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9
가치나 관점만 가지고 질의하지 않고 집행자(경찰)의 언어(수사기법과 수사매뉴얼)를 배우고 익혀서 그 언어로 질의서를 만든 것도 주효했다. 추상적이고 커다란 질의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피감기관(정부)이 가장 쉽게 답해버릴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질문이 뭉툭하면 답변도 '예, 알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된다. 깍듯한 예의까지 갖춰 답변하면 그 순간은 마치 '완벽한 질의응답'처럼 보이지만 그런 답변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 <법 짓는 마음>, 이보라, 38p
장마철 집중호우 시기가 되면 도심 한가운데 침수되는 곳이 꼭 생기는데 그게 도심 인프라(기반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하수구 배수 기능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하수구에 담배꽁초 같은 이물질이 끼여 빗물받이가 제구실을 못해 배수가 안 되기 때문이다. 도로변 빗물받이에 각종 쓰레기가 쌓이고 인위적인 덮개로 하수구를 막는 것이 침수 피해를 3배 이상 키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프라가 문제라면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일으켜서 해결하면 되는데, 이렇게 담배꽁초가 문제라면 공공행정이 매번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을 쫓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때야말로 시민들의 힘을 빌려야만 공동체의 재난 위험을 막을 핵심적인 키가 마련된다.
가 보지 않은 길을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어련히 알아서 가 주겠거니' 하는 것만큼 순진한 것이 없다. '법적 근거'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공무원 업무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탓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일을 할 수 있게끔 예측 가능성과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가 보지 않은 길에 구체적인 경로가 되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국회의 역할이다. - 71p
그 법 제24조에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도 넣어 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서를 작성할 때 단순히 금액 편성뿐만 아니라 그 예산집행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서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운용에 반영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2022년은 법 통과 뒤 처음 시행되는 해다. 정부가 하는 일을 보려면 예산과 인사만 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돈의 쓰임새는 정부의 핵심 가치와 방향, 철학을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2023년 예산에 대한 ‘온실가스감축인지 기금운용계획서’가 국회에 도착했다.
나는 탄소중립법을 자식처럼 생각하기에 흐뭇한 마음으로 그 자식의 친구쯤 되는 기금운용계획서를 받아들었는데, 페이지를 넘겨보니 좀 이상했다. 예산서 작성 대상이 되는 13개 부처 288개 사업 중 취약계층지원사업은 저소득층 가구에 냉·난방기기를 지급하는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을 포함한 5개가 전부였다. 규모도 전체 예산(11조8828억원)과 비교해 0.96%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예산정책처에서 검토한 바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사업이 부풀려져 책정돼 있었다. 그 규모는 1조9698억원(온실가스 감축 인지 전체 예산의 약 16.6%퍼센트에 해당)에 달했다. 결국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도 IPCC 보고서처럼 쓰인 것보다 쓰이지 않은 것이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예산서를 작성한 공무원들으 이 내용을 몰랐을까? 그중엔 누군가 '공무원 반란'이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닐까.
예산서를 덮고 '이러려고 탄소중립법을 만들었나' 깊은 한숨이 나왔다. 역시 아무리 법에 영혼을 담아도 디테일에 반드시 악마가 있으니, 감시하지 않으면 도처의 악마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히게 될 형국이다. - 157~158p
국회는 말을 다루는 곳('민의'의 전당)이고 말의 전쟁터(정쟁)다. 정치학자 박원호 교수는 "의회는 내전을 대체하는 제도다. 과거에 총칼로 싸우던 것을 이제 대표를 보내 말로 싸우는 제도가 의회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정치에서의 권력투쟁은 사실상 마이크 획득을 위한 투쟁이다. 각 정당마다 월수금, 화목요일에 원내대표단 회의와 최고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지도부 각자에게 3~5분씩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마이크를 쥔 의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자들의 찰칵찰칵 셔터 소리와 타닥타닥 노트북 타이핑 소리가 경쟁적으로 터졌다 사그라든다. 이런 풍경은 너무도 스펙타클해서 현실에 있으면서도 마치 뉴스 보도 한 장면 안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다(물론 가끔 뒷배경으로 잡히기도 한다).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법이 있거나 이슈가 생겼거나 아니면 폭로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아무 때나 국회 소통관(기자회견장)으로 가면 된다. 기자 회견장은 보통 사전 예약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급하면 현장에 가서 앞뒤 정해진 순서의 의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들어간다. 우리는 이를 '밀고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의원의 발언 시작과 동시에 마이크가 켜지고 비디오카메라가 온에어된다. 그 기자회견 영상은 국회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기자회견장에는 상주하는 기자들이 있어서(국회 출입기자) 보도거리가 되는 사안이라면 그날 소통관에서 했던 기자 회견 꼭지가 당일 저녁 방송 3사,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에 뉴스로 나간다. 이것이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는 말의 권능이다. - 218~219p
평소 의원실 내 대화법은 이렇다. 나는 의원에게 “의원님, 상황은 이렇지만 일단 결론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하고 이야기하고, 같은 방 후배 보좌진은 나에게 “기관에서 자료가 왔는데 요는 이러저러해서 이렇습니다”하고 말한다. 기승전결의 ‘결’만 있는 대화다. 잠깐 책상을 떠나면 부재중 전화가 두세 통 와 있고, 미팅 한번 하고 나면 휴대전화 메시지가 100개 이상 와 있다. 말 한 마디를 끝내기도 전에 꼭 다른 일이 치고 들어오고, 메시지를 보낼 때도 누가 말을 걸거나 전화가 와서 전송 버튼도 못 누르고 다음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매일 숨넘어갈 것 같이 후다닥 용건만 간단히 얘기한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가 국회에 오려면 일단 KTX나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해서 대중교통으로 갈아타고, 여의도 국회 앞까지 와야 한다. 도착하면 국회 내 의원회관 로비에 줄을 서서 출입증명서를 쓴다. 그런 뒤 신분증을 내고 방문증을 수령해서, 엑스레이로 소지품을 체크하고, 해당 의원실의 호수를 확인하며 요새처럼 복잡한 의원회관을 돌고 돌아야 한다. 그래서 의원실 방문자는 대부분 한여름엔 땀범벅이 되어, 한겨울엔 산 만한 패딩을 벗어들고 헐레벌떡 들어오곤 한다. 이런 만남은 보좌진에게는 하루에 대여섯번 있는 회의 중 하나일 뿐이지만 피해 당사자에게는 몇 주 전부터 예정된 '국회 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꼬박 비운 일정에 일말의 기대까지 동반한 모습으로 우리 방까지 온 사람에게 '결'만 들을 수는 없지 않나. 호흡 바꾸는 일은 내가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다. - 42~43p
장하나 의원과 우리 방 보좌진들은 임기 4년 내내 청년 국회의원은 누구를 대리해야하는가를 물었다. 세대 대표성이라기엔 청년을 나이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고(만 34세는 청년이고 35세는 장년인가?), 세대 동일성으로 묶기엔 청년 내부의 젠더, 계층 간 차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청년은 노동조합이나 장애인단체처럼 강한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상대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도 불분명했다. 직능대표, 노조대표 등의 대표자들과 면담하고 법안을 만드는 소위 '국회의 기본 문법'이 안 통한다는 의미이다. 대표 없는 자들을 대리하는 모순과 역설에 직면하는 것부터 해야 했다.
청년들을 대표자를 통해 만날 수 없다면 '무턱대고'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고소득, 정규직 청년보다는 일을 해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워킹 푸어' 청년들을 만났다. 구석구석 청년들을 찾아다녔다. 얘기를 들을 때 내가 세운 원칙은 이랬다.
①성별, 지역, 학력, 나이, 종사상 지위 등을 다르게 하며 최대한 다양한 상황의 청년을 만난다. ②국회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간다. ③만남은 최소 두세 시간, 한 번 이상 만나서 생애사적 얘기를 듣는다.
보통 대표 있는 단체 소속의 사람을 만날 때는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을 쓰고 장소도 당연히 국회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대개 올 사람들만 온다. 대낮에 하루를 비워서 국회로 올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그나마 나은 처지일 수 있다. 그러니 국회가 뭐에 쓰는 물건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찾아가서 장시간에 걸쳐 듣는 것만이 능사라 생각했다. - 109~110p
국회에서 정부에 자료 요구를 할 때 '의정 자료 전자 유통 시스템'이라는 내부망을 통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런 공식 시스템으로 주지 않는 자료는 '말'로 요구하면 된다. 국회의원이 상임위에서 의사 진행 발언으로 "제가 A자료를 정부에 요구했는데 아직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000부처에 A자료를 즉시 제출할 수 있도록 요구해 주십시오"라고 한 마디 하면, 아주 민감한 자료가 아닌 이상 상임위원장은 출석해 있는 부처 장관에게 요구해서 그 자료를 제출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나 국정 감사처럼 정부 제출 자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때에는 이 '말로 하는' 자료 요구로 오전 반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니 연차가 좀 있는 선수 보좌진들은 아예 시스템으로 요구한 자료 중 제출되지 않은 목록을 따로 추려서 의원에게 "의사 진행 발언으로 이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발언문을 써서 주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말이 곧 법인 셈이다. 그러니 국회의원에게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은 핵심 권능을 빼앗는 것이다. 실제로 1948년 제헌의회 때 국회의원 징계 중 하나는 10일 간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그야말로 '말 다했다'. - 219~220p
피상만 남은 국회는 둘 중 하나다. 시민의 안줏거리가 되거나 욕지거리가 되거나. 문제는 그렇게 시민이 국회를 버리면, 권력과 가장 가까운 자들부터 국회를 활용한다는 데 있다. - 17p
국회의원의 말에 부여하는 권능은 국회의원 한명한명이 시민을 대리하는 헌법기관이어서 부여된 것일 테다. (국회의원 한명이 하나의 기관이라는 의미의 실례로, 의원실에서 집행한 예산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뗄 때 사업자 번호 대신 국회의원을 주민등록번호를 넣는다. 추상이 아닌 실재의 개념이다.) 시민이 자신의 말의 권한을 의원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가 필요한 시민의 말은 보통 주어나 목적어가 없거나 기승전결이 갖춰지지 않은 말들이다.
... 현장에 나가지 않고선 여의도에서는 날것의 말을 들을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국회에서 듣는 말은 대개 시간 축적의 결과로 만들어진 매끈한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억울해도 국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것이고, 그나마 선택지에 국회가 있는 사람들은 국회의 바쁜 생리를 알아 '용건만 간단히'를 체득한다. 그래서 국회에서 민원인을 만날 때마다 말의 내용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에 기승전결을 부여하고자 연습했을 그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하게 된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고 바싹 다가앉아야 하는 건 국회 구성원들인데 오히려 주권자들이 국회의 리터러시를 연습하게 하다니, 나를 포함해 국회가 참으로 염치없다. - 220~2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