈 합주에서 최고임을 보여주겠다'는 다이의 희망찬 문자와 새삼 대조해 보게 된다. 그 결과는 당연히 베를린에 가는 것이다.

  3권 역시 흥미로운데, 다이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베이스 연주자 한나 페터스에게 밴드 합류를 권유하는 장면을 보면 다이의 모습은 나오지 않고 그의 손짓과 한나의 전신만 나타나 있다. 그의 눈에는 오직 한나만 보이는 거. 

  리고 9권의 레코딩 장면과 직후 number 5(다이가 주축이 된 밴드지만 다이의 이름을 앞세으지 않았다) 음악이 시리즈 내 스친 인연들 귀에 가닿는 장면라거나, 예전에 색소폰 연습을 구경하던 아이가 다이의 연주를 잊지 멋하고 노스시 연주장을 찾아와 그에게 감동을 전하는 마지막 권은...(말잇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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