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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Sep 18. 2023

슬픈 압수수색

230918

  3일 전, 그러니까 2023년 9월14일 이 영상을 보며 슬펐다. 낮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압수수색 기사가 떴고 몇시간 동안 신경이 곤두선 채였다. 이게 말이 되나.


https://www.youtube.com/watch?v=ZJ9JQp95uJ8


  책 세 권에 1억6500만원을 받아 먹었다는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을 실드칠 생각 따위 없다. 상대는 무려 김만배. 1억6500만원은 책값 1억5000만원에 부가가치세 1500만원을 더한 액수다. 처음 허위 인터뷰 의혹이 나왔을 땐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기자회견에서 "책값이 무슨 1억5천만원이냐 하겠지만 저는 그 돈도 싸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꼴을 보고는 기가 찼다. 조롱하기 딱 좋은 말 아닌가. 존중감도 연봉도 매일 하향세인 이 바닥에 그래도 뭔가 중요한 가치가 남았다는 믿음으로 젊은 기자들은 아득바득 산다. '기레기' 그림자만 더 짙어졌단 생각에 암담했다.


  그러나 언론사 압수수색은 별개 문제다. 검찰이 뉴스타파, JTBC 압색에서 꺼내든 혐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다. 회사 보도를 인용하자면 "언론사 기자에게 이 조항을 적용해서 처벌하려면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점에 더해 기자가 허위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누군가를 비방할 목적으로 보도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어차피 불기소 내지 무죄로 끝나기 쉬운 일을 괜히 끌고 갔다가 '언론 탄압'이란 비판만 더하느니 어지간해선 언론사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민주화 시대의 균형점이었다. 이번 정부는 그 예외적인 길을 무소의 뿔처럼 간다.


  어떻게 이런 유별남이 가능한가, 그게 나는 슬펐다. 언론 탄압이 권력기관에 치명타가 되려면 언론을 건드려선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어떻게 언론을 건드리느냐'는 물음이 시민들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지 않는다면 언론 탄압이란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세월호 이후 커진 기레기 담론 탓일 수도, 세 권 책 값으로 1억여원을 받고도 문제 의식이 없는 기인들이 여럿 알려져서일 수도, 정치적 양극화가 너무 심해 '내 편'에 해가 되는 보도는 일단 백안시해서일 수도, '언론도 정치적'이란 냉소가 근거를 얻을 만큼 때로 편파적이었던 보도 행태 탓일 수도 있다. 아마도 전부겠지. 그런데 이렇게 해서 권력이 언론에 칼질하는 일이 하나둘 늘어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드 <뉴스룸> 시즌 3에는 FBI가 ACN 뉴스나이트 뉴스룸을 급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자인 닐 샘팟이 미 국익에 치명적인 국방부 기밀 문서를 여럿 입수한 뒤다. FBI가 법적 조치 운운하며 컴퓨터까지 털자 편집국장 찰리 스키너는 기자, 카메라맨, PD들에게 라이브 방송을 지시한다. FBI의 뉴스룸 공격 장면을 미국 시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FBI 고위직은 '이렇게 나올 거냐'며 따지다가 결국 철수를 결정한다. 뉴스타파가 방송을 열고 KBS가 뉴스타파 현장 상황을 유튜브 라이브로 전했을 때 우리에게 벌어진 일과 딴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45C2m_Exf8&t=2s




  위에 인용한 기사 링크. 본문을 보면 흥미로운 쟁점이 몇 있다. '피해자 : 대통령'이라니.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309141733011


  법원은 명예훼손죄 처벌에 까다로운 요건을 두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검찰이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규정한 윤 대통령은 당시 유력 대선후보이자 현 국정 최고책임자라는 점에서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보도 내용도 윤 대통령이 과거 검사로서 한 공식업무와 관련된 의혹 제기였다.
  공인에 대한 표현은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법원은 보도에 일부 허위 내용이 있더라도 공익성이 있는지, 진실로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꼼꼼히 따져 위법성 여부를 가린다. 대표적인 판례가 이명박 정부 때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 사건이다. <PD수첩>은 2008년 4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은폐·축소한 채 수입 협상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으나 법원은 1·2·3심에서 내리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하면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보도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해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게 현재 허위인터뷰 의혹 수사를 지휘하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다.
  대법원은 2011년 또 다른 판결에서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포함돼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비방할 목적’을 따질 때는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사안에 관한 것인지,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에도 SNS에 허위 글을 올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글에 일부 과장이 있더라도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고 공익을 위한 목적이었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애초에 명예훼손을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국가 자체가 많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도 폐지하는 추세이다.
  검찰이 뉴스타파 등에 적용한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유죄 판결을 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윤 대통령이 기자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2014년 박근혜 정부 검찰이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세월호 당일 행적에 대한 칼럼을 쓴 산케이신문 가토 타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할 때 박씨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검찰은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박씨의 처벌 의사로 간주해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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