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문희 Oct 02. 2023

법 짓는 마음

230929

  추석 날 이보라 작가의 <법 짓는 마음>을 읽었다. 책 첫머리 '지은이' 소개에는 "10년 넘게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입법, 정책 실무를 담당했다"고 쓰여 있는데, 내가 정치부 정당팀에 속한 2년 동안엔 그를 현장에서 만난 적없다. 내 담당은 '국민의힘'인데, 이 작가는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일했고 지금은 국회를 떠난 모양이다.

  그 본인 경력을 일목요연 정리해 놓진 않았지만 책 군데군데 흩어진 활동 이력을 모아 보면 이렇다. 이 작가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철거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고, 그 인연으로 19대 국회에 장하나 의원실에서 보좌진 생활을 시작해 줄곧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일했다. 지금은 경찰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 작가가 책에 묘사한 국회 보좌진의 업무는 꽤 생생하고 복잡하다. 그 복잡함이 생생함으로 이어진다고 말해야 더 정확하겠다. 책 1장부터 그의 활동은 흥미를 끈다. 그는 웹하드 카르텔로 대변되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현상에 충격먹고 이를 근절해야겠다고 마음먹는데, 경찰의 수사 매뉴얼을 살펴봐도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한다. 매뉴얼 문제가 없다면 수사 기법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수사 과정을 일일이 알지 못하는 이상 이를 콕 꼬집는 것은 무리다. 이 작가는 웹하드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을 인터뷰해 영상 '필터링' 과정의 사각지대 정보를 입수하고(경찰이 웹하드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때 표준시 프로그램을 함께 띄우는데, 웹하드 업체는 이를 알고 표준시 프로그램 작동이 감지되는 순간 불법 영상이 뜨는 원래 화면이 아닌 '깨끗한 화면'을 보여준다), 이를 토대로 시민단체와 함께 증거 수집에 나선다.

  이렇게 잡아낸 증거에 기반해 이 작가가 보좌한 의원은 경찰청장에게 "해시 필터링, 범죄 혐의 입증 업체 구속, 데이터센터 압수수색, 세 가지 조치가 즉시 필요하다"고 질의했고, 경찰은 이 작가가 자문을 구한 전문가 의견을 청취했으며, 경찰은 웹하드 업체와 데이터센터를 압수수색해 범인을 검거했고, 국회는 '웹하드 카르텔 방지 5법' 및 범죄 수익 환수 법안을 만들었다. 이 작가는 이렇게 쓴다.


  가치나 관점만 가지고 질의하지 않고 집행자(경찰)의 언어(수사기법과 수사매뉴얼)를 배우고 익혀서 그 언어로 질의서를 만든 것도 주효했다. 추상적이고 커다란 질의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피감기관(정부)이 가장 쉽게 답해버릴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질문이 뭉툭하면 답변도 '예, 알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된다. 깍듯한 예의까지 갖춰 답변하면 그 순간은 마치 '완벽한 질의응답'처럼 보이지만 그런 답변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 <법 짓는 마음>, 이보라, 38p


  선감학원 피해 사건 피해자의 증언을 들은 뒤에는 정부 공문서(선감학원 아이들의 입퇴원 기록이 담긴 '원아 대장')를 입수하고자 경기도청 담당 각급 공무원을 상대로 진상규명 의미 설명, 읍소, 고성 등 압박을 번갈아가며 설득에 나서고, 국회 공식 기록에 남기고자 국정감사장에 피해 당사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증언하도록 유도한다. 책(<어웨이크닝>)을 읽다가 번뜩 '커뮤니티 매핑'(지역 구성원이 공공의 데이터를 이용하거나 직접 지역을 돌아다니며 특정 주제에 맞는 지도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란 아이디어에 꽂혀 저자에게 연락하고 '도심 배수구 담배꽁초 매핑'이란 시민 참여 플랫폼을 직접 구현해 본다.

  이 작가가 국회 보좌진으로서 '연결'하는 세계의 폭이 이렇게 넓다. 수사와 법, 행정이란 꽉 짜인 틀의 범주에선 잡을 수 없는 현실과 좀체 목표할 수 있는 이상 간의 이음매를 그래서 '정치'라고 부르나 보다.


  장마철 집중호우 시기가 되면 도심 한가운데 침수되는 곳이 꼭 생기는데 그게 도심 인프라(기반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하수구 배수 기능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하수구에 담배꽁초 같은 이물질이 끼여 빗물받이가 제구실을 못해 배수가 안 되기 때문이다. 도로변 빗물받이에 각종 쓰레기가 쌓이고 인위적인 덮개로 하수구를 막는 것이 침수 피해를 3배 이상 키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프라가 문제라면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일으켜서 해결하면 되는데, 이렇게 담배꽁초가 문제라면 공공행정이 매번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을 쫓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때야말로 시민들의 힘을 빌려야만 공동체의 재난 위험을 막을 핵심적인 키가 마련된다.


  가 보지 않은 길을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어련히 알아서 가 주겠거니' 하는 것만큼 순진한 것이 없다. '법적 근거'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공무원 업무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탓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일을 할 수 있게끔 예측 가능성과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가 보지 않은 길에 구체적인 경로가 되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국회의 역할이다. - 71p


  국회의 감시 대상인 정부와의 '추격전'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 작가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2021년 8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힘을 보탰는데, 법안 통과 이후 정부 대응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법안에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 추진하여야 한다"는 구멍 많은 문장을(정부가 '시책을 수립하고자 ~을 추진했다'는 식으로 핑계를 댈 수 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한다"는 문장으로 바꿔 행위와 주체를 못박았지만, 실행 여부는 또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법은 최상층의 영역일 뿐이어서, 만들어 놓고 이후를 점검하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 된다. ... 이제부턴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 찾기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썼다. 이게 책 4장 내용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11장 내용은 이렇다.


  그 법 제24조에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도 넣어 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서를 작성할 때 단순히 금액 편성뿐만 아니라 그 예산집행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서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운용에 반영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2022년은 법 통과 뒤 처음 시행되는 해다. 정부가 하는 일을 보려면 예산과 인사만 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돈의 쓰임새는 정부의 핵심 가치와 방향, 철학을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2023년 예산에 대한 ‘온실가스감축인지 기금운용계획서’가 국회에 도착했다.
  나는 탄소중립법을 자식처럼 생각하기에 흐뭇한 마음으로 그 자식의 친구쯤 되는 기금운용계획서를 받아들었는데, 페이지를 넘겨보니 좀 이상했다. 예산서 작성 대상이 되는 13개 부처 288개 사업 중 취약계층지원사업은 저소득층 가구에 냉·난방기기를 지급하는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을 포함한 5개가 전부였다. 규모도 전체 예산(11조8828억원)과 비교해 0.96%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예산정책처에서 검토한 바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사업이 부풀려져 책정돼 있었다. 그 규모는 1조9698억원(온실가스 감축 인지 전체 예산의 약 16.6%퍼센트에 해당)에 달했다. 결국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도 IPCC 보고서처럼 쓰인 것보다 쓰이지 않은 것이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예산서를 작성한 공무원들으 이 내용을 몰랐을까? 그중엔 누군가 '공무원 반란'이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닐까.
  예산서를 덮고 '이러려고 탄소중립법을 만들었나' 깊은 한숨이 나왔다. 역시 아무리 법에 영혼을 담아도 디테일에 반드시 악마가 있으니, 감시하지 않으면 도처의 악마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히게 될 형국이다. - 157~158p


  아래와 같은 문단을 볼 땐 국회 기자들의 일상이 눈 앞에서 그려졌다. '눈 앞에서'라는 말은 기자들을 객체로 바라보는 제3의 주체를 상정한다. 국회 보좌진 눈에는 기자들과 정치인이 공존하는 풍경이 이렇게 보이는구나 싶었다.


  국회는 말을 다루는 곳('민의'의 전당)이고 말의 전쟁터(정쟁)다. 정치학자 박원호 교수는 "의회는 내전을 대체하는 제도다. 과거에 총칼로 싸우던 것을 이제 대표를 보내 말로 싸우는 제도가 의회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정치에서의 권력투쟁은 사실상 마이크 획득을 위한 투쟁이다. 각 정당마다 월수금, 화목요일에 원내대표단 회의와 최고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지도부 각자에게 3~5분씩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마이크를 쥔 의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자들의 찰칵찰칵 셔터 소리와 타닥타닥 노트북 타이핑 소리가 경쟁적으로 터졌다 사그라든다. 이런 풍경은 너무도 스펙타클해서 현실에 있으면서도 마치 뉴스 보도 한 장면 안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다(물론 가끔 뒷배경으로 잡히기도 한다).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법이 있거나 이슈가 생겼거나 아니면 폭로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아무 때나 국회 소통관(기자회견장)으로 가면 된다. 기자 회견장은 보통 사전 예약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급하면 현장에 가서 앞뒤 정해진 순서의 의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들어간다. 우리는 이를 '밀고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의원의 발언 시작과 동시에 마이크가 켜지고 비디오카메라가 온에어된다. 그 기자회견 영상은 국회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기자회견장에는 상주하는 기자들이 있어서(국회 출입기자) 보도거리가 되는 사안이라면 그날 소통관에서 했던 기자 회견 꼭지가 당일 저녁 방송 3사,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에 뉴스로 나간다. 이것이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는 말의 권능이다. - 218~219p


  김영란 전 대법관이 추천사에 "현장에 뛰어들어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인 만큼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단어와 표현이 가득하다. '정치권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의지 없는 미래형 대답만 늘어놓았을 뿐 현재완료형으로는 제대로 답한 적이 없다'라거나 모든 범죄 중 성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유독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가 기댈 언덕이 없다고 하면서 '젠더 폭력은 젠더 렌즈가 있어야 보인다'고 지적하는 부분 같은 것이다"라고 썼던데, 반은 동의하지만 반은 동의하지 못했다. 미래형-현재완료형의 대조, 젠더 렌즈 같은 표현은 압축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훌륭한 방식이지만 국회라는 현장에 있는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다. 내 생각에 이 작가가 현장에서 길어낸 문장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평소 의원실 내 대화법은 이렇다. 나는 의원에게 “의원님, 상황은 이렇지만 일단 결론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하고 이야기하고, 같은 방 후배 보좌진은 나에게 “기관에서 자료가 왔는데 요는 이러저러해서 이렇습니다”하고 말한다. 기승전결의 ‘결’만 있는 대화다. 잠깐 책상을 떠나면 부재중 전화가 두세 통 와 있고, 미팅 한번 하고 나면 휴대전화 메시지가 100개 이상 와 있다. 말 한 마디를 끝내기도 전에 꼭 다른 일이 치고 들어오고, 메시지를 보낼 때도 누가 말을 걸거나 전화가 와서 전송 버튼도 못 누르고 다음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매일 숨넘어갈 것 같이 후다닥 용건만 간단히 얘기한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가 국회에 오려면 일단 KTX나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해서 대중교통으로 갈아타고, 여의도 국회 앞까지 와야 한다. 도착하면 국회 내 의원회관 로비에 줄을 서서 출입증명서를 쓴다. 그런 뒤 신분증을 내고 방문증을 수령해서, 엑스레이로 소지품을 체크하고, 해당 의원실의 호수를 확인하며 요새처럼 복잡한 의원회관을 돌고 돌아야 한다. 그래서 의원실 방문자는 대부분 한여름엔 땀범벅이 되어, 한겨울엔 산 만한 패딩을 벗어들고 헐레벌떡 들어오곤 한다. 이런 만남은 보좌진에게는 하루에 대여섯번 있는 회의 중 하나일 뿐이지만 피해 당사자에게는 몇 주 전부터 예정된 '국회 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꼬박 비운 일정에 일말의 기대까지 동반한 모습으로 우리 방까지 온 사람에게 '결'만 들을 수는 없지 않나. 호흡 바꾸는 일은 내가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다. - 42~43p


  장하나 의원실에서 첫 보좌 업무를 시작한 시기 에피소드도 눈에 띈다. '청년 비례대표'인 장 의원과 보좌진들은 당시 누구를 대리해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하는지 고민이 컸던 모양이다.


  장하나 의원과 우리 방 보좌진들은 임기 4년 내내 청년 국회의원은 누구를 대리해야하는가를 물었다. 세대 대표성이라기엔 청년을 나이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고(만 34세는 청년이고 35세는 장년인가?), 세대 동일성으로 묶기엔 청년 내부의 젠더, 계층 간 차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청년은 노동조합이나 장애인단체처럼 강한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상대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도 불분명했다. 직능대표, 노조대표 등의 대표자들과 면담하고 법안을 만드는 소위 '국회의 기본 문법'이 안 통한다는 의미이다. 대표 없는 자들을 대리하는 모순과 역설에 직면하는 것부터 해야 했다.
  청년들을 대표자를 통해 만날 수 없다면 '무턱대고'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고소득, 정규직 청년보다는 일을 해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워킹 푸어' 청년들을 만났다. 구석구석 청년들을 찾아다녔다. 얘기를 들을 때 내가 세운 원칙은 이랬다.
  ①성별, 지역, 학력, 나이, 종사상 지위 등을 다르게 하며 최대한 다양한 상황의 청년을 만난다. ②국회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간다. ③만남은 최소 두세 시간, 한 번 이상 만나서 생애사적 얘기를 듣는다.
  보통 대표 있는 단체 소속의 사람을 만날 때는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을 쓰고 장소도 당연히 국회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대개 올 사람들만 온다. 대낮에 하루를 비워서 국회로 올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그나마 나은 처지일 수 있다. 그러니 국회가 뭐에 쓰는 물건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찾아가서 장시간에 걸쳐 듣는 것만이 능사라 생각했다. - 109~110p


  피해자부터 일상을 사는 시민들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는 동안 이 작가는 조금 냉정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공감만 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가 더 나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정치인의 섣부른 공감 표현이 뾰족한 해법은 낳지 못하면서 피해자를 마냥 기다리게 만드는 '희망고문'이 될까 우려한다. 그러다가도 이 작가는 문득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탄식한다. 공감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조차 하지 않는다면 시민의 대리자라는 국회가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그가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정치란 이 작가가 보인 판단중지와 행동주의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상황별로 달리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 곧 사람을 상대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의 기예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 또는 사법부가 국회에 제출할 수 없는 비공개 자료를 어떻게든 보려고 할 때 보좌진이 선택하는 '열람' 방법 소개나, 국회가 법을 정할 때 세부 사항을 법으로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 등 시행령에 넘기는 '백지 위임'이 왜 사실상 국회 역할의 방조인지, 1일 1회의 원칙인 국회 모든 회의에서 의원들이 왜 때로 '차수 변경'(오후 11시59분을 넘기면 차수를 바꿔야 한다)을 꺼리는지, 예산철마다 예결위 계수조정위원회 앞에 왜 정부 등 온갖 인사들이 장사진을 이루는지 등 밖에서 볼 땐 기묘한 국회 풍경이 왜 나타나는지 설명해둔 대목들은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직업 보좌진'의 기쁨과 슬픔이다.


  국회에서 정부에 자료 요구를 할 때 '의정 자료 전자 유통 시스템'이라는 내부망을 통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런 공식 시스템으로 주지 않는 자료는 '말'로 요구하면 된다. 국회의원이 상임위에서 의사 진행 발언으로 "제가 A자료를 정부에 요구했는데 아직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000부처에 A자료를 즉시 제출할 수 있도록 요구해 주십시오"라고 한 마디 하면, 아주 민감한 자료가 아닌 이상 상임위원장은 출석해 있는 부처 장관에게 요구해서 그 자료를 제출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나 국정 감사처럼 정부 제출 자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때에는 이 '말로 하는' 자료 요구로 오전 반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니 연차가 좀 있는 선수 보좌진들은 아예 시스템으로 요구한 자료 중 제출되지 않은 목록을 따로 추려서 의원에게 "의사 진행 발언으로 이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발언문을 써서 주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말이 곧 법인 셈이다. 그러니 국회의원에게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은 핵심 권능을 빼앗는 것이다. 실제로 1948년 제헌의회 때 국회의원 징계 중 하나는 10일 간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그야말로 '말 다했다'. - 219~220p


  책을 다 읽고난 뒤 내 마음 속에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었다. 이것은 국회 취재 기자로서 나 역시 되새겨야 할 자세 아닌가. 국회를 감시하는 언론이 이같은 '보통 사람' 입장에 설 때 조금 더 정묘한 비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피상만 남은 국회는 둘 중 하나다. 시민의 안줏거리가 되거나 욕지거리가 되거나. 문제는 그렇게 시민이 국회를 버리면, 권력과 가장 가까운 자들부터 국회를 활용한다는 데 있다. - 17p


  국회의원의 말에 부여하는 권능은 국회의원 한명한명이 시민을 대리하는 헌법기관이어서 부여된 것일 테다. (국회의원 한명이 하나의 기관이라는 의미의 실례로, 의원실에서 집행한 예산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뗄 때 사업자 번호 대신 국회의원을 주민등록번호를 넣는다. 추상이 아닌 실재의 개념이다.) 시민이 자신의 말의 권한을 의원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가 필요한 시민의 말은 보통 주어나 목적어가 없거나 기승전결이 갖춰지지 않은 말들이다.
  ... 현장에 나가지 않고선 여의도에서는 날것의 말을 들을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국회에서 듣는 말은 대개 시간 축적의 결과로 만들어진 매끈한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억울해도 국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것이고, 그나마 선택지에 국회가 있는 사람들은 국회의 바쁜 생리를 알아 '용건만 간단히'를 체득한다. 그래서 국회에서 민원인을 만날 때마다 말의 내용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에 기승전결을 부여하고자 연습했을 그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하게 된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고 바싹 다가앉아야 하는 건 국회 구성원들인데 오히려 주권자들이 국회의 리터러시를 연습하게 하다니, 나를 포함해 국회가 참으로 염치없다. - 220~222p


8월의 어느 날, 국민의힘 최고위원 회의가 열리는 국회 회의실 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슬픈 압수수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